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언약 백성의 자격과 정결한 삶 [신 23:1-18]
 – 2024년 04월 07일
– 2024년 04월 07일 –
신명기 23장은 다양한 율법이 모여있다. 가장 먼저 다루는 것이 총회법이다. 총회는 이스라엘 공동체 구성원의 중요한 모임으로 본문은 총회 구성원에게 가입될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나눔으로써 총회 구성을 제한한다(1~6절). 하지만 일부 이방인이 총회 구성원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규정함으로써 개방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7~8절). 그리고 진영을 거룩하게 하는 법이 이어지는데, 이것은 거룩한 전쟁을 염두에 둔 규정이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므로 불결한 진영의 이스라엘과 함께하지 않는다(9~14절). 마지막으로 기타 규정은 여러 율법 모음으로 통일성은 없지만 중요하다(15~18절).
    
이스라엘 백성은 삶의 전 영역에서 언약의 관점으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는지, 적군들과 맞서고 있는 진영에서 군사들은 어떻게 일상의 순환을 정결하게 유지해야 하는지 규정에 근거해서 판단하고 행동해야 했다. 언약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여호와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거나 민사와 정치 문제를 다루는 여호와의 총회에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들, 이스라엘 백성을 대적하여 하나님의 경륜이 구현되는 과정을 방해한 대적자들은 들어올 수 없다. 또한 이방 민족들의 군사 진영과는 달리 이스라엘 군사들의 진영은 여호와의 거룩하심이 반영된 정결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여호와께 드리는 것은 토라를 실천하여 그분의 통치를 받는 자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다.
    
    
    
1. 여호와의 총회에 참가할 수 없는 자들과 가능한 자들(1~8절)
1절은 고환이 상했거나, 음경이 잘린 사람은 들어올 수 없다고 선언한다. 이는 질병이나 사고가 원인이 아니다. 내시나 환관은 하나님의 축복에서 제외되지 않았다(사 56:3~5). 하지만 다른 신에 대한 인정의 표시로 스스로 거세한 사람은 이스라엘 공동체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사생자(맘제르_2절)는 종교적 혼혈아로 이해하는 것이 낫다. 이는 제의적인 매춘으로 또는 잡혼으로 태어난 이들을 가리킨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우상을 섬기는 양육을 받게 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십 대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총회에 참가할 수 없다. 이 규정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 불가능하게 보이지만, 그런 아이들이 부모들의 잘못을 깨닫고 토라를 배우고 깨달은 것을 일상의 삶 속에서 실천하여 십 대에 이르기까지 순종하는 삶을 살면, 즉 완전히 우상과 관계된 삶을 떠나면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총회는 국가정책을 여호와 중심으로 새롭게 하기 하여 언약을 갱신하기도 하고, 이스라엘이 나아갈 영적 방향을 제시해 주는 임무를 띤다. 따라서 총회의 각 구성원은 여호와 중심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하므로 사생아와 그 후손들이 여호와의 총회로 들어오려면 여호와 중심의 삶을 구축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3~6절은 암몬과 모압 사람들이 자손 대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모인 총회에 참가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암몬의 잘못은 약한 자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필요를 채워주지 않은 것으로, 이는 당시 윤리에도 벗어난 행동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진로를 저지하고, 모압은 발람을 고용하여 이스라엘에게 저주를 내리려고 시도했다(4절). 그러나 이런 시도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좌절된다(5절). 발람은 저주 대신에 축복하게 되었고 모압은 이 일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된다. 그래서 영원히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외는 있어 왔다. 룻과 같이 자신이 섬기던 신을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며 경외한 사람(룻 1:16)은 예외적으로 허락이 되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암몬과 모압 사람들과 정치적 동맹을 맺거나 친분을 맺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6절).
    
하지만 일정 요건을 갖추면 총회에 들어올 수 있는 이방인들이 있었는데, 에돔과 애굽이다. 만일 에돔 사람이나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에 살게 되면 그들의 삼대 후의 자손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있다. 에돔은 에서의 후손들이자 이스라엘의 형제다. 이들은 가나안 민족들처럼 혐오의 대상이 아니다. 또한 애굽은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체류하는 동안 압박과 고난을 겪었지만, 그들이 민족으로 성장하게 한 요람이다(신 26:5). 따라서 암몬과 모압과는 다르게 대하라고 명령하신다.
    
    
    
2. 진영을 거룩하게 하라(9~14절)
이 단락은 군사 원정 동안에 진영을 정결하게 유지하기 위한 규정들을 제시한다. 이 규정은 하나님께서 진영에 함께 계시므로 진영이 정결하게 유지되어야 하는 원리를 따른 것이다. 진영 내에서는 어떤 악한 일도 스스로 삼가야 한다(9절). 10~11절에서는 밤에 몽설하여 부정해진 자가 진영 밖으로 나가서 해질 때에 몸을 씻고 해진 후에 진영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예로 든다. 또 진영 밖에 화장실을 두어 생리현상을 해결하라고 하신다(12~14절). 진영은 여호와께서 머무시는 장소이고, 적군과의 싸움을 진두지휘하시는 장소이기도 하다(14절). 따라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부응하여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진영도 정결하게 유지해야 한다.
    
또한 전쟁에서 승리한 후 적의 금과 은을 탄하여 도금된 우상이나 우상숭배를 의미하는 장신구 같은 것들을 진영으로 가져온다든지, 또는 패전국의 약자들을 강탈하는 행동은 더욱 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행실들은 이스라엘 군사들을 부정하게 하기 때문이다.
    
    
    
3. 도망친 노예, 창기에 관한 규정(15~18절)
이스라엘 백성은 노예로 지냈던 때를 기억하여 노예들을 압제하면 안 된다. 분문은 히브리인 노예가 도망친 경우와 다른 나라에서 이스라엘로 도망쳐 온 경우 모두 그 노예를 주인에게 돌려보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히브리인 노예가 주인을 피하여 도망쳤다면 그가 원하는 곳 어디서든지 살 수 있다. 또 이스라엘을 종주국으로 섬기는 봉신국에서 도망쳐 온 노예도 자신이 원하는 장소를 선택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그가 그들 가운데 정착하게 하고, 그를 압제해서는 안 된다. 도망친 노예들에게 안전한 나라가 되라는 뜻이다.
    
이 규정은 고대 근동의 함무라비 법전과 비교된다. “도망친 종은 반드시 주인에게로 돌려보내야 하고 그를 주인에게 돌려보낸 사람에게 주인은 은 2 세겔로 보상해야 한다.” 또한 당시 일반적인 봉신 조약과 동위 조약에서는 정치적 이유로 도망친 자는 반드시 모국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조항이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 중 청춘 남녀는 몸을 팔거나 이방신들을 섬기는 제의적 창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행실은 여호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그분의 경륜을 이루어 갈 언약 백성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가나안 사람들을 본받는 삶의 방식이다. 따라서 그런 행실로 얻은 소득 또한 어떤 시원 제물로도 여호와께서 임재하시는 성전에 가져와서는 안 된다. 그것은 여호와께 가증하고 혐오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거룩함과 온전함이 요구된다(1~2절). 하나님은 거룩하고 온전하시기에 우상숭배를 위해 생식 기관을 상하게 하거나 거세한 자들, 음행의 결과로 태어난 자들은 언약 백성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셨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출신 배경과 육체의 상함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으시고 우리를 언약 백성으로 삼아 주셨다(사 56:3~5). 그 은혜에 감사히 반응한다면 더욱더 거룩하고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거룩한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전략이나 전력이 아니라 정결이다(9~14절). 전쟁에 임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악한 일을 삼가고 진영을 거룩하게 하는 데 힘써야 한다. 이는 가나안 정복 전쟁이 하나님의 거룩성을 반영하는 거룩한 전쟁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 공동체는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적으로도 거룩함과 정결을 위해 더욱 주의하고 노력해야 한다.
    
-압제당하는 자를 돕고 보호해 주어야 한다(15~16절). 이스라엘은 도망쳐 나온 종에게 안전한 도피처를 제공해 줌으로써 하나님의 자비를 드러내야 한다. 지금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노예처럼 짐승처럼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 이웃들을 외면하면 안 된다.
    
-제물은 드리는 자의 인격과 삶의 연장선상이다(17~18절). 하나님은 가증한 일과 방법으로 번 돈을 가져오지 못하게 하신다. 혹시 어떤 방법으로 돈을 벌든 교회만 나오고 헌금만 드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큰 오산이다.
    
    
    
*주님, 하나님 나라 백성 삼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결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삶을 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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