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막 12:28-34]
 – 2024년 03월 17일
– 2024년 03월 17일 –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 사두개인들의 계략을 물리친 주님께 서기관 한 명이 다가와 질문을 던진다. 서기관의 반응을 보신 주님은 그가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았다고 칭찬하신다. 세 번의 논쟁 이후 긍정적인 대화가 오간 것이다. 주님은 이 대화 이후 종교 지도자들과의 갈등 수위를 급격히 끌어올린다. 본문의 대화는 무화과나무 저주, 성전심판 사건과 포도원 농부 비유를 아우르며 성전 중심의 유대교가 영적으로 실패했으며 이는 곧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실패임을 조망하게 한다.

 

 

한 서기관은 가장 큰 계명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주님과 토론했다. 그는 주님께서 해 주신 말씀처럼 하나님을 온 존재를 다해 사랑하는 것(신 6:4~5)과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는 것(민 19:18)이 가장 큰 계명인 것에 동의한다. 더 나아가 이 이중 사랑의 계명이 제사와 제물에 관한 그 어떤 계명들보다 더 크다는 것을 고백함으로써 종교 지도자 중에서 거의 처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가까이 있다는 칭찬을 듣게 된다.

 

 

 

 

1. 서기관의 질문 : 가장 큰 계명(28~31절)

앞선 논쟁 주제인 “권위, 세금, 부활”은 공개적으로 주님에게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치명적인 무기였다. 그러나 주님은 이들의 계략에 말려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종교적인 권위만 실추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런 상황에서 서기관 한 명이 주님께 나아와 묻는다(28절). 지금까지의 논쟁을 쭉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지도자들과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인다. 율법 교사인 자기 눈에 보기에 주님의 대답들은 너무도 훌륭했다. 그래서 주님께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싶어졌다.

 

그의 질문은 계명 중에서 “첫째(프로토스”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이런 종류의 질문은 당시 중요한 토론 주제 중의 하나였다. 그는 어떤 계명을 잘 지켜야 하고, 어떤 계명을 안전하게 무시할 수 있겠는지를 물은 것이 아니었다. 그의 질문의 핵심은 무엇이 모든 계명을 떠받치는 율법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인지를 묻는다.

 

주님은 두 개의 구약 구절(신 6:4~5; 민 19:18)을 인용하시면서 대답하신다. 주님의 대답은 쉐마에 근거하여 모든 유대인이 다 수긍할 수 있는 것이었다. 주님은 가장 먼저 하나님은 유일하신 주시라고 고백하신다. 당시 로마제국의 다신주의 영향 아래서 유일신 하나님을 믿었던 유대인들의 정체성을 확연하게 드러내 주는 고백이었다. 유일하신 하나님은 우리 존재의 일부분만을 사용해서 사랑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온 존재를 다하여 드리는 사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또한 마음, 목숨,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나 그 사랑은 이웃 사랑하는 것과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주님은 두 계명을 하나의 계명처럼 결론짓는다. 특히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느니라(31절)”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이웃에 대한 구체적인 사랑으로 드러나야 함을 강조하신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행동으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없다(요일 3:14~18).

 

이 계명이 가장 큰 계명인 것은 모든 계명이 이 계명의 다른 표현으로 적용된다는 말씀으로 이해될 수 있다. 좀 더 강조하면 사랑의 계명을 지키면 율법을 완수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믿는다. 율법 학자들의 전통적인 해석인 “미쉬나”의 핵심 구절은 온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를 “토라, 제사 예배, 그리고 사랑의 표현”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런데 주님은 사랑을 토라와 제사 위에 놓는 정도가 아니라 토라와 제사를 완전히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바울은 이런 주님의 가르침을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 13:8)”라고 표현했다.

 

 

 

2. 서기관의 반응(32~34절)

서기관은 주님의 대답에 동의하며 그것을 반복하여 표현한다(32~33절). 자기 생각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주님이 말씀하신 것에 덧붙여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고백한다. 사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그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이 외형적인 의식이나 제사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은 구약 성경 전반에 걸쳐 강조되었다. 서기관은 이 본질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주님은 그의 반응을 “지혜 있는 것”으로 보았다(34절). “지혜 있는(누네코스)”은 “생각이 있는”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는 주님의 가르침의 핵심이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다스림, 가치, 목적에 복종하는 것이다. 주님은 서기관이 아직 하나님 나라에 완전히 들어가 있다고 묘사하지 않고 가까이 있다고만 말씀하셨다. 긍정적이기는 하지만 부정적이기도 하다. 그가 아직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묘사되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다스림에 완전히 복종하지 않고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직은 주님의 제자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그의 상태는 마냥 부정적이지는 않다. 그는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그가 그의 믿음의 여정이 올바로 가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런 묘사는 10:22-25의 “한 부자”와 비교된다.

 

주님과 서기관의 대화를 지켜보던 많은 사람이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었다”라고 묘사한다. 고대 사회의 수사학에서 상대방을 침묵시키는 능력은 지혜로운 선생의 최고 기술로 인정받는 것이었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장로들,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 사두개인에게 이르기까지 예루살렘의 내로라 하는 모든 종교 지도자가 주님의 지혜와 권위에 압도당하는 형세다.

 

 

 

 

나는?

-당시 랍비들은 모세오경 안에 613개의 계명이 있으며 그중에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인지를 논쟁하였다. 주님의 통찰력 있는 답변을 듣고 있던 한 서기관은 평소 자신이 갖고 있었던 신학적인 고민을 주님께 꺼내 놓았다. 지금 성전 안에는 자기 파당의 이익과 신학적인 변호를 위해, 또한 주님을 함정에 몰아넣기 위해 정치적인 술수도 마다하지 않으며 질문을 던졌으나 그는 주님께 말씀에 대한 진지한 가르침을 요청한 것이다.

 

 

-말씀을 대하는 나의 자세는 어떠한가?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삶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가? 아니면 말씀을 따라 그대로 살기 위해 “수용”하는가?

 

 

-서기관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 묻는 그의 마음은 주님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앎을 위해 질문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잘 배워서 말씀이 내 생각을 형성해 가도록 허락해야 할 것이다.

 

 

-주님은 서기관의 질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구약의 수많은 율법의 근본이고 본질이며, 가장 중요한 두 계명이라고 가르치신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계명임과 동시에 이웃을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 또한 철저하게 하나님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두 계명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결국 이 두 계명을 지키는 데 실패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주님은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고 선언하신다. 둘은 구분할 수 있지만 나눌 수 없고, 둘 사이에 우선권을 말할 수 있으나 우열은 말할 수 없다. 이웃 사랑은 하나님 사랑에서 나오며,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서기관은 주님의 답변을 기쁜 마음으로 수용하며 지지한다. 그는 오직 하나님만이 참된 신이며, 진정한 창조주이심을 고백한다. 또한 구약에서 제정한 제사와 제물을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가치임을 고백한다. 예배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표현하고 실천하는 것이라면 예배를 드린 후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할까?

 

 

-소유를 포기하지 못해서 주님을 포기했던 부자 청년과 달리 서기관은 새롭게 밀려오는 하나님 나라의 진리에 자리를 내어 주고 자기 지식과 신념을 포기하였다. 주님은 그런 그가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다고 칭찬해 주신다. 진리는 항상 낯익은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만은 아니다. 낯선 진리를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수용하는 태도이다.

 

 

 

*주님, 유일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를 추구하며 순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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