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성전 논쟁 2, 3 : 세금, 부활에 관하여 [막 12:13-27]
 – 2024년 03월 16일
– 2024년 03월 16일 –
무리가 두려워 주님을 잡지 못한 지도자들은 이제 바리새인들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어 주님을 잡을 계략을 꾸민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의 계략에 빠지지 않는다. 사두개인들의 계략도 역시 주님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다. 그들은 주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로마에게 바쳐야 했던 세금 문제를 들고 나왔다. 주님은 솔로몬과 같은 지혜로 그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이어 사두개인들이 부활의 문제를 걸고넘어졌을 때에도 역시 그들이 최고의 권위로 여기고 있던 토라의 예로 역시 침묵시킨다. 
 
 
 
1.바리새인과 헤롯당의 계략(13-17절)
유대인들의 최고 지도자 그룹인 산헤드린의 구성원인 그들(대제사장들, 서기관들, 장로들)이 보낸 ‘바리새인과 헤롯당원’들이 주님께 나아왔다. 이들은 정치적으로나 신학적으로 물과 기름 같은 사이였으나 주님을 죽이는 문제에서 연대를 형성했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함을 원치 않는 헤롯당과 백성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빼앗긴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종교적 권위를 빼앗기지 않기를 위해 힘을 합친 것이다. 
 
그들은 주님을 책잡기 위해 ‘가이사에게 바치는 세금 문제”를 주님께 던진다. 이 문제는 주님께서 어떻게 대응하든지 정치적, 종교적 함정에 빠지게 할 수 있는 최적의 문제라고 여겼다. “책잡으려(아그류오)”라고 번역된 단어는 보통 야수들이 먹이를 잡을 때 사용하는 동사이다. 주님 대답의 허점을 이용하여 그 권위를 무너뜨리겠다는 의도이다. 세금은 당시 인구수대로 거둬들이는 ‘인구세’이다. 요세푸스의 기록에는 갈릴리 지방의 유다라는 인물이 일으킨 반란의 원인은 이 세금 제도 때문이었다고 밝힌다. 당시 유다는 세금을 로마인들에게 바치는 것은 오직 비겁한 자들이 하는 행동이며 하나님을 배반하는 행위라고 사람들에게 도전했다. 이와 같은 사건을 알고 있었던 유대인들에게 세금은 매우 민감한 문제였을 가능성이 크다. 
 
주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이 던진 질문의 의도를 이미 알고 계셨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데나리온’을 가져오라고 했다. 주님은 동전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았음이 드러난다. 당시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 하루 품삯이었다. 그리 작은 돈은 아니었다. 로마제국의 동전은 선전용으로 제작되었고 데나리온은 보통 은으로 주조되었다. 데나리온에는 티베리우스 황제의 얼굴과 글들을 새겨서 자신들이 점령한 온 세계에 “Pax Romana(로마의 평화)”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주님은 데나리온에 새겨진 글과 형상이 누구의 것인지 물으셨다. 그들은 ‘가이사의 것’이라고 대답한다(16절). 주님은 명쾌하게 대답하셨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17절)”
 
가이사의 동전은 가이사에게 속한 것이다. 짚어야할 것은 주님께서 성전에서 논쟁하고 계신데, 그들은 주님의 데나리온 요청을 매우 쉽게 해결해 주었고, 이는 가이사의 돈을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기에 세금도 바쳐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된다는 것이다. 또 이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성전 안이라고 한다면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집까지 로마의 동전을 가져오므로서 하나님의 집에까지 우상의 형상을 가지고 들어온 잘못을 범한 것이다. 
 
또 주님의 말씀은 만약 가이사에게 그의 형상이 새겨진 동전으로 세금을 바쳐야 했다면,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사람들은 하나님께 자기 자신 전체를 바쳐야 하는 것이다(창 1:26; 잠 7:3; 사 44:5, 렘 38:33). 주님의 논리는 어떤 반박도 할 수 없는 한 치의 틈도 없었다. 
 
 
 
2.사두개인들의 계략(19-27절)
바리새인과 헤롯당에 이어 마가는 사두개인들이 연이어 등장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 역시 예루살렘 안에서 가장 강력한 지도자 그룹들이 모두 주님께 등을 돌렸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마가는 그들을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라고 밝힌다. 사두개인은 역사적으로 마카비 반란 이후 하스몬 왕조를 지지하고 성전의 관리를 책임지는 직책을 맡겨 되면서 권력자들이 되어갔다. 사두개인들의 가장 큰 라이벌은 바리새인들이었다. 하지만 헤롯당과 마찬가지로 주님이 자신들의 권력을 위협하고 있다는 위기감에 서로 연대하게 된 것이다. 그들이 가져온 계략은 “역연혼 제도와 부활”에 대한 것이었다. 
 
상속자가 없이 남자가 죽었을 때 결혼 관계를 정리하는 율법에 관한 문제였는데, 고대에서는 그런 경우 다른 형제가 과부를 취하는 것이 정해진 법이었다(신 25:5~10). 사두개인들은 일곱 형제가 다 죽었고, 여자까지 죽었을 경우 부활하게 되면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고 물은 것이다(18~23절). 이 질문에 담긴 사두개인들의 속내는 부활은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어리석은 사상이라는 것이다. 
 
주님은 지체 없이 결론부터 말씀하셨다. 사두개인들을 향하여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기 때문에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24절). 주님은 사두개인들이 부활 이후의 삶이 땅에서의 삶과 같은 것이라는 가정을 가지고 부활을 이해하고 있다고 지적하신다. 그런데 부활은 새로운 삶으로 태어나는 것이므로 단지 현재의 삶이 연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부활을 통해 변화가 일어나며 그들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삶이 펼쳐진다(25절)는 것을 지적하신 것이다(막 9:2~3; 계 7:9~17). 
 
주님은 사두개인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떨기나무” 성경 구절을 상기 시키시며 그들의 무지함을 지적하신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떨기나무 불길로 나타나셨을 때 직접 들려주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신을 소개해 주셨다(출 3:1~22). 이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일깨우시는 것은 그렇게 하나님이 자기를 부를 때 이미 죽은 사람의 이름을 사용해 부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사용해 부르신다는 사실이다. 즉, 하나님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었다”라고 과거형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다”라고 현재형으로 들려주셨다는 것이다. 
 
사두개인들이 간과하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이 그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준다는 것인데(고전 6:14),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언약 때문에 그들이 육체적으로 죽은 다음에도 이 언약 관계가 계속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사두개인들에게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라고 결론지어 말씀하셨다. 
 
 
 
나는?
-평상시 적대적이었던 바리새인과 헤롯당이 주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함께 찾아와 세금에 대하여 질문하였다. 뒤를 이어 사두개인들이 주님께 나아와 부활에 관해 질문했다. 주님께서는 지난 3년 동안 삶의 모든 영역에서 새로운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져 오셨다.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모든 시간, 모든 영역에서 새로운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본문의 종교지도자들은 옛 시대의 사고와 가치관으로 새 시대를 여신 주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질문한다. 
 
-주님은 그들의 계략의 동기를 너무도 잘 알고 계셨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신다. 어떻게든지 트집을 잡으려는 그들의 민감한 질문들에 휘말리거나 흔들리지 않으신다. 오히려 지혜로운 대답으로 그들의 말문을 막으신다. 황제의 형상이 그려진 데나리온이 가이사의 것이라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다. 또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죽은 자를 살리시는 생명의 능력을 갖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부활은 충분히 가능함을 가르치신다. 
 
-주님의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올바로 이해하며 하나님의 길을 선명하게 통찰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한편 주님은 대답을 피하지 못하게 하려는 전략적인 수사법인줄 알면서도 성실하게 그러나 기대 밖의 대답을 해주신다. 믿음을 동반한 참 지식이 아닐 때 우리도 이렇게 좋으신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시험할 수도 있다는 것을 긴장하며 분별해야 할 것이다. 
 
-세금 문제에 있어서는 바리새인과 헤롯당은 늘 대립했던 정파들이었다. 그런데 견원지간이었던 두 정파가 주님을 쓰러뜨리는 데는 의기투합하였다. 마찬가지이다. 세상은 주님을 따르려는 하나님 나라 백성들을 해하려는 일에 늘 연대하고 연합할 것이다. 의기투합할 것이다. 세상에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아군은 없다. 오직 예수로만 꿋꿋하게 살아내야 하리라.
 
-세금은 마땅히 바쳐야 한다. 그러나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가이사도 하나님의 피조물이자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이기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생각으로 세금을 납부해야 할 것이다. 바리새인들처럼 세금 납부를 거절하여 왕을 세우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 또, 헤롯당처럼 오직 가이사에게만 충성하여 그 위에 계신 하나님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세상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제의 원수와 손을 잡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본문을 통해 확실하게 깨닫는 것은 진리의 말씀은 인간의 연합과 연대한 힘이나 지혜로 막거나, 바꾸거나, 덮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부호라도 믿지 않은 현실주의자들이었다. 또한 친 로마 성향의 보수주의자들이었으며, 지배 권력층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의 기반인 모세오경의 “형사취수제도(신 25:5~10)”에 근거하여 부활을 도리어 조롱하고, 비현실적이고 과장된 질문으로 주님을 곤란에 빠뜨리려고 했다. 주님은 이들을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해 오해하고 있다고 책망하신다. 피상적인 지식과 믿음이 그들로 현세주의적인 삶을 살게 한 것이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사두개인들의 모습에서 겸손하게 배우기보다는 자기 지식과 한계 안에서 주님을 판단하고 진리를 폄훼하는 것이 선명하게 보인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과정에서 내가 직면할 수 있는 나의 기대와 상식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신비를 접할 때 겸손하게 인정하여야 하겠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의 질문은 그들 스스로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고 있음을 증명한 질문이었다. 자기 시험에 자기가 빠진 격이다. 자신들이 굳게 믿었던 모세오경이 부할을 증거하고 있음에도, 그 오경을 근거로 부활을 부인하다니 황당한 따름이다. 
 
-사두개인들이 기다린 구원자는 모세였다. 그런데 모세는 또 다른 메시아적 선지자의 출현을 예언했었다(신 18:15). 그럼에도 주님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진리가 아니라 현실적인 기득권을 놓고 싶지 않아서 주님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주님,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에게 당연히 드리겠습니다. 
*주님, 혹 하나님의 능력도 잘 모르면서 경망스럽게 행동하지 않도록 늘 말씀 안에서 겸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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