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편 103:1-14]
 – 2024년 04월 27일
– 2024년 04월 27일 –
다윗의 시이다. 본 시편의 핵심 주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경외하는 자에게 인자하심의 은혜를 베푸셔서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이다. 본문은 출애굽기 34:6(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의 인용(8절)을 통해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은혜를 강조한다.
    
출애굽기 문맥에서 34:6은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면서 언약을 재체결하여 주시는 이유가 하나님의 성실함에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언약을 재체결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주셨기 때문이다. “인자하심(헤세드).”으로 번역된 단어는 “언약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의 언약적 성실성”을 대변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다윗의 시에 백성의 죄로 인해 어려운 상황을 만났을 때 하나님의 언약적 성실함에 호소하며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회복시켜 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1. 여호와를 송축하라(1절)
시편 103편은 4권에 나타나는 두 개의 다윗의 시(101편, 103편) 중 두 번째 노래다. 시편 101편은 공동체의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통치하심에 반응하는 다윗을 다루고 있고, 103편은 하나님의 인자하신 성품을 찬양하는 노래다. 본문은 전부분으로서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임함을 노래한다.
    
다윗은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명령으로 시편을 출발한다. 그런데 이 명령을 “내 영혼”에 내리고 있다. “영혼(네페쉬)”은 “자기 자신”을 가리키기도 한다. 다윗은 자기 스스로 여호와를 송축하기를 원함을 표현하고 있다. “송축하다”로 번역된 “바라크”는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무릎을 꿇다”와 혹은 “송축하다”이다. 그런데 “바라크”의 기본 의미는 생명력을 충만하게 한다는 의미이기에 바라크를 목적어로 사용하면 목적어로 하나님이 사용될 때 여호와의 생명력 및 영광의 능력을 기리고 높인다는 의미가 된다.
    
    
2. 여호와를 송축해야 할 이유 : 여호와의 성품(2~7절)
여호와를 송축해야 할 이유는 “그의 모든 은택(주님이 베푸신 모든 은혜)”을 우리에게 베푸셨기 때문이다. “은택”이라고 번역된 ‘그물’은 “행하다”라는 뜻을 가진다. 즉,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로 인해 여호와를 송축해야 한다는 의미다. 3절 이후 7절까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들에 대한 대답이 제공된다.
    
3~7절까지의 히브리 문장은 모두 분사 형태로 시작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히브리어에서는 분사가 어떤 존재를 가리킬 때는 흔히 가리키는 대상, 곧 그 존재의 성품을 묘사한다. “여호와는 이런 분이시다”라는 여호와의 성품을 드러낸다. “여호와께서 죄악을 용서하시고, 병을 고치시는 분(3절)”으로 묘사된다. 4절은 하나님께서 생명을 멸망에서 구원해 주시는 분이라고 소개하는데, 이를 “인자(헤세드)와 긍휼(라함)”로 표현한다. 5절은 좋은 것으로 소원을 만족케 하셔서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6절은 억울한 일을 당한 데서 구원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묘사한다. 7절은 이러한 여호와의 성품을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시는 하나님을 보여준다.
    
    
3. 인자하심을 경외하는 자에게 베푸신다(8~14절).
8절은 출애굽기 34:6을 인용한 인용구이다. 출애굽의 하나님께서 스스로 밝히신 자신의 성품이다. 여호와는 언약에 성실하신 분이다. 백성은 여호와를 버리고 반역하지만, 여호와는 언약에 성실하시기에 그의 백성을 버리지 않으신다. 9절 이하는 이런 하나님의 “인자하신” 성품을 더욱 자세하게 풀어 나간다.
    
9절은 여호와는 우리를 영원히 그분의 법정에 세우시지 않으신다고 말하고, 10절은 우리의 죄를 따라 갚으시는 분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11절은 이와 같은 “인자하심.”은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임한다고 선언한다.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랑도 크시다(새번역_11절).” *지금까지 시편의 흐름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언약의 당사자인 다윗과 그의 후손인 유다 왕들을 통해서만 허락되는 특별한 것이었다. 그런데 다윗이 스스로 직접 그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인자하심이 임한다고 선언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실제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은혜로 12절은 그분께서 우리의 죄과를 “동에서 서가 먼 것 같이” 옮기셨다고 노래한다. “하늘에서 땅이 높음같이(11절), 동에서 서가 먼 것 같이(12절)”와 같은 표현은 하늘과 땅의 거리, 동쪽과 서쪽이라는 방향에 따른 거리를 표현한 것으로 보아 하늘이 땅에서 높음처럼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얼마나 높은지, 동쪽에서 서쪽이 먼 것처럼 우리의 죄과가 우리를 떠나 사라지게 되었음을 묘사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얼마나 놀라운가! 또 13절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부자(父子) 관계로 표현하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여기시고 아버지가 자녀에게 인자를 베풀듯이 우리에게 인자를 베푼다고 노래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임한다고 다시 한번 노래하며 강조한다.
    
14절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인자하심을 베푸시는 이유를 노래하는데, 그것은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창조되었음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며, 우리가 한갓 티끌임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새번역).”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본래 연약하고 죄 많은 존재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런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우리에게 “인자하심.”을 베푸시는 것임을 노래한다.
    
    
나는?
-다윗은 자신을 향하여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명령한다. 하나님은 다윗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송축할 분이시기 때문이다. 찬양은 “기억 행위”이다. 두렵고 떨림으로 불러야 할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택(게물_보상, 보답, 은혜)”을 기억하는 것이 찬송이다.
    
-다윗이 기억하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택은 자신의 죄를 용서하여 그의 병을 고쳐주시고, 언약을 기억하고 불쌍히 여기셔서 시인을 수치의 자리에서 건져주신 것이었다. 더 나아가 그의 필요를 채우시고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이겨낼 수 있도록 새 힘을 공급해 주셨다. 아무 자격 없는 우리를 고치시고 건지시고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어떻게 지금까지 나의 걸음을 선하게 인도하셨는지, 다윗의 고백이 곧 나의 고백임이 틀림없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택을 기억하여 찬양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찬양하라고 선언한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일관되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인자하신 성품을 묵상한다. 이스라엘이 압제당할 때는 공의를 행하셔서 악인들을 심판해 주셨다. 이스라엘이 죄를 범했을 때는 분노하셨으나 그들을 심판하실 때는 한없이 주저하셨다.
    
-끓어오르는 긍휼에 노를 오래 품지 못하셨다. 언약을 기억하셔서 그대로 갚지 않으셨다. 이와 같은 긍휼 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인해 오늘 나도 살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 때문에 나의 삶의 앞길에도 소망을 품을 수 있지 않겠는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사랑의 크기를 미루어 짐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않으실 죄는 없다. 부모가 자식을 잘 알듯,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얼마나 깨어지기 쉽고 연약한 존재인지 잘 아시기 때문이다. 잘 아시기에 인자하심을 주저하지 않으신다. 그만큼 우리는 연약한 존재이다. 나와 하나님에 대해 하나님보다 내가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교만이고 진정한 무지인지 잊지 말아야 한다.
    
    
*주님, 놀라우신 인자하심의 은혜로 오늘 구원받은 하늘 백성의 삶을 살게 한 줄 믿습니다.
*주님, 나를 향한 하나님의 기막힌 인자하심의 사랑에 반응하며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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