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땅을 더럽히지 말라 [신 21:1-23]
 – 2024년 04월 04일
– 2024년 04월 04일 –
가나안은 언약 질서가 확고하게 세워질 약속의 땅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 땅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이스라엘은 토라를 준수하며 그분의 임재 가운데 거하는 백성답게 살아내어 그 땅을 더럽히지 않아야 한다. 이는 가나안 땅의 위치가 고대 메소포타미아, 애굽, 고대 터키와 아라비아 국가들을 연결하는 지정학적인 위치에 있기에 주변국의 영향을 쉽게 받을 수 있어서 특히 중요했다. 모세는 가나안 땅과 그 안에서 살아갈 백성이 언약 질서에 부응하며 살도록 제5계명과 제6계명에 근거한 세부 규정들을 제시하고 있다.
    
범인을 알 수 없는 살인이 일어난 경우, 그 땅을 정결하게 하기 위한 규정을 밟아야 한다. 다른 민족들과 달리 이스라엘은 패전국의 여자들을 약탈하거나 가정 질서를 파괴하는 행동을 용납하지 않는다. 가나안은 여호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땅이므로 이스라엘은 그분의 언약 백성다운 삶을 아가야 한다.
    
    
    
1. 범인을 알 수 없는 살인에 관한 규정(1~9절)
들판에서 피살된 시체를 발견했는데 범인을 알 수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소개한다. 살인범이 잡히지 않았기에 땅은 심각하게 더럽혀졌다. 이런 경우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먼저 장로와 재판장이 그 피살된 곳에서 가장 가까운 성읍이 어딘지 밝힌 후에 그 성읍에서 규정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도록 조치한다. 이는 피해자가 그 성읍에 속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가장 큰 책임 의식을 가지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그 성읍의 장로들은 농사에 사용되지 않은 암송아지(아직 부리지 아니하고 멍에를 메지 아니한)를 취하여 항상 물이 흐르고 한 번도 경작한 적이 없는 골짜기에서 그 암송아지의 목을 꺾는 제의를 행하여야 한다(3~4절).
    
이 제의에는 장로와 재판장(그들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사 자기를 섬기게 하시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신 자_5절)도 함께 참여한다. 그리고 시체가 발견된 가장 가까운 성읍의 모든 장로는 목이 꺾인 암송아지 위에 손을 씻고(6절) 성읍 주민들을 대표하여 그들이 살인하지 않았고 그 현장을 목격하지 못했음을 고백해야 한다(7절). 그런 후에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범인을 알 수 없는 살인죄를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기를 간구한다(8절). 이와 같은 절차를 통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죄를 구속하여 주신다(8절).
    
    
    
2. 사로잡힌 여자와의 결혼에 관한 규정(10~14절)
전쟁에 나가 승리한 이스라엘 군인은 전쟁포로들 가운데 마음에 드는 여자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다(10~11절). 그러려면 먼저 자기 집으로 그 여자를 데려가서 머리를 밀고 손톱을 깎고, 포로의 옷을 벗고, 그녀의 부모를 위하여 한 달 동안 애곡하도록 한다(13절). 머리를 밀고 손톱을 깎는 행위는 애곡하는 의식이지만, 신분의 변화나 종교의 변화를 의미할 수도 있다. 이전에 믿었던 이교의 상징을 제거함으로써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다. 특히 신분의 변화는 포로의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 데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애곡 또한 그 여인의 부모가 생존한 여부와 상관없이 그녀가 다시는 부모를 보지 못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애곡할 만하다.
    
이 기간이 지난 뒤에 부부 연을 맺을 수 있다(13b 절). 이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포로가 된 이방 여인의 육체적, 도덕적, 정서적인 복지가 정복자의 성적 욕구보다 더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또한 잡혀 온 여인은 남자의 변덕스럽고 신뢰할 수 없는 성품으로 인해 고통받아서는 안 된다. 또한 어떤 이유에서든지 이혼하면 그 여자는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다(14절). 그녀를 팔거나 종처럼 취급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상품으로 여기면 안 된다.
    
이 규정은 포로로 잡혀 온 여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고대 근동에서 패전국의 여자들은 승전국 군인들의 약탈 대상이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전쟁의 승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약자들을 다룰 때 여호와께서 자신들을 긍휼히 여겨 주신 것처럼 긍휼히 여겨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종과 외국인, 과부를 돌보신다.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므로 그들의 복지뿐 아니라, 잔인하게는 아니지만, 이방 여인을 무심하게 다룰 만한 사람들에게서도 보호받도록 대비책을 마련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약자를 긍휼히 여기신다.
    
    
    
3. 맏아들에 대한 규정(15~17절)
일부일처가 창조 질서에 부합하지만, 때에 따라서 이스라엘에게 일부다처가 허용된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관한 규정이다. 두 명의 아내가 있는 가장은 그의 아내들에 대한 감정에 따라서 맏아들의 순서를 바꿀 수 없다. 또한 아들은 아버지가 자기 어머니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법적 권리를 빼앗길 수 없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해석은 결코 변덕스러운 인간의 마음과 감정에 좌우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남자와 그의 새로운 아내와의 감정이 어떠하든지 지켜져야 한다. 맏아들은 가문을 이어갈 가족의 우두머리이므로 그의 권리가 박탈되는 것은 안 된다. 따라서 아버지는 맏아들에게 재산 중에서 두 배의 몫을 챙겨주어야 한다.       
    
    
    
4. 역하는 아들에 관한 규정(18~21절)
이스라엘의 가족 관계는 언약 중심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토라를 가르칠 의무가 있다(신 6:4~9). 따라서 부모의 가르침을 지속해서 듣지 않고 반항하며 방탕하고 술만 마시는 자녀는 공동체의 장로들에게 문제를 이양해야 한다. 이러한 행위는 부모의 권위에 불순종하는 것이고, 이스라엘 공동체의 기초가 되는 언약 질서에 완전히 벗어난다. 이런 생활 양상이 공동체 안에 뿌리내려 악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공동체 차원에서 돌로 쳐 엄중하게 다스려야 한다.
    
이러한 의미로 가족 관계가 언약 중심으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약 공동체는 언약 질서에 순응하기 위해 혈육 중심이 아니라 토라, 즉 언약 규정을 따름으로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 중심이어야 함을 명백히 보여준다.
    
    
    
5. 나무에 매단 시체에 관한 규정(22~23절)
사형에 처한 자의 시체를 나무에 매달아 놓는 이유는 언약 공동체의 모든 사람에게 사형받을 죄를 범하지 않도록 엄중하게 경고하기 위함이다. 이런 경우 그 시체는 해지기 전에 반드시 장사 지내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저주와 형벌을 받았기 때문이고 또 여호와께서 유업으로 주신 땅을 더럽히지 않기 위함이다.
    
가장 먼저 땅의 거룩함을 염두에 두지만, 인도주의적인 관심도 내재되어 있다. 시체를 밤새 내버려 두면 분명 야생동물과 까마귀의 먹이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이 금지 조항은 희생자의 가족이 느낄 정서적 부담감에 대해 세심하게 배려한다.
    
    
    
나는?
-살인자를 알지 못하는 시체에 관한 규정, 전쟁 포로를 아내로 삼는 규정, 사랑받지 못한 아내 소생의 장자 권리, 패역한 아들의 징벌, 나무에 달린 시체에 관한 규정 등이 소개된다. 이 규정들은 모두 땅과 공동체의 정결과 관련되어 있다.
    
-미해결 살인 사건, 심판 되지 않은 사건은 공동체를 더럽힌다(1~9절). 이 사건이 일어나면 가장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은 물이 항상 흐르는 골짜기에서 암송아지의 목을 꺾는 의식을 행하고 손을 씻음으로 그 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처리해야 한다. 억울한 사건이 일어날 때 자기 일이 아니라고 드러내 봐야 좋을 것이 없다며 그냥 덮어버리지 않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해결되지 않는 죄들이 공동체 전체를 죄로 물들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공동체가 적극적이어야 한다.
    
-사회적인 불의나 국가적인 폭력, 이념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약자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책임을 통감하고 있는가?
    
    
-어떤 사람이라도 물건 취급하거나 비인간적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10~14절). 아무리 전쟁 중에 사로잡힌 여자라 할지라도 욕망의 대상으로 취급할 수 없었고 아내로 삼고자 한다면 공식 절차를 밟도록 했다. 나는 나보다 힘없는 사람들을 어떤 자세로 대할까?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마 25:40)을 기억해야 한다.
    
    
-개인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공적 정의를 따라야 한다(15~17절). 미워하는 아내가 낳은 아들이 장자라고 해서 장자의 권리를 빼앗아 사랑하는 다른 아내가 낳은 아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다. 공동체 안에서는 개인의 감정보다 공동체의 원리가 우선한다. 혹시 개인의 감정과 의견을 내세워 공동체의 원리나 규율을 무시하지는 않는가? 성경이 명확하게 하나님의 뜻을 말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내 뜻을 고집하며 무리하지는 않는가?
    
-아내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고 그에게서 난 장자를 두고 애정을 가진 아내의 아들을 장자로 삼아서는 안 된다. 사람의 감정에 따라서 말씀의 기준이 흔들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를 순종하는 자녀로 키워야 한다(18~21절). 아무리 완악하고 속을 썩이는 아들이라고 할지라도 돌로 쳐서 죽이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할 만큼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이런 법을 주신 것은 자녀 교육에 대한 부모의 일차적인 책임과 자녀들의 완악함과 불순종을 미연에 예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권위와 책임 의식을 가지고 자녀에게 순종의 훈련을 할 뿐 아니라 순종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아무리 아들이라도 지속해서 불순종하고 방탕하며 술에 찌들어 부모를 욕되게 하고 공동체의 질서를 파괴하면 부모가 그를 고소하고 공동체가 그를 죽일 수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주님, 개인적인 감정, 욕구, 상황보다 하나님의 공의를 따르며 지금 여기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누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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