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모세의 노래 2_이스라엘의 배역, 하나님의 진노와 연민 [신 32:15-33]
 – 2024년 04월 23일
– 2024년 04월 23일 –
여호와는 반석, 완전, 정의, 진실, 공의라는 단어로 묘사되는 분이시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반석을 업신여겼다(15절)’고 서술하며,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상반된 특성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이런 행태는 ‘여호와의 진노’를 불러왔다. 하나님의 진노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것이 다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23절). 심지어 하나님의 진노는 안팎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모세의 노래는 하나님의 신실성, 구원, 은혜로우심과 이스라엘의 불신실성, 어리석은 반역과 대적에 대한 징계와 회복의 주제를 다룬다. 본문은 하나님의 축복에서 하나님의 징벌을 자극하는 이스라엘의 죄를 다루고 있다. 
 
 
 
1.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15~19절)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던 이스라엘이 어떻게 심판의 대상으로 변화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여수룬(의로운 자)”로 불리던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서 풍요를 누리자, 창조자이며 구원의 반석이신 하나님을 버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평안과 풍요를 맹신하고 그것을 주신 분을 잊어버렸다. 하나님을 잊고 자신들이 믿고 따르는 이방신들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촉발시켰다. 이방신들에게 제의를 행함으로 하나님을 공격하였다. 하나님이 아닌 알지 못하는 신들, 새롭게 알게 된 신들, 즉 조상들이 두려워하지 않던 마귀들에게 제사를 지낸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으로 질투하고 진노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은 창조와 출애굽의 하나님이시며,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그에 합당한 영광을 받기를 즐거워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옛적의 하나님, 영원의 하나님이라고 불렸지만, 이제 이스라엘이 따라가는 신들은 새로운 신, 이전에 모르는 신이라고 불린다(오래된 신, 알려진 신이라는 표현은 “권위 있는, 오랫동안 경험해온 신” 이라는 의미이다). 6절과 7절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창조자’, ‘친부’라고 했고 17절에서는 ‘조상’이라고 하나님을 설명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자신을 산고 중에 출산한 반석이신 하나님(이 표현은 마치 광야에서 만나를 먹이고 보살피며 키워준 양부를 잊은 이스라엘에 대한 비유이다)을 잊어버린다. 하나님의 진노는 자녀들이 자기 아버지에게 영적으로 반역한 것과 망각의 죄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잊고 섬기는 다른 신들과 가증한 것에 진노하신다. 가증한 것을 혐오하고 파괴하시기 위해 이를 섬기고 행하는 이스라엘을 정죄하신다. 그래서 이방인들과 함께 하나님의 백성이라 일컫는 이스라엘에게 전쟁을 선포하신다. 
 
 
 
2.하나님의 진노와 긍휼(20~27절)
이 단락은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정죄의 이유를 다룬다. 또한 그들에 대한 징벌에 한계를 두시는 이유를 언급한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아 성장한 이스라엘은 “심히 패역한 세대, 진실이 없는 자녀(20절)”이기에 하나님은 얼굴을 돌리사 그들의 끝을 보실 것이다(31:17~18). 그럼에도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긍휼로 중단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징벌은 민족의 멸절이 아니라 그들의 회개를 촉발하고 그들의 눈물을 씻기며, 결국 약속의 땅을 정결케 하는 새 시대에 대한 소망(32:43)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이방인들을 동원한 전쟁을 통하여 다양하게 전개될 것으로 묘사한다. 하나님의 코에서 나오는 불과 같은 진노(“진노”를 코에서 나오는 뜨거운 콧김이라고 표현한다)는 강하게 불타올라 스올도 태우고, 땅과 땅의 소산들과 산맥의 기초들이 녹아 눌러 붙게 될 것이다(22절).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극심한지, 재앙이 그들 위에 쌓이고 하나님의 화살이 다할 때까지 그들에게 쏟아지게 될 것이다(23절). 그들은 기근의 고통과 질병의 참화와 고통스러운 벌레들의 공격으로 고통을 당할 것이며 들짐승과 뱀(티끌에 기는 것)의 독을 직면하게 될 것이다(24절). 이런 표현은 당시 세계관에서 겪을 수 있는 가장 격렬한 고통을 나열한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보내시는 재앙은 그들에게 완벽한 고통을 줄 것인데, 바깥에서는 칼에 맞아 죽고, 방안에서는 놀라서 죽을 것인데, 총각과 처녀, 젖먹이와 노인 모두가 다 같은 꼴을 당할 것이다(25절). 
 
하지만 하나님의 이와 같은 진노는 결국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제지당할 것이다. “본래는 내가 나의 백성을 다 흩어 버려서 아무도 그들을 기억할 수 없게 하려고 했으나(새번역_26절)” 이렇게 까지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 대적들이 “우리의 능력이 승리를 얻게 했을 뿐, 여호와께서 이 모든 일을 행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교만해질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27절). 이방인들이 여호와를 오해하지 않도록 이스라엘은 완전한 멸망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민 14:13~16; 신 9:28~29; 겔 36:22~33).
 
 
 
3.이스라엘의 어리석음과 배신과 악독함(28~33절)
이스라엘은 어리석은 백성, 깨닫지 못하는 백성이다(새번역_28절). 그들이 왜 패배를 당하고 종말이 어떻게 될지 깨닫기라도 하면 좋겠지만(29절) 그렇지 못한다. 수많은 이스라엘이 소수의 대적들에게 추격당하는 것은 그들의 반석이진 여호와께서 그들을 파시고 넘겨주셨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지 못한다(28장). 이스라엘이 조금이라도 지혜가 있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어리석게도 지혜가 아닌 것(다른 반석)을 의존하였다. 
 
신명기 전반에 걸쳐 정확하게 예측하고 경고했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를 할 거라는 말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깨닫지도 못했다. 깨닫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격노가 발생하고 큰 고통을 당한다. 하지만 이것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적에게 팔지 않으면 이스라엘의 패배는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의 “다른 반석”에 대한 어리석은 의존은 전쟁의 패배라는 결과를 불러온다. 타락과 배교의 상징으로 ‘소돔과 고모라’의 포도나무라는 비유는 이스라엘의 죄악과 이에 대한 심판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의 죄악은 악한 성품과 악한 행실을 낳는다는 것을 소돔과 고모라의 포도나무, 뱀의 독으로 만든 독주로 빗대어 표현한다. 이스라엘의 죄악이 이처럼 악하였다. 
 
 
 
나는?
-평안하고 잘 나갈 때 배은망덕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어렵고 힘들 때는 하나님만 붙잡았으나 하나님의 각별한 보살핌으로 여유로워지고 풍성해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나님을 헌신짝처럼 버린다. 그리고 아무 힘도 안 되는 우상과 허망하기 짝이 없는 귀신들에게 제사한다(15~18절). 
 
-배부르고 살만해지니, 말씀대로 살라는 명령이 귀찮아진 것이다. 말씀을 읽고 그 뜻을 깨달아 순종하라는 하나님이 싫어진 것이다. 그래서 저주를 경고하고 순종을 요구하는 하나님 대신에 축복만 약속하는 다른 신들을 졸졸 따라다니게 된 것이다. 지금 나와 공동체의 영적인 상태는 어떠한가? 하나님을 향한 태도는 어떨까? 하나님 자체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더 좋아하지는 않는가? 심각하게 되돌아볼 일이다. 
 
 
-하나님이 직접 이스라엘을 고발하신다. 부모 같은, 부부 같은, 연인 같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는 금세 금이 가고 말았다. 그것도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에 의해 하나님이 버림받고 만다. 격분하신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된 백성을 패역하다고, 진실이 없다고 고발하신다. 그들의 진상을 폭로하고, 죄악을 기소하신다. 하나님 없는 삶의 허무한 결말을 몸서리치도록 겪게 하신다(19~21절).
 
-기록된 하나님의 고발장을 미리 읽고 미리 피하는 것이 살 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가나안은 축복의 땅이다. 동시에 유혹의 땅이기도 하다. 하나님을 축복의 근원으로 삼지 않으면 그 땅은 가장 위태로운 곳이 된다. 차라리 광야가 나았다 싶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ㅈ신을 지으시고 인도하시며 이 땅에 심으신 하나님을 참 반석으로 모실 것인지, 그 하나님을 잊고 우상을 반석으로 삼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얻을 것인지, 시기와 질투를 얻을 것인지는 이제 그들의 몫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연민하신다. 하나님이 아닌 세상을 연모하는 이스라엘을 그 세상을 도구삼아 모질게 심판하신다. 그러나 원수들이 당신의 백성을 멸절하지 못하게 하시고, 이스라엘의 하나님마저 이겼다고 착각하지 못하게 하신다. 자기 백성도 돕지 못하는 무능한 하나님이라는 오해와 악평을 참지 못한다(26~33절). 하나님의 의로움은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근거도 되지만 구원하는 동력도 된다. 나의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에게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곧 은혜라는 신비가 아니겠는가!
 
-패역하고 진실 없는 백성에게 가차 없는 심판이 임할 것이다. 스올의 깊은 곳까지, 화살이 다 사용할 때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심판하실 것이다. 하지만 완전한 멸절을 행하지 않으신다. 원수들이 자기 힘으로 이스라엘을 멸망시켰다고 우쭐해하는 것을 두고 보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죄의 시작은 영적 무지와 무감각이다. 기억하지 못하고 망각하는 것에서 죄는 싹튼다. 또 분별하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함을 거름삼아 슬슬 커져간다. 자신이 누린 승리와 번영을 자기 공로로 돌리는 교만은 죄 된 자신을 완전히 보지 못하게 만든다. 하나님이 주신 승리를 망각하므로 죄의 깊은 늪으로 한없이 빠져들어 간다. 그들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도 죽이는 독이든 포도와 같은 자들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기록된 말씀을 통해 오늘날에도 여전히 경고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경고는 살리기 위해 하신 것이다. 주님의 품안에 늘 거하기 위해 오늘도 말씀에서 들려오는 주님의 경고를 잘 들어야 한다. 그것이 살길이다. 
 
 
 
*주님, 말씀이 들려주는 경고를 잘 듣겠습니다. 깨닫고 기억하며, 순종하므로 주님과 함께 살아내겠습니다. 
*주님, 그렇기에 쉽게 은혜를 잊거나 저버리는 패역함을 늘 경계하겠습니다. 은혜주신대로 합당하게 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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