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성전은 무너지지만, 믿음은 무너지지 않는다 [막 13:1-13]
 – 2024년 03월 19일
– 2024년 03월 19일 –
성전을 떠나시면서 주님은 성전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고 감람산에서 성전을 마주 보고 앉아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미혹 받지 말고 스스로 조심하라고 당부하신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건축 구조물 중의 하나였을 가능성이 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보다 두 배 정도의 규모였고 바벨론 유배 이후 돌아온 유대인들이 지었던 제2 성전을 헤롯 대왕이 개축하고 보완한 것이다. 전체 면적은 가로 300m 세로 500m 규모였다. 전 세계 유대인들이 건축을 위해 헌금하였으며 고대의 가장 좋은 돌과 황금으로 치장되어 규모뿐 아니라 아름다움에서도 사람들을 압도했다고 요세푸스는 전한다. 주님께서 본문의 말씀을 했을 때도 건축이 진행되고 있었고 63년에 비로소 완공되었다.
    
앞서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를 통해 완전히 무너져 내린 성전 유대교의 영적 실상을 확인했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 성전은 여전히 철옹성과 같은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끝이 멀지 않았다. 예루살렘 멸망과 성전 붕괴와 관련된 구체적인 예언이 등장한다. 마가복음의 1차 독자들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로마제국과 주변 정세, 그리고 빈번히 일어나는 자연재해들이 예루살렘의 끝을 재촉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제자들은 복음 때문에 예수 이름으로 말미암아 여러 모양으로 고난과 핍박을 당할 것이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숙명이다.
    
    
    
1. 성전 붕괴 예언(1~2절)
한 제자가 성전을 떠나면서 성전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놀라움을 표시한다. 그런데 주님은 냉정하게 성전이 무너져 내릴 것을 예언한다(1~2절). 갈릴리 지역에서 올라온 제자들은 헤롯왕이 건축 중인 거대한 성전 건축물에 놀라고 있었다. 당대의 역사가 요세푸스의 자세한 설명에 의하면 당시 큰 건축물 중의 하나였고 호화롭기가 극에 달한 건물이었다고 기록한다. 헤롯 대제는 그의 통치 시절 건축가로서의 화려한 업적을 남겼다. 특히 주전 20~19년부터 시작된 예루살렘 성전 확장 공사는 주요 부분이 10년 안에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성전 부속 건물 전체는 헤롯의 사후 주후 63년에 가서야 마무리되었다. 무려 83년이 걸렸다. 헤롯이 증축한 성전은 솔로몬 성전보다 두 배 컸으며 화려하고 거대한 대리석 부속 건물들이 주변을 둘렀다.
    
그러나 주님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실제로 역사는 이 예언 후 40여 년이 지난 주후 70년(완공 후 7년이 지난 후)에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면서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다. 로마 군대는 먼저 불로 성전의 기초를 약화한 후에 성전을 무너뜨렸다.
    
    
    
2. 성전 붕괴 징조들(3~13절)
주님께서 성전을 나와 건너편 감람산에서 성전을 마주 보고 있는 그 순간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과 안드레가 주님의 성전 파괴 예언이 어느 때에 일어나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 무슨 징조가 있겠냐고(4절) 묻는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 변화산 위에서 주님이 영광스럽게 변화하실 때 직접 함께 있었던 제자들이다. 또한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가실 때도 따로 동행한 제자들이다. 여기에 안드레가 함께 주님께 나아와 질문을 드린 것이다.
    
주님이 제자들의 질문에 첫 번째로 대답하신 것은 “미혹하는 자들에게 속지 않도록 주의하라(5~6절)”고 당부하신다. 많은 미혹하는 자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라(에고 에이미)”며 사람들을 속일 것을 말씀한다. “내가 그다”라고 번역된 단어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적 칭호이자, 주님의 기독론적 칭호인 “I am”이다. 신적 권위를 가장하고 메시아를 자처하는 거짓 선동가들이 일어나는 것이 첫 번째 징조이다. 그리고 이 일은 먼 미래에 일어날 일이 아니라 가까운 시일 내에 일어날 일이기에 제자들에게 속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다(5절).
    
그다음으로 주님이 말씀하신 징조는 “난리”이다 “난리”는 전쟁이나 소요 같은 정치적 소용돌이와 자연재해 등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재앙을 가리킨다. 실제로 예루살렘 멸망을 앞두었던 로마와 유대의 정치 상황은 “난리와 난리” 그 자체였다. 주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이후부터 예루살렘 멸망까지 로마는 크고 작은 전쟁에 시달렸다. 로마가 치른 대표적인 전쟁으로는 파르티아 전쟁(주후 36년), 이듬해 유대에서 안티파스와 나바테아 왕 아레타스와의 전쟁이 이어졌다. 그 밖의 국지전과 지역 단위 폭동들이 끊이지 않았다. 지진의 경우는 주후 61년 라오디게아, 62년 폼페이, 67년 예루살렘, 70년 이후 고린도와 구브로에 큰 지진이 발생했다. 또 기근은 46년 유대 전역에 엄습했으며(행 11:28), 60년대 중반에는 식량난으로 로마에 소요가 끊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난리와 난리가 이어졌다. 그런데 이런 소식들은 시작일 뿐 끝이 아니었다(7~8절).
    
이런 상황에서 마가는 매우 중요한 주님의 당부를 강조한다. “스스로 조심하라(9절)”는 것이다. 종말의 징조들에 대하여 예민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섣불리 끝에 대하여 결론을 내리면 안 된다. 주님은 이렇게 난리와 난리가 지속되는 시대 속에서 사람들이 제자들을 공회에 넘겨주고 회당에서 매질하며 권력자들과 왕 앞에 세울 것이다. 이것이 고난의 당사자인 제자들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도 멸망의 징조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세상 권력에 고난을 겪고 그들 앞에 끌려가는 것이 제자들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넘겨지고, 매질 당하고 끌려가 왕 앞에 선다”라는 것은 제자들이 주님의 운명을 따르는 자들이 될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10:38). 마가의 독자들은 이미 이런 일들을 현실로 경험했다. 그러나 이런 고통스러운 현실은 멸망의 징조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복음이 온 열방에 전파되는 증거로 가까운 시일 내에 이루어질 일이었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놀랐을 것이다. 갈릴리에서 태어나 자란 그들이 공회, 회당, 권력자들과 임금들의 절대 권력 앞에 서서 무엇을 변증할 수 있겠는가? 생각만 해도 두려울 일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상황에서 두려워할 것 없다고 하신다. 성령이 그들과 함께하셔서 할 말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11절).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지금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주님의 부활 이후 제자들에게 이 말씀은 일상에서 너무도 생생하게 경험되는 말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제자들을 넘기는 이들이 가족들이라는 사실이다. 주의할 것은 모든 경우를 천편일률적으로 규정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제자들이 당해야 할 핍박을 일반적으로 강조하는 표현들이며, 제자들은 일반적으로 당할 이 고난의 현실은 “예수 이름 때문에, 예수와 복음을 위하여(8:35; 12:9; 13:13) 겪는 숙명이자 영광이었다. 그러므로 끝까지 견디어야 한다.
    
    
    
나는?
-제자들은 주님께서 암시하신 위태로운 성전의 운명을 감지하지 못한 채 화려한 성전 건물의 위용에만 감탄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 건물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만큼 철저하게 파괴될 것이라고 하셨다. 주님이 보신 것은 화려하고 견고한 외양이 아니라 부패하기 짝이 없는 내면이었다.
    
-이렇게 성전을 떠나시며 성전의 멸망을 예언하신 주님은 이제 다시는 성전으로 돌아오지 않으신다. 마치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신 것처럼(겔 10:18~19; 11:22~23) 주님도 성전을 떠나셨다. 주님이 마지막까지 주신 기회에도 불구하고 끝내 돌이키지 않는 이들에게 남은 것은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뿐이다.
    
-헤롯 성전은 주님 당시 48년째 계속 짓고 있는 엄청난 크기와 화려함을 가진 대형 성전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이미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성전을 둘러보신 후 이튿날 단호하게 성전에서 상인들을 쫓아내시고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고 비판하시며 한탄하셨다. 무화과나무 저주를 통해 성전의 운명도 암시하셨다. 제자들이 성전의 크기에 압도되어 감탄한 것은 주님의 이와 같은 가르침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제자들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교회의 영광은 건물의 웅장함이나 화려함, 또는 많은 교인과 다양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에 달려 있다. 우리 더온누리교회는 무엇을 자랑스럽게 여길까? 어떤 가치를 추구할까?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은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이어야 할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제자들은 멸망이 일어나기 전 징조들에 관하여 묻는다. 일단 제자들의 질문과 주님의 대답 초점이 다르다. 제자들은 종말의 때와 징조에 대한 지식에 관심이 있지만, 주님은 그때를 살아가야 할 제자들의 삶에 관심이 있으셨다. 전쟁과 자연재해들을 징조로 말씀해 주시지만, 주님은 이것들이 끝이 아니라고 강조하신다. 이런 난리와 난리는 예수 이후의 역사 속에서 늘 있었다. 그러므로 지금 드리는 전쟁과 재난 소식은 종말의 새로운 소식이 아니기에 동요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시대를 동행하여 주시는 주님의 임재 가운데 우리가 거한다는 사실이다. 주님과 함께 성실하게 믿음의 삶으로 “오늘을” 살아내야 한다.
    
-그러므로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전 멸망 전에 일어날 일들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미혹되지 말라고 하신다. 지금, 이 순간도 세계 곳곳에서 많은 난리와 전쟁, 지진과 기근이 일어난다. 이단과 음모론(미혹하게 하는 소식들)이 성행한다. 불안케 하는 상황들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그것은 단연코 “미혹되지 않는 것이다.”
    
    
-미혹되지 않는 것은 결국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견디는) 것이다. 그들은 구원받을 것이다. 주님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 구원을 약속해 주셨다(13절). 제자들은 혹독하게 핍박받겠지만,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하시며 고난을 통해 복음이 전파될 것이다(9~13절). 주님이 당하신 것처럼 공회에 넘겨져 매를 맞기도 하고,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아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복음이 증거되는 기회로 삼으실 것이다.
    
-이를 부여잡고 삶의 모든 상황과 여건 속에서 성령께서 도우실 것이니 미움을 받고 외면을 당하더라도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견뎌야 하리라.
    
-종말의 징조 중의 하나다 제자들의 고난이라니…. 주님의 말씀을 듣는 제자들이 참으로 난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훗날 제자들은 주님께서 고난의 길을 걸으셨고, 이런 상황들이 종말의 시기를 살고 있다는 증거로 주어졌다는 것을 확인할 때 주님의 가르침이 더욱 생생하게 제자들에게 환기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상황과 여건에 상관없이 복음에 합당한 삶으로 버티며 살아가는 것이다. 개인의 죽음이 종말보다 빠를지 늦을지 알 수 없지만 어느 것이든 제자들에게 구원의 완성을 가져다줄 것이기에 믿음과 소망의 눈을 놓치지 않고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성전은 이미 무너졌지만, 믿음은 무너지지 않았다.
    
    
    
*주님, 어떤 고난과 재난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견디며 복음을 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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