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선지자에 대한 약속 [신 18:15-22]
 – 2024년 04월 01일
– 2024년 04월 01일 –
참 선지자에 대한 이해와 거짓 선지자에 대한 조치를 다룬다.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 규정과 토라를 잘 이해한다면 현재와 미래에 대한 여호와의 뜻을 알기 위하여 또는 이방 신들을 섬기기 위하여 가나안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따라 하지 않을 것이다. 참 선지자도 잘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토라를 잘 배우고 실천하여 언약 백성의 신분에 부응하며 살아갈 책임이 있다. 이런 삶을  산다면 이스라엘은 그들의 잘못을 깨우쳐 주고 경고하며 토라를 가르쳐주는 참 선지자를 알아볼 수 있고, 제 마음대로 말하는 거짓 선지자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 하실 것이고, 그런 자들의 말은 실현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1.모세와 같은 선지자(15~17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그들의 언약 백성 신분에 부응하여 살도록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실 것이다(15절). 이스라엘은 그에게 순종해야 한다. 모세와 같은 선지자는 단순히 사역의 측면 뿐 아니라 개인적인 삶에서도 여호와께 순종하는 삶을 산다. 
 
이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게 된 계기는 “총회의 날 호렙산”으로 시내산 언약 체결 상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16~17절). 여호와의 임재가 드리워진 산기슭에서 백성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십계명을 들으며 큰 불을 보았다(16절, 신 5:24-25). 이 상황에서 죽음의 위협을 느끼며 두려움에 떨었다. 여호와의 임재 가운데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듣는 것 자체가 백성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래서 모세에게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들에게 전달해 주기를 부탁했다(출 20:18~19). 여호와께서는 백성의 요청이 옳다고 인정하셨다(신 18:17). 백성은 왜 두려워했을까?
 
언약을 체결하기 전에 몸에서 장신구를 떼어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출 33:6)이나 금송아지 숭배 사건(출 34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여전히 충분히 알지 못했다는 것과 다른 신들을 섬기는 마음이 여전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장신구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신상들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이유로 여호와의 말씀을 직접 들을 때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두려움에 떨었던(출 20:19) 것은 그들의 죄로 인한 것임을 짐작케 한다. 
 
여호와의 말씀을 직접 들을 수 없는 백성을 위하여 모세가 중재한 것처럼,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자주적으로 하고 싶어 하는 이스라엘에게 경고하며 토라를 가르칠 선지자가 필요했다. 
 
 
 
2.모세와 같은 선지자(18~19절)
18절의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라는 번역을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너와 같은 선지자 한 사람”으로 한정해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직역하면 “너와 같은 선지자”이다 이는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라는 의미이다. 모세와 같은 선지자란 여호와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며 명백하게 말씀했고, 모세는 여호와의 형상을 보면서 그분의 말씀을 들었다(민 12:8). 그러므로 모세와 같은 선지자라는 것은 모세처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은 자다. 
 
즉, 이스라엘에게 언약규정, 토라를 가르쳐서 언약 백성의 신분에 맞게 마땅히 살아갈 바를 알게 해주고, 불순종할 때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책망이나 진노를 알게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세상을 위한 그분의 뜻을 선포할 자가 모세와 같은 선지자이다. 
 
 
 
3.거짓 예언자(20~22절)
만일 여호와의 이름으로 주어진 계명을 듣지 않는 사람은 여호와께서 징벌하실 것이다(19절). 여호와께서 명령하지 않은 말을 어떤 선지자가 제멋대로 여호와의 이름이나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여호와의 주권 아래 그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20절). 갈멜산 대결에서 엘리야가 처형한 바알 선지자들(왕상 18:40)이 그 예이다.
 
한편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는 선지자가 참 선지자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21절). 신명기 18:15~22는 선지자의 권한 뿐 아니라 책임도 함께 언급한다. 선지자의 역할이 중대한 만큼 책임도 무겁다. “제 마음대로(야지드)” 행동하는 선지자에 대한 조치는 신 13:1~5과 연결된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자는 다른 신을 따라 섬기자는 거짓 예언자와 다를 바 없다. 
 
 
 
나는?
-말씀을 통해 백성과 함께 하신다. 하나님은 모세가 죽은 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달할 선지자를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자신의 뜻을 대언할 선지자를 보내주시겠다는 것은 직접 하나님을 대면하고 살아남을 사람이 없기에 형제 중에서 선지자를 세워 알아듣도록 말씀해 주실 것이다. 
 
-이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궁극적으로 성취해 주셨다. 마가는 변화산에서 하늘에서 들리는 음성으로 설령 그분의 말이 나의 가치관에 어긋나더라도 내 가치관을 포기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막 9:7). 주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말씀을 따라가는 것은 오늘날 말씀 사역자들의 가르침과 선포(설교)를 통해, 개인적으로는 말씀을 읽고 묵상을 통해 성령께서 깨닫게 하심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사탄은 설교자에 대하여 온갖 소리와 상황과 사건들을 통해 그를 통해 들려오는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고, 마음을 분주하게 만들어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을 무가치하게 만들기를 끊임없이 유혹한다. 
 
 
-그렇기에 본문에서 “선지자를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19절)에 순종해야 하듯, 말씀을 전하는 이를 통해, 스스로 말씀을 읽고 깊이 생각하는 시간들을 통해 말씀해 주시는 것에 마음을 열어 집중해야 한다. 하나님은 말씀과 성경공부, 읽기, 묵상, 설교 등을 통해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나와 동행하고 계심을, 때로는 책망, 지적, 경고와 심판의 메시지 등을 주신다. 그러므로 내가 듣고 싶거나 듣기 좋은 말씀만 고집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곧이 들을 수 있는 영적 감각이 필요하다. 
 
 
-또 선지자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전해야 한다(20절). 하나님의 말씀이라면서 개인적인 사담이나, 다른 사상, 가치, 자신의 생각을 전달해서는 안 된다. 바른 전달은 바른 듣기에서 비롯됨을 늘 기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는 이들은 겸손하고 진지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공동체에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잘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대언자이다. 자기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을 담아 전하는 자이다. 더하거나 빼서도 안 된다. 다른 신들의 이름, 다른 세상의 이념과 섞어서도 안 된다. 이렇게 하면 가장 먼저 전하는 자가 죽는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청중이 원하는 말, 자신이 설득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이들은 이 말씀을 듣고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잘 들어야 잘 전할 수 있다. 제대로 들어야 제대로 전한다. 나에게 이와 같은 은혜가 풍성하기를 소망해 본다. 
 
 
-또 성도들은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 바른 말씀과 거짓 예언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21~22절). 거짓 선지자는 목자가 아니라 이리이기에 양을 노략하고 죽이며 더 나아가 공동체를 파괴하고 위험에 빠뜨린다. 거짓 ㄱ선지자가 전하는 거짓 교훈과 예언에 속지 않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분별력이 필요하다. 
 
-겉으로는 성경을 인용하며 그럴듯하게 말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정반대의 말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씀에 대한 분별력은 꾸준한 읽기와 묵상, 성령을 의지한 기도를 통해 깨우치고 분별하도록 이끄실 것이다. 
 
-본문에서는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는 원리를 그가 한 말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가 한 말이 말씀에 근거한 것인가를 보아야 한다. 또 그가 한 말대로 실현되는지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면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사건이 되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열매 없이 말만 무성하고 화려한 자들을 주의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마 7:15~18).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세워 자신의 말씀을 그 입에 담아두겠다고 하셨다. 뜻하지 않게 선지자는 엄중한 권위를 갖게 되었고, 듣는 이들과 전하는 이의 책임의 경계가 분명해 진 것이다. 듣는 이들은 인간 선지자의 말을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을 듣듯이 경외심을 가지고 듣고 순종해야 한다. 이를 무시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상응하는 벌을 주시겠다고 하신다. 
 
*반면 전하는 자는 하나님께 받은 모든 명령을 바르고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임의로 가감하거나 가공한다면 죽임을 면치 못한다. 이처럼 오늘날 말씀 사역자의 생명은 두려운 마음으로 말씀하신 뜻을 진실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있으며, 회중의 생명은 경외심을 가지고 듣고 순종하는 데 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다. 세우신 말씀 사역자를 통해,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들을 통해 말씀하여 주신다. 기갈을 완벽하게 해소하는 폭포수와 같은 말씀은 아닐지라도, 사역자를 통해 전해지는 말씀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고 스스로 말씀을 읽고 들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씀 사역자가 세워진 이유, 그 사역자의 역할과 의무, 참 사역자의 증거를 이해할 때 말씀 중심의 공동체가 세워진다. 더온누리 공동체는 말씀 중심의 공동체이어야 하리라. 
 
-그러므로 좋은 말씀 사역자를 세우는 것은 공동체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런 사역자는 하루아침에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 않고 거둘 수 없고, 뿌리지 않고 얻을 수 없다. 건물을 올리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을 세우는 것이다. 
 
 
 
*주님, 세워주신 말씀 사역자들을 통해 잘 듣고 배우며 묵상을 통해 하나님을 더 알게 하소서.
*주님, 먼저 잘 듣고 제대로 전달하는 것에 온 힘을 집중하겠습니다. 제게 말씀하여 주십시오.

Leave a Comment

매일성경 묵상

스데반의 설교_모세 이야기 [행 7:17-36]

스데반은 출애굽의 이야기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모세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모세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바로 공주의 아들로 입양된 이야기로 시작하고, 청년 시절 애굽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2차 투옥과 하나님의 적극 개입 [행 5:12-26]

산헤드린 공회의 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솔로몬의 행각에 모이고 하나님은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 지속적으로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신다. 이에 시기로 가득한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을 다시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