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전쟁에 관한 규정 [신 20:1-20]
 – 2024년 04월 03일
– 2024년 04월 03일 –
신명기 20장은 전쟁에 대한 규례이다. 고대의 전쟁은 종종 “거룩한 전쟁”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왕들은 전쟁에 출정하기 전에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묻기도 했다. 전쟁 준비에 대한 언급(1~9절)을 한 다음에 적들을 처리하는 방식(10~20절)에 대해 언급한다. 전쟁 준비에서 마무리까지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서 시키신 대로 해야 한다. 이 전쟁은 여호와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순종이 승리의 길이 된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 또는 주변국의 침략을 받아 전쟁하게 될 때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싸움을 진두지휘하신다는 점이다. 따라서 군사력으로는 이스라엘이 열세일지라도 승리는 보장된 것이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이에 부응하여 총력을 기울여 하나님의 지휘를 따라야 할 것이다. 이 전쟁에서 앞장서신 여호와 하나님을 따라 최선을 다할 사람만 싸움에 나가야 한다.
    
    
    
1. 전쟁 준비(1~9절)
전쟁 준비는 단지 가나안 땅 정복에 국한되지 않는다. 가나안에 들어간 이후의 전쟁까지 포함된다. 이스라엘이 적군과 싸울 때 직면하게 될 두 가지 사실은 눈앞에 닥친 현실과 과거에 경험한 실상이다. 먼저 적군의 병력이 이스라엘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적들의 행동조차 통제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하신다는 점이다(1절). 아무리 적들이 강성하여도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이기지 못한다. 그럼에도 모세는 이스라엘이 강력한 적들을 맞닥뜨리면 겁을 내어 두려움에 떨 수 있다는 현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런 현실에 함몰되지 않고 실상을 직시하도록 돕기 위해 제사장이 나선다(2~3절). 제사장은 싸움터에서 적들을 상대할 분은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강조한다(4절).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힘으로 적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싸우신다. 겉으로 보이는 적들의 강성함보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실상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
    
전쟁을 위해 징집이 이루어질 때 징집이 면제되는 경우를 서술한다. 1~4절에 의하면 이스라엘 전쟁의 승리는 여호와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므로 군사력에 좌우되지 않는다. 이를 전제하고 네 가지 경우에 징집을 면제하라고 하신다(5~9절). 첫째, 새집을 짓고 그 집에서 살아보지 못한 자다(5절).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그의 언약 백성 각 사람이 가나안 땅에서 안식할 것을 약속하셨다. 따라서 새집을 지은 사람은 그 집에서 살 자격이 있다. 둘째,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일을 먹어보지 못한 자다. 처음 포도원을 만들었을 때의 규정에 따르면 처음 3년 동안 포도나무에서 열매를 거두지 않고, 4년째 열매는 하나님께 드리며 5년째부터 포도를 즐길 수 있다(레 19:23~25). 그렇다면 처음 포도원을 만든 사람은 적어도 5년 동안 징집에서 면제된다. 전쟁을 지휘하시는 하나님은 포도원에서 열매를 수확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소작인이 이스라엘의 각 개인에게 그 땅이 생산하는 좋은 것을 누리게 하시는 분이다. 셋째, 약혼하고 결혼을 앞둔 자다(7절). 이스라엘 백성 개개인은 조상 때부터 약속된 가나안 땅의 번영을 누릴 자격이 있다. 그 번영의 밑거름은 행복한 가정이다. 따라서 언약 백성은 누구든지 전쟁 때문에 그 행복을 박탈당하지 않아야 한다. 넷째, 두려워서 마음이 허약한 자들로(8절), 전쟁에 참여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자들이다. 왜냐하면 두려움은 싸움에 집중하는 데 방해되고, 또 전염성이 있어서 군사들의 마음을 낙담케 할 우려가 있다. 그런 자들은 공동체로 돌아가서 일상에 충실하여 공동체의 삶에 이바지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이 징집 면제 규정은 크게 두 가지 목적을 담고 있다. 먼저, 적군과 싸움에서 작전 지휘를 하시는 하나님의 개입에 군사들이 집중하여 용감하게 최선을 다하여 싸우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 하나는 비록 전쟁 중이라도 언약 공동체의 일상은 여전히 유지되어야 하고, 각 사람이 수고한 열매를 먹고 누릴 자격이 있다는 점이다. 또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번성하는 과정에서 가정이 잘 세워져야 한다.
    
    
    
2. 가나안 민족들이 아닌 다른 이방 사람들과의 전쟁(10~15절)
이스라엘의 화평을 받아들이면 그 성읍 주민들은 조공을 바치는 봉신으로 이스라엘을 섬길 것이다(11절). 이것은 이스라엘에 약속으로 주어진 땅이 아닌 곳에서 전쟁할 경우인데 침략 전쟁이 아니라 아마도 종주권 회복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성경에 기록된 이 같은 경우는 사무엘 하 8의 다윗 왕과 아람 국가들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아람 왕 하닷에셀의 도전에 다윗은 유브라데 강 부근의 아람 국가들의 새로운 종주로서 군사 원정으로 맞선다. “당신들이 어떤 성읍에 가까이 가서 공격할 때는, 먼저 그 성읍에 평화를 청하십시오. 만일 그 성읍 백성이 평화 제의를 받아들이고, 당신들에게 성문을 열거든, 그 성안에 있는 백성을 당신들의 노비로 삼고, 당신들을 섬기게 하십시오(10~11절).”
    
만일 화평 제안을 거절하면 이스라엘 군사들은 그 성읍을 포위 공격한다. 여호와께서 승리를 주시면 모든 남자는 처형해야 하고 여자와 아이들, 가축들은 전리품으로 취할 수 있고, 적군에게 빼앗은 것을 먹을 수 있다(12~14절). 이 전쟁 원칙은 가나안 사람들이 아닌 이방 민족들과의 싸움에서 적용할 수 있다(15절).
    
    
    
3. 가나안 사람들과의 전쟁(16~18절)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신 가나안을 정복할 때 이스라엘은 가나안 사람들을(호흡이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_16절) 모두 진멸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우상들에게 행한 가증한 일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우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고, 이로써 여호와께 죄를 범하지도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18절). 이렇게 진멸해야 할 가나안 땅 족속들은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17절)” 이었다.
    
    
    
4. 적들의 성읍 주변 나무들에 대한 지침(19~20절)
어느 성읍을 쳐서 점령하려고 할 때 나무를 공격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무분별하게 나무를 베지 말라고 하신다. 특히 유실수 열매는 중요한 식량 공급원이기에 과목이 아닌 수목만 베어서 사용하라고 명령하신다. 특히 가나안 성읍들을 점령하면 이스라엘은 이미 잘 가꾼 포도밭과 올리브밭을 차지하여 누리게 될 것이다(신 6:11). 따라서 다양한 과일을 수확할 수 있는 과목들을 잘 보존하라 하셨다.
    
    
    
나는?
-전쟁에 관한 여러 규정은 이스라엘의 전쟁을 주도하고 승리를 거두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며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시는 분이시다(1~4절). 제사장은 전쟁에 앞서 병사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일깨워 주며 겁내지 말고,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고 말한다.
    
-나를 두렵게 하는 인생의 전쟁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반응할까?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리라. 우리 공동체와 함께하시며, 우리 공동체를 위해 영적 전투를 이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리라.
    
-가나안 땅에서 기다리는 이스라엘의 전쟁은 승리가 보장된 전쟁이다. 눈에 보이는 전력은 가나안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하지만 애굽을 이기신 하나님의 전쟁임을 잊으면 안 된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신뢰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할 일은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싸워 승리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마음을 다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전쟁에 임할 수 없다(5~9절). 하나님은 새것(새집, 새 포도원, 새 신부) 에 마음을 두고 온 자와 마음이 허약한 자들이 다른 형제들의 마음을 약화하거나 낙심시키지 못하게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하셨다. 비록 소수여도 마음이 헌신된 군사들을 통해 여호와의 전쟁을 수행하게 한 것이다.
    
-전쟁에 참여하면 안 되는 자들의 면면에 담긴 주님의 마음은 특별하다. 새집을 짓고 살아보지 않은 자, 포도원을 만들고 열매를 먹어보지 못한 자, 약혼하고 결혼하지 않고 징집이 된 자, 마음이 약한 자는 징집 면제다. 긍정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는 전쟁 중에서도 복된 일상을 누리게 하시는 분이심을 깨닫는다. 전쟁보다 약속의 땅에서 누려보는 약속의 성취가 먼저인 하나님이시다. 그 행복을 만끽해 보지 않는 자는 땅을 차지하고 지켜야 하는 동기 부여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공동체에 해를 끼칠 정신력을 경계하신다.
    
-이 전쟁은 가나안 전쟁을 위한 전쟁이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 말씀을 따라 축복을 누리기 위한 순종과 믿음의 전쟁이기 때문에 믿음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내가 오늘도 임하게 될 영적 전투의 자세는 어떠할까?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 되어 이 싸움에 임하여야 하리라. 나는 믿음의 집중력을 유지하고 있을까?
    
    
-선전포고, 전쟁보다 평화가 우선이다(10~18절). 가나안 지역 밖의 이방인과의 전쟁은 이스라엘이 먼저 평화를 제안하되 상대방이 이를 거부하고 전쟁을 선언했을 때 여호와의 전쟁을 수행하였다. 전쟁은 서로에게 파괴와 상처를 남기는 일이기에 신중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가나안 민족들에 대해서는 모든 호흡하는 것을 진멸하게 하셨다. 이는 가나안의 가증한 죄를 심판하고 그 죄에 이스라엘이 물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출애굽의 하나님을 인정하고 화평을 청하는 자들과는 싸우지 않지만, 화평하기를 거절하는 자는 진멸한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나안 민족들도 진멸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할 때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의 모든 다원주의가 약속하는 거짓된 평화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역사의 주인으로 인정할 때 누릴 수 있는 참 평화안에 거하기 위해서는 거짓 평화가 조금도 남아있어서는 안 된다.
    
    
-목적 없이 함부로 자연을 파괴하면 안 된다(19~20절). 전쟁 중에라도 목적이 있는 경우에 열매가 없는 나무만 베어낼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을 인간의 책임 아래 두신 것은 인간 마음대로 사용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잘 보호하고 관리하라는 것이다.
    
-가나안 전쟁은 신뢰와 맡김의 전쟁이고, 누림과 헌신의 전쟁이며, 화평과 진멸의 전쟁이었다. 나의 인생이라는 전쟁도 이와 같지 않겠는가? 하나님만 신뢰하고 그에게 전쟁의 향방을 맡기며, 전쟁터와 같은 삶의 현장이지만 주님이 주시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누리게 하실 만큼 확실하게 주도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믿음의 싸움은 전적으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화평을 전하고 이를 거절하면 진멸하듯, 철저하게 구별된 믿음의 방식으로 감당하는 전쟁이어야 하는 것이다.
    
 
    
*주님, 나와 우리 공동체의 영적 전쟁에서 하나님만 신뢰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주님, 분투하는 전쟁터와 같은 일상에서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삶의 축복을 누릴 기회를 주시는 은혜를 기억하겠습니다. 소소하게 행복한 일상을 기꺼이 감사함으로 누리겠습니다.
*주님, 평안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들에게는 화평을, 하나님을 끝까지 거절하며 대적하는 이들에게는 단호함으로 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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