매일성경 묵상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막 10:23-31]
 – 2024년 03월 10일
– 2024년 03월 10일 –
부자가 떠난 후 제자들을 향해 주님의 가르침이 이어진다. 그가 재물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초대에 머뭇거리다이내 포기하고 돌아간 모습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어려움을 집중적으로 가르치신다. 이 가르침을 들은 베드로가 나서서 준미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따르는 자신들은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 묻는다. 주님은 제자가 얻을 현세적 복과 내세적 약속을 들려 주신다.
 
고대의 부에 관한 개념은 “후원자” 문화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후원자들은 신에게서 부와 권력을 부여받았다고 간주되었다. 특히 유대인 후원자들은 회당과 성전 제사를 지원하므로서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과시하곤 했다. 하지만 주님은 구약의 예언자 전통을 따라 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강력히 유지하신다.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부가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본문은 하나님나라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야 할 제자들의 삶에서 재물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가 중심 내용이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면 많은 재산을 소유한 채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주님을 따라가는 것에 희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보장하는 상급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상급은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에 의해 주어질 것이다.
 
 
 
1.부와 하나님 나라(23~27절)
재물이 많은 그 사람이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제자들을 “둘러 보신다(23절).” 어린아이들과 한 부자의 등장으로 하나님 나라의 제자도에 대해 한층 집중력있게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특히 부자의 등장은 제자들이 호의를 가지고 모든 상황을 주시하게 하였다. 왜냐하면 당시 사람들은 재물이 많은 것은 하나님의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강했고, 거기에다 어려서부터 모든 율법을 다 지켰다는 그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은 사람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영생은 바로 그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주님의 초청에 부자가 보인 반응은 의외였다. 그는 주님의 초청을 거절하고 슬퍼하고 근심하며 돌아갔다. 그러자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을 제자들을 둘러보신 것이다.
 
먼저 살펴볼 것은 당시 유대 문화에서는 재물을 하나님의 축복의 상징이었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궁핍하게 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하지만 동시에 예언자적 전통은 부가 주는 위험과 부한 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는 것을 경고한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부자에게 말씀하신 것은 예언자 전통 위에 서서 재물의 파괴적인 위험에 대해 가르치신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실제로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어라는 문자적인 의미보다 그만큼 주님을 따르는 길에 우선 집중하라는 의미이다.
 
주님은 힘없이 돌아서는 그 사람의 뒷모습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23절)”라고 말씀 하신다. 이에 제자들은 더 놀란다. 주님은 부자가 제자의 삶을 포기한 이유를 “재물이 많았기” 때문임을 암시하셨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 하늘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지만, 이 부분에서는 부자와 같이 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이 된다. 재산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주님의 명령은 가혹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주님은 이것을 문자적으로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자신을 따르려면 재산을 모두 처분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이 아니다. 그만큼 주님을 따르는 것의 가치가 자신의 재물 가치와 비교할 수 없이 크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이다. 하나님 나라 제자는 이 가치 전환을 해야 하는 것이다. 부자는 하나님 나라 가치보다 재물에 더 큰 가치를 둔 것이다. 주님께서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고 말씀하신 까닭이 여기에 있다. 재물이 많은 연고로 주님의 부르심을 거절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에 “놀란다.” 당시 부자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 가지고 있었던 제자들의 당연한 반응이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짤막한 비유를 이어서 말씀하신다. “이 사람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새번역_24~25절) 낙타와 바늘 귀를 대조한 것은 사실상 “가장 큰 것과 가장 작은 것”의 대조다. 당시 가축 중에서 가장 큰 낙타가 구멍으로 가장 좁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함을 명확하게 상상하게 한다. 이는 어려울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부자에게는 재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놓고 하나님 사랑하는 길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일은 어렵다.
 
제자들은 더욱 충격을 받는다. “매우 놀라(26절)”서로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는 것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평생 계명들을 다 지키고 하나님의 축복의 상징인 재물을 받았는데, 바로 그 재물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도대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라며 웅성거린 것이다. 이는 제자들이 그 부자를 신앙의 모범적인 사람으로 생각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저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면 누가 들어갈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구원”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했다. “그렇다면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서로 웅성거린다.
 
이를 간파하신 주님은 제자들을 다시 응시하시며 “사람에게는 불가능하나, 하나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새번역_27절)고 말씀하신다. 구원은 사람의 선택과 의지의 문제만은 아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행하시는 선한 일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길을 열어주실 수 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낙타가 바늘귀를 지날 수 있고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의 결과이다.
 
 
 
2.베드로의 반응과 주님의 가르침(28~31절)
주님의 놀라운 가르침에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하여 반응한다. 그는 재물이 많은 부자가 주님을 따르지 못한 것과 재물을 포기하지 못한 것에 비해 자기들은(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는 것이다. 이 반응에 주님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를 때, 현세와 내세에 상급이 있다는 하나님 나라의 제자도를 가르치신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논밭을  버린 사람은, 지금 이 세상에서는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논밭을 백 배나 받을 것이고, 오는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새번역_29~31절)
 
땅의 소유를 기쁘게 버리고 따를 때 충만한 삶이 기다린다는 주님의 약속이다. 복음(하나님 나라)을 위하여 땅의 소유와 관계를 포기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관계를 백배나 받게 된다. 그 새로운 관계는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통해 받는 것인데, 인간적인 관계보다 훨씬 깊은 관계(백배)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교제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주님께서는 이미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그의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 라고 새로운 관계를 정의하셨다(3:34~35). 하지만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통해 새롭게 형성된 관계와 교제는 “박해”를 동반한다. 또, “백배”나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하나님 만이 주실 수 있음을 뜻한다. 주님을 따르기 ㅜ이해 치러야 할 희생에 비해 주어진느 복이 훨씬 더 크다는 비교법이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제자들에게 주시는 최고의 상은 오는 세대에서 누릴 영생이다.
 
31절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에서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로 번역했으나 9장 35절에서처럼 “첫째와 꼴찌”로 번역할 수 있다. 여기서 첫째란 부와 권력 등을 가진 힘 있는 사람을, 꼴찌는 없는 사람들을 뜻한다. 세상에서 힘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들이 부자 사람처럼 예수님을 위해 그것들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오는 세대에서는 꼴찌가 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 재산과 가족까지도 버린 자들,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 자들은 비록 이 세상에서 꼴찌지만, 오는 세대에서는 첫째가 될 것이다.
 
 
 
나는?
-재물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23~25절). 제자들은 근심하며 돌아간 부자(22절)가 내심 부러웠을 것이다. 당시 부자는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은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씀하신다. 그럼에도 부자가 되고 싶은 이유가 무엇일까?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은 이 땅의 “부”를 의로운 삶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로 이해했고 그런 자들이 종말의 하나님 나라에 가장 먼저 들어갈 것이라는 당대의 생각을 뒤집는 말씀이셨다. 재물이 많든 적든, 우리는 그 재물을 누릴 수 있는 특권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할 의무도 받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말씀하신다(26,27절). 타락한 인간이 구원받는 것은 인간의 노력이나 수양, 능력과 재물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하나님은 절대적인 능력으로 주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실 수 있다. 구원은 인간의 노력과 공로에 의해서 획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베푸신 은혜로운 선물이다. 조금도 구원받을 가능성이 없는 우리에게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제자들이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부자와 같은 사람이 그 나라 백성이 되기에 가장 적격이었지만, 아들 예수를 통해 이루실 나라는 그런 부자들이 없어도 어린 아이나, 창기나, 죄인이나, 나병환자나, 이방인들을 통해서도 이뤄질 수 있다. 하나님 나라에 필요한 것은 돈도, 권력도, 웅장한 건물도 아니다. 순종, 신뢰, 사랑, 소망이며, 가난하고 정결한 마음이다.
 
 
-주님을 위해 헌신한 자들에게 보상을 약속하신다(29~30절). 제자가 버린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하게 돌려주신다. 이런 면에서 주님이 부자에게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주님을 쫓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것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보상은 영원토록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다.
 
-제자들에게 축복과 함께 박해도 주실 것이다. 또 축복 받을 자 역시 하나님의 기준대로 정해질 것이다. 가장 유력했던 부자가 축복에서 멀어졌듯이 가장 축복 받을 것 같은 제자도 가장 나중이 될 수 있다. 
 
 
-먼저 믿고 많이 섬겼다면 그것은 감사할 이유이지, 교만할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주님은 먼저 된 자들에게 나중 될 자가 많다고 하신다. 먼저 된 자와 같았던 부자는 결국 나중 되고 말 것이다. 주님 없는 먼저가 되려 하지 말고 주님을 앞세운 인생이 되어야 하리라.
 
 
 
*주님, 들어가기 어려운 하나님 나라에 주님의 은혜로 이미 들어와 살고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주님이 제 인생의 가장 최고와 최선의 가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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