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을 품어 내는 삶 [신 25:1-19]
 – 2024년 04월 10일
– 2024년 04월 10일 –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언약 백성으로 하나의 큰 가족이다. 가나안 땅에 흩어진 작은 언약 공동체는 자신의 소명을 기억하여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에 돈독한 신뢰 속에서 여러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신명기를 통해 율법이 강조하려는 정신을 파악할 수 있다. 율법은 죄인을 처벌하라고 명확하게 규정한다. 동시에 죄인을 무차별 폭행하는 행위를 금지하기도 한다. 죄인도 형제이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죽은 형제에 대해 살아있는 형제가 해야 할 의무를 규정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죽은 자의 권리라고 해도 무방하다. 만약 그에게 후손이 없다면 이스라엘 중에 끊어질 수 있으므로 대를 이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살아있는 형제의 의무이다. 그 밖의 규정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공정”이다. 신명기가 시종일관 주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1. 공정한 재판과 처벌(1~3절)
언약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에 법적인 문제가 발생하여 재판할 때 재판관은 시비(是非)를 분별하여 옳은 사람(의인)과 그른 사람(악인)을 가려내는 공정한 판결을 내어야 한다(1절). 악인이 매를 맞을 사람이면 그 죄의 정도에 따라 매의 수(數)를 정하되 40대를 넘길 수 없고, 재판관이 출석한 가운데 막대기로 때리게 한다(2절). 이런 방법으로 재판관은 판결이 올바르게 시행되는지. 또한 죄인을 올바르게 다루는지도 감독할 수 있다.
    
죄인은 그의 죄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치러야 하나, 언약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잘못한 형제를 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처벌의 목적이 죄인을 훈육하고 공동체 안에서 바로 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여호와 중심의 삶, 말씀을 묵상하고 이해하여 실천하는 삶을 살게 하려고 행하는 처벌이기 때문이다.
    
    
    
2. 일하는 소에 대 규정(4절)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추수한 곡식을 탈곡할 때 가축이 타작마당에 펼쳐놓은 곡식 단을 짓밟게 하여 알곡을 줄기에서 분리했다. 때로는 황소에게 탈곡 썰매를 끌게 하여 탈곡하기도 했다. 소가 이런 일을 할 때는 망을 씌우지 말고 이따금 곡식을 먹도록 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창조주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창조 시 동물에게도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본받아 동물을 다스려야 한다. 따라서 사람을 위해서 일하는 소가 배고플 때 곡식을 먹을 수 있게 그 입에 망을 씌우지 않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본받는 행동이다.
    
    
    
3. 죽은 형제에 대한 의무(5~10절)
이 규정은 두 요건이 해당하면 시행된다. 먼저 형제가 함께 대가족을 이루어 각자 일정한 책임을 분담하며 살다가 한 사람이 죽은 경우이다. 또 하나는 남편이 죽은 과부에게 아들이 없는 경우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 과부는 밖에서 남편감을 찾지 말고 함께 살고 있는 죽은 남편의 형제와 결혼해야 한다. 이 규정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있는 독특한 규정이 아니라 고대 근동 지역에서도 존재했다.
    
이 제도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기업”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는 땅이 기업으로 분배되었고 지파는 그 땅을 지파에 속한 개인에게 분배했다. 결혼한 남자가 자식이 없이 사망했고, 그의 아내가 타인, 즉 죽은 자의 형제가 아닌 다른 사람, 다른 지파의 남자나, 이방인과 결혼할 때 죽은 자의 유산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 따라서 이스라엘은 한 지파의 기업이 다른 곳 또는 이방인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려면 죽은 자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 형제가 죽은 자의 아내와 결혼하여 아내로 맞이하라고 명령하는데, 이를 “수혼제(嫂婚制_Levirat)”라고 한다. 이렇게 결혼하여 낳은 첫 번째 아들은 죽은 남편의 이름을 잇는다. 즉, 이 아들은 법적으로 죽은 형제의 아들이 되어 죽은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아 가계를 이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 수혼법의 근간은 아브라함 언약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위한 것이다(창 12:2~3; 15장; 17:7~9; 22:16~18). 아브라함 언약이 시내산 언약에서 구체화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의 각 사람은 그의 생전에 여호와와 언약 관계에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 언약 백성의 일원으로 항상 미래가 있는 것이다. 아들을 얻지 못하고 죽은 자는 약속의 땅에서 자신의 미래가 없으나 그의 자손을 통하여 그의 이름이 유지됨으로써 함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수혼법은 형제의 가문이 끊어지지 않도록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시내산 언약의 조화를 이루는 행동이다.
    
그런데 죽은 남편의 형제는 홀로된 형수나 제수에게 그의 의무를 거절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권한은 공동체의 강력한 비난을 모면할 수 없다(7절). 수혼을 거절하는 절차는 성문에서 이루어진다. 장로들이 거절하는 그에게 자기 뜻을 선언하게 한 후에(8절), 죽은 형제의 아내가 책임을 저버린 사람의 발에서 신발을 벗기며 그 얼굴에 침을 뱉어서 수치를 주고 “형제의 집을 세우지 않는 자의 결말이 이러하다”라고 선포한다(9절). 그에게는 “신 벗겨진 자의 집”이라는 이름으로(10절) 그의 수치가 언약 공동체 안에서 지속해서 기억될 것이다.
    
수혼제를 거절한 자에게 이렇게 강력한 수치를 주는 이유는 홀로 된 형수나 제수가 자녀가 없을 때 죽은 자의 재산은 죽은 남편의 형제에게 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홀로 남은 과부는 생계를 이어갈 길이 막막해진다. 그리고 죽은 형제의 가계는 끊어진다. 과부의 생계는 공동체가 떠맡게 된다. 이 점에서 볼 때 수혼을 거부한 자가 왜 그토록 수치를 당하는지 이해가 된다.
    
    
    
4. 싸움을 중단하기 위한 부당한 개입(11~12절)
두 남자의 싸움을 중단하기 위해 한 남자의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자녀를 가질 수 없게 되는 방법을 사용해서 상해를 입히면 안 된다.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 여자의 손을 잘라야 한다. 이 규정은 아무리 정당한 의도라 할지라도 불임을 초래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맥락을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5. 공정한 상거래(13~16절)
악덕 상인은 두 종류의 저울과 자를 가지고 물건을 살 때는 더 큰 추를, 팔 때는 더 작은 추를 사용할 수 있다(13~14절). 이렇게 하여 큰 수입을 올린다. 그러나 언약에 성실한 상인은 공정한 추와 되를 사용한다. 모든 상거래에 이스라엘의 존재 근원인 여호와를 기준으로 행해야 한다(레 19:35~37).
    
여호와는 언약 기준에 맞게 행동하는 자에게 보답하시고 그렇지 않은 자를 징벌하시는 언약에 신실하신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따라 상거래를 행하는 이는 여호와께서 주신 땅에서 장수하여 번영을 누릴 것이다(15절). 상인이나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 하나님이 주신 것을 정직하게 거래함으로, 견고한 신뢰 위에 공동체가 세워진다.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에 충실한 삶을 살아 여호와 중심의 세계관을 공유할 때 주어지는 결과이다. 그들에게는 땅에서의 장수와 번영이 따라온다. 이와 반대로 공정하지 않은 기준을 사용하여 부를 축적하는 자는 공공연하게 남의 것을 훔치는 도적이고 여호와께 “가증하다(16절).” 이런 자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가나안 사람들과 같고, 그들이 그러했듯이 여호와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6. 아말렉 진멸(17~19절)
애굽에서 구출되어 시내산으로 진행하던 중에 르비딤에서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습격했다(출 17장). 이 사건 외에도 호르마 부근에서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고전이 있었다(민 14:39~45). 그런데 아말렉 진멸에 대한 규정은 르비딤 교전과 관련이 있다(17절). 아말렉이 피곤함에 지쳐 뒤처진 이스라엘 사람들을 친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행동이다(18절). 이 때문에 아말렉은 진멸 당하는 형벌을 초래했다. 이 규정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을 정복하여 그 땅에서 안전하게 정착한 후에 아말렉을 진멸해야 한다(19절).
    
본문은 아말렉을 결코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고 명령할 뿐 아니라 “너는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아말렉에 대한 처리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사회적으로 뒤처진 자들을 잔인하고 비인간적으로 대해서는 안 됨을 보여준다.
    
    
    
나는?
-재판은 공정하고 형벌은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1~3절). 공적 재판을 통해 죄의 경중을 가리되, 형벌로 40대 이상은 때리지 못하게 했다. 제한을 두지 않는 심한 매질은 사람을 죽이거나 불구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적절한 형벌은 악을 뿌리 뽑고 선을 장려한다. 하지만 지나친 형벌은 또 다른 악을 낳게 된다. 공의와 사랑은 하나님의 하나가 된 속성이다. 일상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함께 구현되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배고픈 소의 입에 망을 씌워서는 안 된다(5절). 그것은 하나님의 자비를 받은 자들이 해서는 안 되는 무정한 일이다. 하물며 사람도 그 일한 대가를 받게 하는 것이 정의다. 오늘날의 세상은 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눠 차별한다. 이와 같은 모습이 현대판 입에 망을 씌우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익 때문에 의무를 저버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아들 없이 남편이 죽으면 아내는 남편의 형제로부터 아들을 얻어 죽은 남편의 대를 이어가게 했다. 그러나 경제적인 손실 때문에 이를 거절하면 공개적으로 그에게 수치를 주었다(5~10절). 물질에 대한 탐심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의무와 사명을 망각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게 만든다. 경제적 이익에만 집중하여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거룩한 의무를 저버리고 있지는 않는가? 어려움에 부닥친 가족이나 친척들에게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남편들 간의 싸움에 아내가 개입하여 남 남편의 음낭을 잡으면 그 여인의 손을 찍으라고 하신다. 지나친 처벌로 보이지만, 사안에 비해 지나치게 개입한 것이기에 마땅하다(11~12절).
    
-부정한 방법으로 부당한 이익을 취해서는 안 된다. 두 종류의 저울추를 사용하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지만, 이는 명백한 도둑질이며, 이웃을 속이고 거짓으로 증언하는 가증한 범죄이다(13~16절). 정직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복이, 부정직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린다. 나의 삶은 어떤 방법과 모습으로 채워져 있을까?
    
-뒤떨어진 약한 자들을 공격하면 안 된다(17~19절). 출애굽 당시 아말렉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피곤함에 지친 상태에서 가나안 땅으로 진군하는 이스라엘을 막기 위해 비겁하게 연약한 자들을 공격하였다(출 17:8~16).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차지할 때 아말렉을 완전히 섬멸하여 흔적을 없애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심판이 즉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악인들을 심판하시는 날이 있음을 믿고 흔들리지 말아야 하리라.
    
    
    
*주님,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님처럼 정직하고 성실하게 감당해 보겠습니다.
*주님,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을 품어 내는 삶을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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