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환난과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 반드시 다시 오실 주님 [막 13:14-27]
 – 2024년 03월 20일
– 2024년 03월 20일 –
예루살렘 성전 붕괴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 주님의 답변이 이어진다. 구체적으로 예루살렘이 언제 파괴될 것인지 가르치기 시작하신다. 가장 큰 환난의 명백한 징조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서는 것이다. 그것을 본다면 바로 도망쳐야 한다. 환난의 정도가 창조 이래 전무후무할 것이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때에도 거짓 그리스도들과 선지자들이 일어나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그 환난 후에 주님이 다시 오실 때 택함을 받은 자들은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1. 성전 붕괴의 징조들(14~23절)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는 때에 있을 징조들에 대한 말씀이 이어진다. “멸망의 가증한 것”은 다니엘 9:27; 11:31; 12:11에서 언급한 것을 주님께서 인용하셨다. 마태는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바(마 24:15)”라고 분명히 밝힌다. 이는 거룩한 성소 제단에 우상 또는 우상의 제단이 세워질 것을 암시한다. 다니엘의 예언은 역사적으로 주님이 오시기 전에 이미 성취가 되었는데, 주전 167년 셀류코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4세가 성전의 번제를 드리는 곳에 제우스의 제단을 세운 사건이다. 안티오쿠스는 이스라엘에게 헬라 주의를 강요했는데, 이 때문에 이스라엘에게서는 하시딤 운동이 촉발되어 둘의 관계가 최악이 되었다. 이집트 원정을 마치고 시리아로 복귀하던 중 예루살렘 주민들을 살육하고 얼마 후 성전을 제우스 신전이라고 부르며 이방 제단을 설치하고 부정한 짐승인 돼지로 제사했다. 이어 토라를 불태우고 할례와 안식일까지 금한다. 이때 예루살렘에서 죽은 유대인들이 4만 명이 넘었다.
    
이 역사적인 사건은 유대인들에게 트라우마로 남게 되고 주님은 이처럼 또다시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성소에 선다면 예루살렘에서 도망치라고(14절) 말씀하신다. “선 것(헤스테코다)”은 ‘가증한 것’이 가리키는 어떤 우상이 아니라 “어떤 인물”을 가리키는 남성형 단수 분사이다. 이에 따라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섰던 장소(성전의 제단)에 어떤 인물이 선 것으로 이해한다면 주후 40년 로마 황제 칼리굴라가 성전에 세우려고 했던 자기 동상일 가능성이 있으나 결국 세우지 못했다. 적그리스도(살후 2:4)일 수도, 또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을 함락하고 성전을 파괴한 후 제단 있던 곳에 로마 제국의 깃발을 꽂은 티투스 장군일 수도 있으나 산으로 도망할 수 있는 시간이 없기에 이 또한 적절하지 못하다. 최근의 연구는 주님의 가르침이 1세기 살았던 유대인들에게 주는 경고와 교훈이라는 측면에서 먼저 이해되어야 한다. 이 예언의 성취는 요세푸스가 기록한 주후 66~68년 동안 일어났던 유대 전쟁 중에서 열심당원들이 성전을 훼손한 사건을 가리킨다. 그들은 67~68년 겨울에  ‘기샬라의 요한의 지휘 아래 성전에 난입한 후 그곳을 자기들의 지휘소로 삼았던 것을 가리킨다. 이 기록은 당시 대제사장이었던 아나누스의 증언이 요세푸스에 의해 기록으로 남겨진 것이다.
    
우선 본문에서 주님은 이런 분명한 징조들이 보이면 유대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 피신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예루살렘 전체가 파괴될 것이기 때문에 산으로 도피해야 한다. 임박한 재앙 앞에 황급히 도망해야 한다고 경고하신다(15~16절). 성전은 더 이상 사람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하나님의 피난처가 될 수 없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계속해서 성전을 향해 보였던 태도와 예언은 성전의 기능과 거룩함이 끝났다는 것이다. 임산부와 젖먹이 아낙네들은 신속히 도망하지 못해 화를 면치 못하고(17절), 이 일이 겨울에 있지 않기를 기도하라(18절)는 것은 팔레스타인의 겨울(10월~4월)은 춥고 비가 많이 오며 식량 공급이 힘들기 때문이었다. 마태는 유대인 독자를 고려하여 ‘안식일’을 추가한다. 안식일 이동 거리를 1.5km로 제한하는 안식일 법을 고수하느라 도망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전 파괴는 이전에 보지 못한 환난으로 이어진다. 요세푸스는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였을 때 성안에서 벌어졌던 기근과 식인 행위와 살육에 대해 생생하게 기록해 놓았다. 이런 끔찍한 멸망 예언 속에서도 주님은 하나님의 보호와 통제가 있을 것이라고 위로하신다.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환난의 날들을 줄여주신다고 약속하신다(20절).
    
또한 주님은 환난 중에 일어날 거짓 선지자들이 메시아에 대한 거짓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라고 경고하신다(21~22절). 학자들은 1세기경 이스라엘에는 적어도 60명의 메시아(자천타천으로)가 있었다고 밝힌다. 초대교회와 관련된 거짓 예언가들이 주님의 이름과 권위를 악용하여 종말이 도래했다고 성도들을 호도할 것이다. 주님은 그들의 말을 믿지 말라고 경고하신다. 이처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활개 치는 때는 마지막 때의 분명한 징조이다. 그들은 말로 속이는 차원을 넘어 어떤 이적과 기사를 행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위험하다. 주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기에 충분하고 성도들을 믿음에서 탈선하게 할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이러한 미혹에서 신앙을 지키는 길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 말씀을 기억하고 처음 사랑을 간직하는 것뿐이다.
    
    
    
2. 인자가 오는 것을 보리라(24~27절)
“그때 그 환난 후에”라는 표현은 성전 파괴와 그에 따른 환난, 그리고 인자의 다시 오심 사이에 있을 시간적인 간격을 보여준다. 그 환난이 얼마나 오래 갈지 아무도 모르지만, 성전이 파괴된 후에 올 것이 분명하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란 것은 “언제” 이 일들이 일어날지 정확하게 아는 지식이 아니라, 그 일들이 일어날 것에 대비하여 조심하는 태도와 준비이다.
    
24~25절의 묘사는 이사야 13:10에 근거한 인용이다. ‘여호와의 날’로 일컬어지는 하나님의 심판 날을 가리키지만, 주님은 이 징조들이 인자가 다시 오실 징조들이라 설명하신다. 26절은 다니엘 7:13~14를 인용하신 것이다. 인자는 땅에서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부활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마지막 때에 영광중에 돌아올 것이다.
    
27절은 이때 인자가 다시 오시는 목적은 심판뿐 아니라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시려는 것임을 분명하게 밝히신다. “사방에서”라고 번역된 단어를 직역하면 “네 바람들로부터”이다. 이것은 동서남북 방향뿐 아니라 땅끝에서부터 하늘 끝까지 라는 의미이다. 즉, 모든 곳에서 빠짐없이 다 모여들 것이며, 천사들을 보내어 빠짐없이 찾아 모을 것임을 약속하신다.
    
하나님의 구원이 미치지 못할 곳은 땅과 하늘 어느 곳에서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주님은 성전 멸망 전에 나타날 다양한 징조들에 이어 멸망 직전에 있을 결정적인 사건을 말씀해 주신다. 목적은 “산으로 도망하라”고 알려주기 위해서이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은 그 환난이 창조 이후 그런 환난이 없을 것이기에 제자들이 징조를 똑바로 기억하고 있다가 속히 도망치기 원하셨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미 떠난 성전과 예루살렘에 더 이상 머무를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렇듯 큰 환난 중에도 자기 백성을 잊지 않으시고 역사를 이끄신다. 성전 멸망 전에 끔찍한 환난이 있겠으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하여 환난의 날을 줄이시고 그들을 구원하신다(19~20절). 성전 멸망이 단순히 로마 제국의 승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를 대적하고 반역한 이스라엘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임을 알려주신다. 그럼에도 그 심판의 환난 속에서 능히 가지 백성을 보살피며 책임지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처럼 삶의 수많은 풍파 속에서도 잊지 않으시고 세밀하게 보살펴 주시는 세밀하신 하나님의 손길이 나를 붙잡고 있음을 믿어야 할 것이다.
    
-성전이 파괴되기 전에 먼저 성전이 유린당할 것이다(14절). 그것을 보면 유대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미리 산으로 피하라고 일러 주신다. 환난을 집행할 수단과 그 기한까지 정하셔서 심판 중에서도 선택받은 백성들을 지켜주실 것이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약속이 있기에 심판의 한가운데서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환난의 때를 살 때는 거짓 교훈에 미혹 당하지 말아야 한다(21~23절). 예기치 못한 어려움과 고난으로 마음이 부서진 사람들은 기적을 보여주면서 보호와 회복을 약속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구세주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거짓 선지자들은 상대의 약점을 악용하여 자기 배를 채우는 간교한 사기꾼일 뿐이다. 시험과 위기를 극복하는 비결은 소문난 사람을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상황을 통제하시는 주권자 하나님을 끝까지 붙드는 것이다.             
    
-환난 중에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 이적과 기사로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겠지만,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그런 자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미리 말씀해 주셨으니 실제로 출현하더라도 놀라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여전히 이단들이 기승을 부린다. 진리 되신 주님을 붙잡고,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을 꼭 붙잡고 있다면, 미리 말씀해 주신 거짓의 이적과 기사에 마음을 빼앗기면 안 된다.
    
-인자가 다시 올 때가 가까이 올수록 하나님을 대적하던 모든 것이 흔들리게 될 것이다. 어떤 권세자라도 그 어떤 강력한 집단과 국가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흔들리지 않는 나라(히 12:28)를 약속받았다. 그럼에도 그날에 흔들리고 떨어질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지는 않는가?
    
 
-주님은 큰 영광과 권능 가운데 다시 오신다(26~27절). 성전 멸망은 눈에 보이는 성전이 영원한 피난처가 아니라는 것과 예수님만이 참 성전인 것을 알려준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가장 연약하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모욕당하고 돌아가셨으나, 마지막 때에 가장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 다시 오실 주심을 고대하고 있을까?
    
    
-성전 멸망과 인자가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해 주시면서 이 모든 일이 마치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 듯한 극심한 환난을 통과하여야 하는 것임을 알게 하셨다. 환난 중에 도무지 하나님의 임재를 찾을 수 없는 듯한 고통과 아픔이 짓누르지만, 실상은 그 환난의 시간을 미리 말씀해 주셨다는 것을 간과할 때가 있다.
    
-철저하게 심판의 시간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지 미리 알려주시고, 그런 일이 일어날 분명한 징조를 알려 주셨으며, 어떻게 그 환난의 시간을 견딜 수 있는지도 미리 말씀해 주셨다. 환난 중에서 견딜 수 있도록 말씀을 신뢰하는 이들에게 피할 길을 미리 알려주신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징조들을 잘 분별하여 환난의 때를 살아내야 할 것이다.
    
-주님은 “환난의 날을 감해 주심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 말씀해 주심으로, 무엇보다 권능과 영광중에 다시 오심으로” 환난의 때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하여 주신다.
    
    
    
*주님, 환난과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주님의 다시 오심을 고대하며 꿋꿋이 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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