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저주,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빠짐없이… [신 28:15-35]
 – 2024년 04월 14일
– 2024년 04월 14일 –
이스라엘이 율법을 불순종하면 당할 저주를 묘사한다. 형식상 고대의 종주권 조약의 말미 형식과 비슷하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며 불순종에 따른 재앙을 순종할 때 받을 복을 선언한 것보다 4배 많은 분량으로 경고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기초하여 그의 율법(말씀)을 불순종할 때 그 결과 발생할 수 있는 저주를 상세하게 서술함으로써 순종의 길을 유지하라는 당부이다.
    
    
1. 율법 불순종과 저주(15~19절)
특징적인 것은 복을 서술한 1~15절의 기록형식을 반복하여 불순종에 따른 저주를 서술한다는 점이다. 15절은 1절의 표현과 거의 동일하다. 1절의 “듣다”와 15절의 “순종하다”는 동일한 히브리어 번역이다. 또 1절의 명령을 15절은 명령과 규례로 서술하는 것 외에는 전반적으로 동일한 표현을 사용한다. 또한 3~6절과 16~19절은 4절의 ‘네 짐승의 새끼’라는 표현을 제외한다면 복이라는 단어가 저주로 대치된 거의 비슷한 서술 양식이다. 즉, 축복 선언의 역전 형태라고 이해하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지 않으면 과거의 축복이 저주로 역전되는 것이다.
    
율법을 순종하지 않으면 그 결과로 발생하는 것이 저주임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불순종은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능력과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올 수 있는 모든 것이 차단된다. 그저 하나님의 자비로 생명은 유지될 것이지만 이는 돌이킬 기회로 주신 것일 뿐이다. 저주가 생명의 단절을 의미하기에 축복의 약속으로 주시는 것과 내용상 정반대일 수밖에 없다. 저주는 “경시하다, 낮추다”라는 의미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시하는 자를 하나님도 경시하시지만, 하나님을 무겁게 여기면 하나님도 그를 영광스럽게 여기실 것임을 경고하는 단어이다. 하나님을 떠나면 그 저주를 피할 방법이 없다.
    
이 단락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모든 명령, 규례들을 준수하지 않을 때 이스라엘에게 임할 모든 저주(징계)의 목록을 제시한다. 유의할 것은 하나님의 저주는 확장된다는 것이다. 축복의 확장처럼 1차 확장에 멈추지 않고 68절까지 세 차례의 확장된 저주 목록이 이어진다는 것을 놓치면 안 된다. 축복(3~6절)이 고스란히 역전되어 6개의 저주를 선언한다. 성읍에서, 들에서(16절),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에(17절), 태와 땅과 우양의 새끼에게(18절), 집에서, 나가서 받는(19절) 저주이다. 이는 축복의 선언에서 다룬 것처럼 경제적인 실패(1~2절)와 군사적 패배(6~7절)를 의미하는 것이다.
    
*성읍에서 받는 저주(16절)란 경제적 실패를 가리키는데, 성안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경제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이다.
    
*들에서의 저주(16절)는 농사나 목축 활동 혹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땅(삶의 토대)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에 임하는 저주(17절)는 빈곤한 식탁을 가리킨다. 복을 선언한 부분에서는 열매의 풍성함에서 풍요로운 음식의 순서로(4~5절) 선언했지만, 저주 단락에서는 순서가 뒤바뀌었다. 추수할 때의 기쁨이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사라지는 것을 “광주리가 빌 것이며, 농사가 망해서 양식을 만드는 그릇이 텅 빌 것”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농사의 전 과정에서 병충해나 기근, 약탈자들로 인해 추수의 기쁨이 사라질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태와 땅과 우양의 새끼에게 임하는 저주(18절)는 열매의 빈곤함을 가리킨다. 사람과 농산물, 가축 떼에 임하는 재앙이다. 이는 불임을 의미하거나 자손이 있더라도 일찍 죽어서 후손을 잇지 못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삼중 저주는 당시 세계에서 미래의 불안과 빈곤을 예상하게 한다. 또 이 저주는 들에서의 저주와 광주리, 떡 반죽 그릇에 임하는 저주와 연결된다. 하나님은 먹을 것을 주지 않으시며 빼앗아 가실 것이다. 자녀가 없는 것도 당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저주로 여겼고 다산은 축복의 상징이었다. 게다가 자녀가 많아야 농사나 목축할 때 일손이 풍부해진다. 하나님은 현재의 풍요와 미래의 가능성을 총체적으로 빼앗아 가신다.
    
*들어와도(집에서) 나가도 받는 저주(19절)는 군사적 패배를 가리킨다. 신명기에서 이러한 표현은 단지 한 개인의 단순한 거동 능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군사적 행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표현이 처음 사용될 때는 모세의 군사적 지도력과 관련되어 사용되었다. 민 27:17 “그가 백성 앞에서 나가기도 하고, 백성 앞에서 들어오기도 할 것입니다. 백성을 데리고 나가기도 하고, 데리고 들어오기도 할 것입니다. 주님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 떼처럼 되지 않도록 하여 주십시오(새번역).” 그뿐만 아니라 여호수아(수 14:11), 다윗(삼상 18:13), 솔로몬(왕상 3:7; 대하 1:10)의 군사적 지도력과 관련하여 반복적으로 사용되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살면서 지속적인 전쟁에 시달렸고,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멸망할 때까지인 적, 물적 착취와 수탈이라는 심각한 고난을 겪었다. 이런 측면에서 전쟁의 패배는 이스라엘 민족의 존립을 위협하는 언약적 저주의 절정이었다.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6개의 저주 목록은 개별적으로 나열되지만, 하나님이 말씀을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총체적 요소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경제활동의 실패, 자손과 농업, 목축의 빈곤, 전쟁의 패배는 총체적인 파멸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저주 단락은 하나님이 얼마나 다양하게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는지를 생각하라고 주신 말씀이기보다 언약 공동체의 불순종이 삶의 전 영역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징계로 나타난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경고이다.
    
    
2. 저주의 확장(20~35절)
15~19절에서 다룬 저주의 내용과 범위를 확장하여 질병, 기근, 전쟁의 패배, 다양한 요인에 의한 정신병 등을 다룬다. 먼저 20~24절에서 여러 질병이 이스라엘이 얻게 되리라던 약속의 땅에서 그들이 제거될 때까지 극심하게 임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 단락에 제시된 일곱 개의 고통(폐병, 열병, 염증, 학질, 한재, 풍재, 썩는 재앙)은 세부적으로 그 정체가 명확하지 않지만,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재앙의 포괄성을 의미한다. 또한 기근(23~24절)은 불순종하여 언약을 위반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제거될 때까지 (이스라엘의) 하늘과 땅에 임하게 될 것이다.
    
25~35절은 전쟁에서의 패배 저주이다. 전쟁과 관련된 저주는 25~57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서술된다. 사로잡힘, 땅의 소산과 수고한 것들을 알지 못하던 자들이 먹음, 정신적, 육체적 질병들, 왕이 사로잡힘, 우상숭배, 소산의 강탈, 기근으로 인한 식인 행위 등의 저주가 이어진다. 이 재앙은 상당히 포괄적이고 충격적이며 과장적이고 세부적으로 반복되어 제시된다. 29~33절은 저항하기 어려운 행동의 결과만을 언급한다. 이스라엘에게 임할 전쟁의 완전한 패배는 도피와 온 세상으로 분산을 가져온다. 그들의 시체조차 짐승들의 밥이 될 것이다. 또한 치료할 수 없는 애굽의 질병들과 또 다른 질병들이 임하게 될 것이며 고난 가운데 있어도 구해줄 자가 없을 것이다(29절). 재앙들은 대적들의 지배하에 발생하기 때문에 개인뿐 아니라 가정사와 건축물, 포도원과 가축과 같은 다양한 방면에서 저주로 임할 것이며 그러한 저주들 가운데 있더라도 구해줄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31절). 이스라엘은 자녀를 빼앗기고 하루 종일 고민하여 헤매어 눈이 쇠약해지고 맥이 풀리게 될 것이다(32절).
    
이 저주 목록은 개인의 모든 영역에 임하는 것과 정신적, 육체적 질병이 함께 오고 두 차례 반복된다는 점에서 총체적이고 완전한 파멸이 임할 것을 강조한다.
    
    
나는?
-불순종을 선택할 때 백성들에게 그들이 당할 재앙이 얼마나 극심한지 미리 보여주신다. 이전에 받았던 모든 축복이 사라짐으로 백성들은 나라를 잃고 포로가 되어 자유와 안식을 누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 이는 저주를 자초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이방신들에게 기웃거리면 저주를 받는다. 하나님을 떠나는 일은 생명의 길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를 망각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과거의 축복도 저주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하신다(15~19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축복이 넘치고 생가가 돌았던 가정과 일터에 저주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것이다. 이는 마치 출애굽 당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끝까지 고집을 피웠던 가정에, 장자로부터 생축에 이르기까지 피의 심판이 있었던 것처럼 재앙이 임할 것이다. 축복과 저주의 갈림길에서 나는 어떤 길을 선택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불순종하는 이에게 축복의 약속을 정확히 뒤엎을 뿐 아니라 축복의 약속보다 저주의 경고를 훨씬 더 길게 들려주신다. 하나님께서 삶의 전 영역을 주장하시니 축복이 삶의 전 영역에 걸쳐 임하듯 저주도 그러할 것이다. 그 사람 자체에서 멈추지 않고 가정과 그가 관계하는 짐승들 그의 나라까지 미친다. 한 사람의 불순종이 한 사람에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언약적으로 연대하고 있는 공동체 전체로 확대될 것이다.
    
-하나님을 망각한 백성들이 의지하는 풍요의 바알에게 저주를 내리신다. 하늘을 놋쇠 같고 땅을 철 같게 하여 비 한 방울, 이슬 한 점도 맛보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생명의 근원이 차단된 땅은 사막으로 변할 것이며 사람들은 온갖 풍토병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풍요를 가져다줄 것으로 생각했던 바알은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할 것이다(20~24절). 내 삶 속에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풍요의 바알은 무엇일까?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다.
    
-자기의 힘을 의지하는 백성에게 더 이상 어떤 승리나 치유도 없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는 대적이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갈 것이지만 백성이 자기 능력만 의지하고 전투에 나갈 때는 패배를 당하며 흩어지고 말 것이다. 들짐승이 확인 사살에 나서고, 전염병이 살아있는 마지막 한 사람까지 칠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에게 치유의 자비는 사라지고 오직 심판만 남게 될 것이다(25~29절).
    
-하나님의 언약을 가볍게 여긴 자들은 언약 백성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적인 자유와 안식과 기쁨을 잃게 될 것이다. 이방인의 포로가 되어 가정과 산업을 빼앗기고 재산과 건강도 잃어 끝내는 미치는 지경에 이르고 말 것이다. 나의 온몸에 하나님의 저주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도록 간절히 구해야 하리라.
    
-저주는 저주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다. 심지어 이런 혹독한 경고조차 저주를 위한 것이 아니다. 얼마나 저주를 내리고 싶지 않은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인간은 축복보다 저주를 더 받기 쉬운 존재인 것도 깨닫게 한다. 저주 목록을 통해 저주의 자리에서 떠나 축복의 자리로 갈 길을 바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우리 앞에 두 개의 갈림길이 있다. 세상은 두 개의 갈림길 앞에 서 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은 복을 약속하지만, 불순종하는 사람은 저주받는다. 하나님을 떠난 삶은 아무리 겉으로 보기에 근사할지라도 결국엔 저주 아래 놓인 삶이다. 아무리 탁월한들 내일을 장담하기 어렵다. 능력이 출중하더라도 자기 목숨 하나 건사하기 힘들다. 이 땅에서뿐 아니라 영원한 죽음과 삶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태도에 따라 축복과 저주, 내가 주인 되는 삶과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삶, 내 소유와 권력으로 사는 삶과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사는 삶, 우리 앞에 이 두길 밖에 없다. 그러나 세상은 하나님을 떠난 길로만 미친 듯이 경주한다.
    
-세상은 저주로 가득 차 있고, 하나님 없이 방황하고 있다.
    
    
*주님, 나의 모든 것에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채워 주소서.
*주님, 저주는 저주 자체가 결론이 아니라 그만큼 저주를 내리고 싶지 않은 하나님의 마음임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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