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2 [시편 103:15-22]
 – 2024년 04월 28일
– 2024년 04월 28일 –
시편 103편의 후반부이다. 앞서 1~14절에 등장한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주어진다”라는 주제를 더욱 발전시킨다. 다윗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우주적인 통치로 연결하면서 만물이 여호와를 송축해야 함을 선포한다. 한 개인을 넘어 공동체 전체가 여호와의 왕권을 인정하는 모습을 그린다.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넘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그의 언약과 법도를 지키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는 그의 인자하심을 노래한다. 그리고 만유를 다스리시는 그의 왕권을 높이며 그의 다스림을 받는 모든 이를 향해 여호와를 송축하자고 선포한다.
    
8~14절의 핵심 주제인 “인자하심을 경외하는 자에게 베푸신다”라는 개념이 15~18에서 계속 설명된다. 19절에서 여호와의 왕권으로 표현한 후, 20~22절에서 만물이 여호와를 송축해야 함을 선포한다. 이와 같은 후반부는 회중 찬양의 성격이 강하다. 이스라엘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여 공동체성을 강조하며 온 인류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것을 확장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우주적인 확장성을 드러내며 “영원부터 영원까지” 펼쳐서 노래하고, 특히 언약 안에서 이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중요성을 “법도와 명령(18절)”이라는 말로 강조한다. 특히 이 단어는 시편 전체에서 19편, 111편, 119편에서 사용되어 언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더 나아가 천군 천사까지 여호와를 송축하고,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가 다스리는 모든 곳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선포한다.
    
    
1. 인자하심을 경외하는 자에게 베푸심(15~18절)
15~16절은 인생의 날이 풀과 같다고 말하면서 14절에서 ‘인생이 먼지’라고 말했던 주제를 이어 나간다. 14절의 설명은 8~13절이 말한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인자하심을 베푸신다”라는 주제를 부연 설명으로 “우리 인생이 먼지와 같은 형태임을 아시기에 인자를 베푸신다”라고 말했다. 본문은 이를 이어받아 노래를 이어간다.
    
15절의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를 직역하면 “그것은 들의 꽃과 같아서 피었다가”이다. 인생의 영화는 들의 꽃과 같아서 피었다가 진다는 의미다. 그런데 16절은 이러한 꽃이 피는 시점이 매우 빨리 지나감을 설명한다. 바람이 불기만 하면 꽃은 없어진다는 것이다. 16절을 직역하면 “바람이 그것에게 불다. 그것이 없다! 그것은 자신의 자리를 알지 못한다”의 뜻이다. 15~16절은 상반절이 매우 시적인 표현으로 바람이 꽃에 불었더니 그 꽃이 순식간에 없어진 상황을 그림처럼 묘사한다. 하반절은 자신의 자리조차 알지 못하게 완전히 소멸하였음을 교훈적으로 제시한다.
    
이런 인생에 17~18절은 8~13절이 강조했던 “인자하심과 경외하는 자”의 주제를 다시금 설명하기 시작한다. 11절과 13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임한다고 다시 반복한다. 그러나 더욱 강조한다. 먼저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른다” 그리고 “자손의 자손에게까지 이른다”라고 표현한다. 15~16절에서 인생의 짧음이 영원함으로 확장되고, 11과 13절의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현재의 경외하는 자들에게 임한다고 했으나 “자손의 자손”에게까지 미친다고 노래하며 미래의 다음 세대까지 확장한다. 18절은 이렇게 확장되어 인자하심을 받게 된 대상을 “여호와의 언약을 지키는 자(들)와 그의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들)”로 새롭게 정의한다. 개역 개정은 단수로 번역이 되었으나 원문은 복수 형태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은 여호와와 맺은 언약을 성실하게 지키려는 자들이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의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여 언약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고 지켜나가려는 자들을 말한다. 이를 율법에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삶의 방식대로 살아가게 된다는 궁극적인 결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경외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인자함은 결국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내도록 삶을 이끄는 은혜의 동력이 되는 것이다.
    
    
2. 여호와는 왕이시다! 송축하라! (19~22절)
19절은 103편의 절정 부분이다.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고 그분의 통치는 모든 것에 임한다. 모든 피조물에 대한 통치를 선언하는 것이다. 이 구절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경외하는 자들에게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인자를 베푸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 세계를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의 왕권과 통치의 실현은 결국 “인자하심.”으로 드러난다. 이것이 103편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이다.
    
20~22절은 “여호와를 송축하라”라는 명령이 모두 네 번 선포된다. 이미 1~2절에서 두 번 선포하면서 시작한 찬양이 또다시 선포되면서 마무리되는 형식이다. 수미상관 구조 속에서 1~2절은 “내 영혼”에 명령한 단수형이었으나 20~22절은 복수형으로 바뀌었다. 이는 다윗 개인에서 경외하는 자들로 인자하심의 대상이 확장된 본 시편의 흐름과 일맥상통한다.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그 말씀의 소리를 듣는) 천사들에게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명령한다(20절). 여호와를 수종 들며 그 뜻을 행하는 모든 천군을 향해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명령한다(21절). “천군(짜바)”으로 번역된 단어는 “전쟁의 용사”라고 직역할 수 있고, 구약의 용례에서는 실제 전쟁하는 군사들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본 시편에서는 비유적인 의미로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가리킨다. 넓은 의미로 창세기 1장이 서술한 피조 세계의 만물들을 가리킨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또, “모든(콜)”을 한 번만 번역했지만, 히브리어 원문은 “콜”을 두 번 반복하였다. 즉, “수종 들며 그의 뜻을 행하는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은 모든 것들과 그가 다스리는 모든 곳에 있는 모든 것들”을 향해 송축하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22절의 마무리도 유의미하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라고 단수 형태가 다시 등장하기 때문이다. 공동체가 아닌 다윗 개인의 고백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이것은 인자하심을 찬양하는 것을 언약 공동체의 대표로서가 아닌 언약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또한 여호와의 다스림을 받은 만물 중의 한 존재로서 영원하신 여호와를 찬양한다는 것이다.
    
시편 103편의 여호와 하나님은 왕이시고 그의 통치의 권세는 그를 경외하는 모든 자들에게 인자하심을 베푸시는 데 있다고 선언한다. 우리는 다윗이 왕이신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분의 인자하심에 감사하고 율법에 순종하는 참된 신앙의 노래를 그의 삶으로 살아간 것을 기억하여 그 길을 따라가야 한다. 입술의 찬양으로 고백했다면 삶의 찬양으로 증명하며 살아내야 한다.
    
    
나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리라. 인생은 풀과 같이 짧으며,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영화도 들의 꽃과 같이 아주 잠시 누릴 뿐이다. 그런 인생을 위해 땅만 쳐다보며 살지 않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 때,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는 “인자(헤세드)”를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다. 언약하신 대로 우리를 보호하고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이다.
    
-생명보다 나은 주님의 인자하심과 언약에 신실한 의로우심 때문에 불의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들의 꽃과 같은 영화를 위해 영원하신 하나님을 서운하게 해드리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고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온 땅의 통치자이신 왕 되신 하나님을 찬양하리라. 다윗은 물론이고 하늘의 천사들과 천군들, 그리고 땅의 모든 곳에 있는 모든 피조물을 향해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선포한다. 여호와께서 하늘 보좌에 앉아 하늘 위의 세계를 통치하실 뿐 아니라 땅의 시온 성전에 임재하여 자기 백성을 통치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여 온 땅 모든 피조물에 자신을 드러내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천사들처럼, 천군처럼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여호와께 수종 들며, 그 뜻을 행하는 자들만이 인자하심을 누리며 찬양에 참여할 수 있다.
    
-사랑과 경외함으로 드리는 찬양이어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그분과 맺은 언약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기억하여 행하는 것이다. 경외는 단지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태도이다. 하나님을 창조주요 역사의 주인이며 하늘과 땅의 통치자로 인정하고 그의 명령에 순종하려는 태도이다. 더 나아가 참된 경외는 한낱 피조물인 우리를 자녀로 불러 주시고 한결같이 기다리면서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데서 시작됨을 기억해야 한다.
    
-사랑 없는 경외는 “공포”에 불과하며, 경외가 없는 사랑은 “감정”에 그치기 쉽다.
    
    
    
*주님, 짧고 유한한 인생에 영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경외함으로 주의 인자하심에 거하기를 몸부림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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