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붙잡히신 예수, 도망한 제자들 [막 14:43-52]
 – 2024년 03월 26일
– 2024년 03월 26일 –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를 마치신 주님은 자기가 넘겨질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고 준비하신다. 유다는 대제사장들의 무리를 이끌고 주님께 다가와 입을 맞춰 주님을 체포하게 한다. 주님을 체포하기 위해 온 ‘무리’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의 명령을 받고 성전을 지키던 사병들이었다. 로마 군대가 점령하고 있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중 유일하게 무장이 허용되었던 조직이었다. 단, 그들이 가질 수 있는 무기는 칼과 몽둥이였다. 2세기의 유대 문헌에 의하면 거룩한 명절인 유월절 기간에는 그들이 몽둥이로 무장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종교 지도자들은 이를 어겼다.
    
주님께서 예언한 대로 유다가 무리와 함께 와서 주님을 붙잡았다. 이 모든 배반과 체포 이야기에서 마가가 보여주는 것은 주님이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끌려가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성경 말씀을 이루며 진행된다는 것이다. 주님은 신실하게 자기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따라간다. 하지만 제자들은 칼과 몽둥이로 무장한 무리가 와서 주님을 잡을 때 그를 버리고 다 도망친다.
    
    
    
1. 유다와 무리의 예수님 체포(43~46절)
마가는 유다가 최후의 만찬 때 빠져나간 것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주님이 아직 “말씀하실 때” 유다가 “곧” 무리와 함께 나타난 것에 놀랄 수 있다. 어떤 측면에서는 유다가 이렇게 용의주도한 인물임을 보여주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유다가 갑자기 배반자가 되어 무장한 무리와 함께 나타난 것이다. 유다와 함께 나타난 무리에 대해서 ‘누가’는 구체적으로 “성전의 경비대장들”이라고 밝혔다. 유다는 그들과 미리 짜놓은 “입맞춤” 계획을 따라 캄캄한 밤에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 주님께 입맞춤으로 함께 온 무리에게 주님을 넘긴다(43~44절).
    
이때 유다는 주님과 입맞춤하며 “랍비여”라고 부른다(45절). “입맞춤하다”를 의미하는 동사 “카타필레오”는 44절에서 신호로 약속한 “입맞춤(필레오)” 보다 더 강한 의미가 있다. 이는 유다가 예수를 확실하게 확인해 주기 위해 입맞춤을 길게 하고 사전에 약속하지 않은 “랍비여”라는 말도 함으로써 확실하게 확인 시켜주는 장면으로 보게 한다. 그의 위선적인 행동이 역겹기만 하다.
    
    
    
2. 제자들의 저항과 도망(47~52절)
47절에 기록된 사건은 다른 복음서에도 다 기록되어 있지만, 마가가 가장 간단하게 기록했다. 요한은 칼을 휘두른 사람이 베드로이고 대제사장의 종의 이름은 ‘말고’라고 밝힌다(요 18:10). ‘누가’는 이때의 상황을 제자들이 주님께 “주여 우리가 칼로 치리이까(눅 22:49)”라고 물어보고 주님은 제자들을 향해 “칼을 가진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음을 밝혔다. 마태는 주님께서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기록한다(마 26:52~53). 그런데 마가는 단지 주님께서 무리에게 하신 말씀만 기록한다. 그것은 그들이 자신을 붙잡으려고 온 방법과 이유만을 밝히신 것이다. 무리가 주님을 잡으러 올 때 무기를 들고 온 것은 “강도”를 잡으러 온 것과 같다고 하셨고, 그들이 대낮이 아닌 어둠이 깔린 밤에 온 것은 백성들을 두려워 하기 까닭이며, 예루살렘에 도착한 이래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쳤지만 백성들이 두려워 잡지 못했음을 말씀하셨다. 그러시면서 이 모든 일은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확인해 주신다(48~49절). 주님은 하나님의 계획과 성취를 신실하게 따르고 계셨다. 자기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원하셨다.
    
    
주님께서 예언한 대로 제자들은 주님을 버리고 다 도망했다(50절). 그런데 51~52절은 매우 난해하다. 제자들이 다 도망한 것을 언급한 직후 “한 청년”의 모습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젊은이가 맨몸에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들이 그를 잡으려고 하니, 그는 홑이불을 버리고, 맨몸으로 달아났다. (새번역_51~52절). 주님의 체포 순간의 긴장감 넘치는 부분에서 어떤 청년이 맨몸에 홑이불만 두른 채 주님을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자,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했다는 다소 당황스러운 기록이 왜 이 부분에 언급되었는지 그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
    
한 가지 유추할 수 있는 단어는 “베 홑이불(신돈)”은 부유한 사람들이 입는 겉옷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보통 사람들이 걸치는 겉옷을 가리키는 단어는 “키톤”이다. 이를 근거로 이 청년이 누구인가에 대한 가장 인기 있는 해석은 마가 자신에 관한 이야기라는 의견이다.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기도할 정도로 예루살렘 성안에 큰 집을 소유한 부자였다(행 12:12). 만약 주님과 제자들이 그 집에서 최후의 만찬을 했다고 추측한다면, 청년 마가는 “베 홑이불(신돈_겉옷)”을 걸치고 만찬을 마치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는 걸음을 뒤따랐을 것이다. 이 추측이 맞는다면, 마가복음의 원 독자들은 이 부분을 읽을 때 “한 청년”이 마가임을 단박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그야말로 추측일 뿐이다.
    
이 청년의 정체는 철저하게 가려져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주님이 체포되는 상황이 매우 혼란스러웠다는 것과 주님을 따르던 모든 자들이 주님을 버렸다는 사실이다. 주님은 십자가의 길로 나아가시면서 가장 먼저 제자들에게 버림을 당하신 것이다.
    
    
    
나는?
-유다는 비열하다. 친근함과 존경의 표시였던 ‘입맞춤’을 신호로 무리에게 주님을 알려준다. 여기에 “랍비여”라고 소리 내 인사까지 하므로 확실하게 주님을 무리에게 넘겨준다. 그리스도의 제자로 영원한 생명의 복을 얻을 수 있었으나 어리석게도 주님을 배신하고 만다. 주님과 함께 보낸 제자로서의 삶이 비루하게 마무리된다.
    
-삶을 살아가면서 가룟 유다처럼 배반의 입맞춤을 하지 않기를 단단히 결심해 본다.
    
    
-무장한 무리가 유다와 함께 오자, 성경에 기록된 일이라며 선선히 잡혀주신다(49절). “그리스도가 죄인 중 하나로 여김을 받을 것(사 53:12)”은 말씀과 “내 떡을 먹던 자가 나를 대적하였다(시 41:9).” 말씀이 이에 따라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는 주님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가 한데 어울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작정하신 대로 이루시기 위해 지혜와 권능을 행사하신다.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말씀에서 약속한 대로 이루시며 십자가로 나아가셨다. 우리는 이렇게 구원받은 존재들이다.
    
    
-한 제자(베드로)가 칼을 빼어 대제사장 종(말고)의 귀를 떨어뜨린다. 하지만 주님께서 잡히시니 결국 다 도망한다. 도망하고 부인할 거라는 주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고 기도하라고 하실 때 깨어 있지 못했으니…. 말씀과 기도의 검으로 나의 그릇된 욕망을 치는 것보다, 칼로 내 욕망을 가로막는 자를 치는 것이 훨씬 더 쉽지 않은가!
    
-한 청년은 베 홑이불(부자들의 겉옷)만 두른 채 붙잡혀 가시는 주님을 따른 열정이 있었지만, 십자가의 길에 동참할 만큼 결정적인 믿음은 없었다. 깨어 기도하고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말씀 앞에 내 영혼이 직면 되어 있지 않으면 누구든지 고난 앞에서 벗은 몸으로 도망할 수 있음을 잊으면 안 된다. 주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는 것이 수치가 아니라 십자가를 외면하는 것이 진짜 수치 아닐까!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실패한다. 주님께서 자신을 버릴 것이라는 말씀에 그렇지 않다고 큰소리치던 제자들, 깨어 기도하라는 간곡한 당부에도 잠만 자던 제자들은 모두 도망치고 만다. 주님께서 경고하시고 기회도 주셨으나 모든 기회를 지나쳐 버린 것이다. 주님을 따르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고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한다. 늘 기도로 준비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주님, 오늘도 말씀과 기도로 깨어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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