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섬기러 오신 주님, 으뜸이 되고자 하는 제자들 [막 10:32-45]
 – 2024년 03월 11일
– 2024년 03월 11일 –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에서 주님은 세 번째 수난 예고를 하신다. 두 번째 예고에 비해 더 구체적으로 알리신다. 그러나 제자들은 여전히 자리다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다른 복음서에서도 동일한 위치에서 수난 예고가 실렸다. 다만 마가와 마태만 제자들의 자리다툼을 언급한다. 제자들은 여전히 세상 관점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고 있다. 주님은 “섬김”이라는 주제로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의 성격을 완벽하게 대조한다. 주님은 지금 섬김 받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오르시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섬기시기 위해 그 길을 오르신다. 
 
 
 
1.세 번째 수난 예고(32~34절)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무리가 그를 따르고 있다. 제자들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선생이 죽으러 가겠다고 두 번이나 예언한 터에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했다. 주님은 두려워하고 있는 제자들을 따로 불러 세 번째 수난 예고를 더 구체적으로 들려주신다. 
 
제자들은 지금 오르고 있는 예루살렘의 길 끝에서 자신들이 보게 될 엄청난 일들을 듣게 된다. 주님은 예루살렘에서 종교 지도자들과 이방인들의 손에 넘겨지고 고난당하고 마침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예루살렘은 죽음의 자리였고 주님을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계셨다. 하지만 죽음이 끝이 아니다. 인자는 반드시 삼 일만에 살아나실 것이다. 죽음의 권세가 장악한 예루살렘은 동시에 영광스런 부활의 예루살렘이 될 것이다. 
 
주님은 지금 죽기 위해 예루살렘에 오르시지만, 결국 영원한 승리의 부활을 바라보며 오르고 계신 것이다. 주님은 그 곳에서의 일을 구체적으로 제자들에게 이루어질 순서로 알려주신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주님을 넘기는 이는 제자중 하나일 것이다. 한 제자로부터 예수를 넘겨받은 그들은 이방인들(총독과 군인들)에게 다시 넘길 것이다. 그들은 온갖 능욕과 멸시와 핍박을 가하며 결국 죽일 것이다. 그러나 삼 일 후 반전이 일어날 것이다. 죽은 예수가 다시 살아난다. 이 모든 길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이며 조금의 오차 없이 다 이루어질 것이다. 
 
 
 
2.섬기러 오신 주님(인자_35~45절)
이와 같은 수난 예고 직후 제자들의 반응이 이어진다. 그런데 수난 예고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반응에 기가 찬다.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께 대뜸 자신들이 원하시는 것을 들어주시기를 구한다. 그것은 장차 영광의 순간에 자신들을 주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는 최고의 명예로운 자리에 앉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태는 이 요청의 배후가 뜻밖에도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라고 소개한다. 그녀는 예수님의 이모 살로메로 주님의 친족(마 27:56; 막 15:40)이라는 특권의식에 기반하여 이런 요구를 한 것이다.
 
주님은 그들의 요구가 얼마나 하나님 나라에 걸맞지 않고 십자가의 길과 맞지 않는지 일깨우신다. 그들은 자신들이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들이 열망한 주님의 좌우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야고보와 요한이 이해하고 요구한 자리는 주님의 반란이 성공적으로 완료된 후 혁혁한 공을 세운 부하에게 왕이 하사하는 권력의 2인자, 3인자 자리였다. 하지만 주님이 이루실 나라는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 더구나 주님이 예루살렘에서 얻으실 영광도 세상 왕들이 만끽하는 그런 영광이 아니다. 
 
주님은 야고보와 요한에게 자신이 마실 잔과 받을 세례를 마시고 받을 수 있겠냐고 물으신다. 그들은 몰론 주저 없이 마시고 받겠다고 대답했다. “잔”은 고난을 상징하고(14:36), “세례”는 훗날 초대교회에서는 “죽음”과 연결지어 해석하였다. 그러므로 잔과 세례는 주님이 받으실 고난과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런데 야고보와 요한이 주저 없이 잔과 세례를 마시고 받겠다고 한것은 승리한 왕과 측근들이 들어 올릴 축배의 잔과 성대한 대관식을 생각한 것이다. 
 
주님은 야고보와 요한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들이 잔을 마시고 세례 받으실 것을 예견하신다(행 12:2). 두 제자의 돌발 행동을 나머지 제자들이 모두 보았다. 열 제자의 반응이 심각해졌다. 야고보와 요한을 향해 분노를 표출한다. 이로 보건데 나머지 제자들의 마음도 야고보와 요한과 다를 바 없었고 주님의 친척이라는 명분으로 선수를 친 야고보와 요한이 매우 못마땅했다. 하나님 나라 제자도를 여러 차례 말씀하셨음에도 제자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야고보와 요한으로 인해 분열된 제자들을 주님은 다시 불러 모으시고 다시 한 번 자신이 이루실 하나님 나라와 그 성취 방식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신다. 
 
세상의 왕들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그들의 신하들 역시 권세를 부리며 칭송받기를 즐기나 하나님 나라 제자들은 달라야 한다. 세상 나라는 높은 자가 섬김을 받고 낮은 자가 섬기지만, 하나님 나라는 섬기는 자가 높은 자이다. 제자들이 서로 높은 자를 두고 다투지만, 주님이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에서는 서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다른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으뜸”이 되는 길이다. 세상은 섬김을 받으려 크고 으뜸된 자가 되기를 힘쓰지만, 하나님 나라는 섬기기 위해 힘쓰는 나라이다. 
 
주님의 오심도 결국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 오셨다. 주님의 최고의 섬김은 고난 받는 종으로 자신의 목숨을 죄인들의 대속물로 내어 주는 것이다(사 43:3~4; 53:12). 이로 인해 섬김을 받는 이들이 생명을 얻는다. 주님께서 걷는 길은 고난 받는 종의 길이며, 많은 사람을 섬기는 길이다. 제자들은 그의 뒤를 따라가야 한다. 예수님처럼 고난 받고 많은 사람을 섬기는 길을 뒤따라가야 한다. 그것이 제자의 길이다. 
 
 
 
나는?
-주님은 놀라고 두려워하는 제자들과 무리를 앞서서 예루살렘을 향해 묵묵히 올라가신다. 올라가시는 그 길 끝에는 체포와 재판, 능욕과 고난과 죽음이 기다린다. 이를 잘 알고 계셨다. 하지만 그 길이 자신이 올라가야 할 길임을 잘 아셨다. 그 소명과 사명에 순종하셨다. 그 순종이 고난과 죽음이라는 과정을 거치지만 결국 생명과 부활의 영광이 있음도 아셨다. 주님은 그렇게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고 묵묵히 걸어올라 가셨다. 
 
-관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듣고 깨닫는 것이 다르다. 주님이 여러 차례 고난과 죽음에 대해 말씀하셨는데도, 여전히 제자들의 관심은 세상의 명예와 영광에 있다. 야고보와 요한은 의미도 모른 채 주님이 마시는 고난의 잔과 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대뜸 말한다. 다른 제자들도 다를 바 없다. 야고보와 요한을 보고 화를 낸 것은 동일한 야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원하시는지에 대한 관심보다 하나님에게서 내가 받고 잇은 것이 무엇인지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하나님을 내 야망을 만족시키는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제자들은 여전히 땅의 일, 사람의 일만 생각한 자들이었다. 섬기고 싶은 마음보다 섬김을 받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가치는 세상 나라의 가치와 다르다. 세상 지도자들은 권세를 부리고 섬김을 받고자 하나, 제자들 가운데서 우두머리가 되고자 하는 자는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에서 으뜸이 되는 것은 권세를 부리는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니라 현제를 구하고 돌보는 일에 자신의 몸과 영혼을 헌신하는 것이다. 마치 애굽의 총리의 자리에서 형제들을 섬긴 요셉처럼 말이다. 
 
-더 커지고, 더 높아지려는 세상의 야망을 경계하고 버려야 한다. 하나님 나라 가치를 좇아,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을 섬기기 위해 내게 주어진 지위와 힘을 올바로 사용해야 하리라 
 
-하나님의 나라는 군림의 나라가 아니라 섬김의 나라이다. 왕(예수 그리스도)부터 섬기는 나라이니 누구든 섬기지 않을 수 없는 나라이다. 
 
-주님의 좌우편에 앉기를 원했던 야고보는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고, 요한은 마지막 순간까지 교회를 위한 섬김의 수고를 다하다가 영광스럽게 생을 마감했다. 비록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자신들이 생각하고 바랐던 더 나은 자리를 추구했지만, 결국 하나님 나라에서 누구보다 더 낮은 자리에서 검기는 삶을 살다 그들의 생을 마감한다. 나는 어떤 삶으로 하나님 나라를 살아 낼까?
 
 
 
*주님, 더 커지고 더 높아지려는 세상 가치보다 더 예수님처럼 더 섬기는 하나님 나라 가치를 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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