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막 13:28-37]
 – 2024년 03월 21일
– 2024년 03월 21일 –
예루살렘 성전의 운명과 이어지는 환난, 그리고 종말에 인자가 와서 구원하게 되는 하나님의 계획을 설명하신 주님은 제자들과 무리에게 깨어 있을 것을 명령하는 두 비유를 가르치신다.
    
종말을 사는 제자들에게 인자가 반드시 온다는 사실은 몇 가지 중요한 제자도를 요구한다. 먼저 제자들은 분별력을 겸비한 영적 명민함을 지녀야 한다. 다양한 징조들을 잘 분별해 미혹 당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영적으로 민감해야 한다. 매사에 주의와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이런 태도는 세상을 향해 매우 적극적 자세로 임하도록 삶을 이끈다. 주님이 주신 사명을 소망 중에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불현듯 임하실 인자를 맞는 제자의 참모습이다.
    
예루살렘 성전의 운명과 종말의 환난과 핍박에 대해 알게 된 제자들이 가장 시급하게 가져야 할 마음과 행동은 “조심하고 깨어 있는 것”이다. 그날과 그때는 오직 아버지만 아시지만, 무화과나무의 교훈에서 깨우쳐 주시는 대로 더욱더 조심하고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을 강조하신다.
    
    
    
1. 무화과나무의 교훈(28~31절)
주님은 이미 무화과나무 저주를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적으로 예고하셨다(11:12~14, 20~21). 그러나 본문은 그런 상징적인 의미보다 무화과나무의 잎사귀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알아차리라고 말씀하신다(28~29절). 즉, 무화과나무의 잎사귀들이 돋아나서 여름이 오는 것을 아는 것같이 분명한 징조들이 있을 것이고, 그것들을 통해 성전 파괴가 임박했음을 알게 될 것이라는 가르치셨다(5~23). 주님은 성전 파괴가 확실하게 일어날 것을 확인해 주신 것이다.
    
주님은 무화과나무 잎사귀가 연록 해 지면 여름이 오는 것이 확실해지듯, 인자의 재림도 확실하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내신다. 이를 더 강조하기 위해 말씀하신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끝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다 일어날 것이다.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나의 말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새번역_30~31절).” 마가의 글을 읽는 당시 로마 교회 공동체들은 이 말씀이 큰 위로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들이 겪고 있는 고단한 신앙 현실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가르침과 부합된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그날”을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 세대”는 예루살렘 멸망을 경험하게 될 당시 사람들을 가리킬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해 주신 징조들이 파루시아(재림)까지 조망했듯이 “이 세대”는 인자의 도래를 마지막으로 경험하게 될 세대까지 아우른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천지는 없어지겠지만, 내 말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자신의 선언에 영원성을 부여하셨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집중해야 하는 것은 징조들보다 주님의 말씀이다. 마치 유대인들에게 토라가 절대 권위를 가지는 것처럼, 주님은 자신의 말씀에 그와 동등한 권위와 영원성을 부여하신 것이다.
    
    
    
2.그날과 그때(32~37절)
“그날과 그때”는 이 모든 일이 정확하게 언제 일어날지를 알려고 하는 시도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제자들은 “언제” 일어날지에 대한 답을 원했지만, 주님께서는 징조들이 보일 때 “조심하고 깨어 있으라.”는 것에 대 강조를 두신다. 마치 이방신을 따르는 자들이 점을 보고 예언하듯이 정확한 “날과 때”를 알아내어 수선을 떨고 잘못된 길로 가지 말아야 할 것을 경고하는 것이다.
    
실제로 교회 역사는 이 경고가 얼마나 무시되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무수한 교회 역사 안에서의 종말과 재림에 대한 경거망동을 바라보면 주님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이 그날과 그때를 아는 이유는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사들이 모르는 것은 이해할 만하나 아들(즉, 인자)도 모른다는 것은 더욱더 충격적이다. 그만큼 종말의 시기와 때는 하늘의 엄격한 비밀에 속한 것이다.
    
제자들이 취해야 할 행동은 단지 징조들이 보이면 “깨어서 조심하는” 것이다.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는 이 엄청난 비밀을 안다고 주장하는 어처구니없는 행동들은 교회 역사에서 계속 벌어졌던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 “주의하라(블레페테), 깨어 있으라(아그륍네이테)”에서 주의하라(블레페테)는 13:5, 9, 23에서, 깨어 있으라(아그륍네이테)는 35, 37절에서 반복된 단어이다. 즉, 이 동사들은 13장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를 잘 보여주는 핵심 단어라는 의미다. 종말의 때를 사는 성도들이 “주의하고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는 “그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당장 심판이 일어나더라도 그 심판을 통과할 수 있으려면 항상 준비된 상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34~37절은 언제 올지 모르는 주인 비유이다. 이 비유는 무화과나무 비유에 대칭되는 가르침이다. 이 비유의 핵심은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깨어 있으라는 것이다. 주인이 각각의 종에게 권한을 주어 일을 맡긴 다음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고 명령하고 떠난다. 이렇게 명령한 이유는 주인이 돌아왔을 때 어떤 종이 자기가 맡은 일을 제대로 했는지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비유 역시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종들이 항상 조심하고 깨어 있을 것을 요구한다.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집주인은 인자와 동일시 할 수 있겠고, 집주인이 돌아오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완전히 오는 것을 가리킨다. 한편 주인이 돌아올 때 종들이 한 일에 대한 검사가 있을 것인데, 그것은 종말의 심판을 가리키는 것이다.
 
한편 본분의 시간 표시는 철저히 로마식(저물 때, 밤중일 때, 닭 울 때, 새벽)을 따른다. 당연히 일차 독자가 로마의 성도들이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낮에 오는 것이 상식이지만 이 비유의 핵심은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에 있다. 그는 홀연히 올 것이다. 그랬을 때 종들이 혹여 잠을 잔다는 것은 그의 책무를 실패한 것이다. 이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잠’은 종의 직무에 실패하고 주인의 기대를 저버린 행위를, ‘깨어 있음’은 주인의 기대에 부응해 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주인이 돌아올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사람은 문지기이다.
    
주님은 세 번째로 “깨어 있으라.”는 명령으로 인자의 재림을 “주의하여 깨어 있으라.”는 가르침을 마무리한다. “깨어 있으라.”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종말의 징조들을 보게 될 때 취해야 할 태도와 행동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주님의 말씀은 사라지지 않고 반드시 성취된다(28~31절). 무화과나무 잎은 겨울이 되면 나오기 시작하여 여름에 무성해진다. 무화과나무의 연한 가지와 잎사귀가 여름을 알리듯이 그간 말씀하신 징조들은 성전 파괴(인자의 오심)의 때가 가까이 다가왔음을 알려줄 것이다. 갖가지 징후들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는 영적 민감함과 분별력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주님의 재림은 예루살렘 성전 멸망처럼 시기를 알 수 있는 결정적인 징조가 없고 하나님 아버지만 아시지만, 성전 멸망처럼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혹시 주님의 재림을 의식하지도 않으면서 마치 세상이 영원히 존재할 것처럼 착각에 빠져 신기루와 같은 세상의 가치를 최고로 여기며 살고 있지는 않는가? 재림에 대한 나의 믿음이 굳건함을 나는 어떤 모습으로 드러내고 살고 있을까?
    
    
-성전 멸망이 유대의 끝이라면, 재림은 세상의 끝이라고 할 수 있다(32~33절). 재림의 때는 오직 하나님만 아시기에 재림의 때를 알려 하는 모든 시도는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날”이 언제인지를 알려고 하는 것 보다 언제일지 모르는 “그날”을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에 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마치 재림이 없고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며 살았던 사람은 재림 때에 매우 놀라며 수치를 당하겠지만, 깨어 주님을 기다린 사람은 기뻐하며 영광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 나의 마음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주님의 재림을 부인하지 않지만, 혹시 재림에 무관심하고, 재림이 없는 것처럼, 또는 아주 먼 것처럼 생각하며 살지는 않는가? 오늘을 주님이 오실 날로 여기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언제라도 주님을 맞을 수 있도록 영적 긴장을 가져야 한다. 주님의 재림 때는 아버지 말고 아무도 모르고 그때를 짐작할 만한 징조도 없이 갑자기 임하기 때문에 제자들은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집주인이 언제든 홀연히 돌아올 때 깨어서 주인을 맞이하는 종은 주인의 칭찬을 받게 될 것이다. 깨어 있다는 것은 단지 잠들어 있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주인이 맡기신 일을 성실히 감당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모든 때를 하나님의 시간으로 삼고 오늘이 바로 그날인 듯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
    
-지금은 어두운 밤과 같은 때이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잠들 수밖에 없다. 나를 영적으로 잠들게 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늘 민감하게 분별해야 하리라.
    
-주님 오셔서 나를 보실 때 깨어 맞이하는 나를 보시도록 살아내야지….
 
    
*혹시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까? 생각하며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을 수 있겠지만, 주님은 이런 생각의 싹을 아예 잘라낸다.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절대로 내 말은 없어지지 않는다’라고 말이다. 그만큼 확실한 말씀이며 새겨들어야 할 말씀이다. 세상일에는 해박하나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얕은 지식으로 관심 없이 살아갈 때가 많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대를 분별하고 영적인 분별력을 함께 나누면서 하루를 살아도 세상과 다르게 살아가기를 결심해 본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들어 징조를 통해 임박한 재난의 때를 인지하라고 하신 당부를 기억하고 분별하며 살아내야 하리라.
    
*성전 파괴에 이어 더 먼 미래인 재림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날과 그때는 오직 하나님의 영역 안에 있다. 우리는 그저 그날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주의하고 깨어 있는 것이다. 주님은 특정 시기의 제자들에게만 이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그 대상임을 강조하셨다.
    
*깨어 있으라는 주님의 당부에 순종하여 누구도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질 그때 낙오되지 않기를 바라신 것이다. 날마다 깨어 사는 것만이 인생을 가장 힘차게 사는 방법이다.
    
    
    
*주님, 늘 깨어 주님이 맡겨주신 일을 충실하게 감당하며 언제라도 주님을 기쁘게 맞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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