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더 없이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 [시편 104:1-18]
 – 2024년 04월 29일
– 2024년 04월 29일 –
시인은 하나님의 광활한 창조 세계를 서술적으로 묘사하며 노래한다. 하늘과 바다를 시작으로 하나님이 땅과 바다의 경계를 정하시고, 골짜기의 샘이 솟아나게 하셔서 숲의 모든 생명체와 인류가 함께 먹고 마시며 윤택한 삶을 살게 하신 하나님의 솜씨를 노래한다. 104편부터 106편까지는 시편 제 4권을 마무리하는 일련의 시들이다. 103편과 동일하게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라는 명령이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에 나타난다. 103편이 여호와의 인자하심으로 인해 그를 경외하는 자들이 죄 용서를 받고 회복함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에 비해 104편은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의 능력을 묘사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105, 106편은 다시 여호와의 인자하심의 주제로 되돌아간다. 
 
 
1.하늘과 땅을 만드심(1~5절)
하늘과 땅을 만드시는 하나님을 묘사한 듯하다. 하나님은 존귀와 권위로 옷 입으셨다(1절). 옷 입으셨다는 표현으로 존귀와 권위를 항상 가지고 계심을 드러낸다. 2절에서도 동일하게 빛을 입으셨다는 표현으로 이어진다. 창조 첫째 날 빛을 지으신 것을 이렇게 묘사한 것이다. 하늘을 휘장같이 치시고(2절), 물에 누각의 들보를 얹으셨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창조 둘째 날 물을 아랫물과 윗물로 나누시고 중간에 궁창을 창조하신 것을 표현한 것이다. 
 
3~4절은 구름, 바람, 불꽃 등의 이미지가 등장하는데, 하나님의 현현을 의미하는 전형적인 표현들이다. 하나님이 임재하실 때 불, 바람, 구름, 비, 우박, 지진 등의 현상이 나타난다. 이와 같은 표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피조세계에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했음을 표현한 것이다. 주목할 것은 “바람(루아흐)”이라는 표현이 반복되는데, 이 단어는 창 1:2에서 여호와의 “영)으로 번역된 단어이다. 그렇다면 태초에 피조세계에 하나님께서 영으로 임하셔서 일하셨다는 것을 표현한다 할 수 있겠다. 5절은 이렇게 하나님이 땅의 기초를 든든히 하셔서 영원히 흔들리지 않게 하셨다고 노래한다.
 
 
2.물과 경계를 정하심(6~9절)
6절부터는 “물”에 대한 언급이 이어지는데, 성경에서 물은 “무질서와 혼돈”의 이미지를 가진다. 하지만 창조주 하나님의 원위 아래에서 물은 질서와 풍요를 가져오는 귀중한 통로가 된다. 6~9절은 하나님이 친히 물을 다스리셨고, 물은 하나님께서 순종하였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 
 
깊은 물로 모든 땅을 덮으신 분이 바로 하나님(6절)이시라고 선언한다. 7~9절은 하나님이 물을 한쪽으로 몰아가셔서 바다가 되게 하셨고, 그 결과 육지가 드러나게 되었다고 묘사하는데, 이는 창조 셋째 날을 묘사한 것이다. 특히 7절은 주님의 꾸짖음으로 물이 도망했다고 묘사하는데, 실제로 하나님께서 화를 내셨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의 권위로 인해 물이 비로소 자신의 자리를 잡게 되었음을 묘사한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9절은 하나님이 물의 경계를 정하시고 물이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되었음을 설명한다. 물은 하나님의 분명한 통치에 순종하여 제자리를 잡았음을 노래하는 것이다. 
 
 
3.물로 땅을 풍요롭게 하심(10~18절)
이 단락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물이 땅을 어떻게 풍요롭게 만들었는지를 시적으로 묘사한다. 10절은 물이 골짜기와 산에 흐르게 되었음을, 11절~12절은 하나님이 들짐승, 들나귀, 궁중의 새들에게 이 해갈의 물을 마실 수 있게 하셔서 그들이 노래하게 됨을 묘사한다. 13절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려주시는 것을 표현하는데, “물을 부어주다(샤키)”로 번역된 단어는 “물을 마시게 하다”로 직역할 수 있다. 비를 내려주셔서 산이 물을 공급받게 하신다는 의미이다. 
 
14~17절은 이렇게 하심으로 땅이 결실을 내게 되는 실제 모습을 묘사한다. 14절은 풀과 채소가 나게 되었음을 노래하는데, 이는 사람과 짐승의 먹을거리들이 땅에서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15절은 하나님이 포도주와 기름, 곡식을 주셔서 마음을 기쁘게 하시고 기름을 주셔서 얼굴을 윤택하게 하신다고 노래한다. 16절은 “여호와의 나무”로 표현된 세상에 존재하는 나무들을 먹이고 입히시는 하나님을 노래한다. 하나님이 돌보시는 나무는 물을 흡족하게 공급받게 하는데, 대표적으로 16 하반절~17절은 레바논 백향목으로 표현하고, 그 나무들 가운데 세들이 깃들이고 학이 집을 짓는다고 노래한다. 
 
18절은 높은 산들이 산양의 집이 되고 바위는 너구리의 피난처가 된다고 노래한다. 하나님의 창조는 모든 피조물이 조화를 이루며 각각에게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여 주신 것임을 노래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조화로움을 위해 하나님의 권위는 무질서와 혼돈의 상징이었던 “물”을 제어하심으로 세상의 많은 피조물들이 유익함을 누리게 되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서 그 어떤 것도 무익한 것이 없고 물조차도 풍성하고 복된 결과를 낳게 되었음을 노래한다. 이 모든 일을 창조하시고 운영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 모든 질서를 운영하시는 주권자이시다. 하나님은 하늘의 왕으로서 존귀와 권위로 옷을 입으시고, 하늘을 휘장처럼, 빛을 옷처럼 사용하신다. 물을 기초로 하늘궁전의 누각을 세우시고 구름과 바람과 불꽃을 원하시는대 사용하시는 창조주이시다. 
 
-이는 하늘의 모든 권세가 그 앞에 복종하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영광스러운 주권자 하나님께서 나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 
 
-하나님은 무질서와 혼돈을 다스리시는 권능의 주이시다. 땅에도 흔들리지 않는 기초를 놓으셨는데, 세상을 덮었던 혼돈의 세력인 물의 경계를 정하시고 넘지 못하게 하셨다. 물은 “꾸짖음과 우렛소리”의 말씀대로 마련해주신 길로만 다니고, 있으라고 한 곳에만 있게 되었다. 
 
-혼돈과 무질서 세상을 조화와 질서가 있는 곳으로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능이 은유적으로 표현된다. 혼돈 혹은 고난을 새 창조의 원자재로 삼아 우리를 온전케 하시고, 인간 세상에 평화를 만들어 주셨다. 
 
-우리의 삶도 죄의 혼돈과 무질서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의 평안의 질서 속으로 불려 주셨다. 혼돈과 무질서의 과거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새롭게 된 새로운 질서인 하나님 나라의 샬롬의 질서 안에서 거해야 한다. 혼돈과 고난이 새 창조의 원재료 되어 우리를 온전케 해주셨다. 
 
-“혼돈의 물”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간섭으로 생명을 살리는 물로 쓰임 받고 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대로 흐르는 골짜기의 샘물이 들짐승과 들나귀, 공중의 새의 원기를 북돋아주고, 하늘 누각에서 내린 물은 땅에서 풍성한 결실을 내게 하신 것이다. 들짐승에게는 풀과 물을, 사람에게는 채소와 기름과 양식을 주시고, 흡족한 물로 새들이 깃들 나무를 기르시고, 높은 산으로는 산양을, 바위는 너구리에게 쓸모 있게 하신다. 
 
-작은 피조물 하나의 생명까지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아버지의 마음으로 우리도 역시 이 피조세계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리라. 
 
 
*물에 대한 성경의 언급은 다분히 부정적이다. 태초에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셨다(창 1:2). 당시 세상은 뭍이 물에 갇혀있는 상태였다. 하나님은 창조의 셋째 날에 물에 잠긴 육지를 드러내시고 이를 ‘땅’이라고 하셨고, 모인 물을 ‘바다’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행위를 매우 흡족해하셨다. 그리고 땅에 생명을 허락하셨고, 여섯째 날에는 가축과 짐승, 그리고 창조 세계를 관리하고 다스리는 사람을 지으셨다(창 1:9~31).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창조 사역 자체가 구원 사역임을 알 수 있다. 누구든 물에 갇혀있는 상태에서는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막거나 방해하는 장애물로 등장하는 것이 물, 또는 바다이다. 노아의 홍수가 그렇고, 홍해가 그렇고, 요단강이 그렇고, 요나를 삼킨 바다가 그렇고, 거라사 군대귀신이 몰살한 바다도 그렇다. 바다는 리워야단과 용과 같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괴물의 서식지이다. 구원받은 백성에게 두려움과 혼돈의 장소인 것이다. 
 
“주님은 경계를 정하여 놓고 물이 거기를 넘지 못하게 하시며, 물이 되돌아와서 땅을 덮지 못하게 하십니다.”(새번역_104:9)
 
*그리스도인에게 바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주님은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다(요 2:1~10). 그런데 이날이 사흘째 되는 날(요 2:1)이라고 명기하였는데 이는 창조의 셋째 날을 상기시킨다. 광풍 이는 바다는 주님을 태운 배의 안정을 깨지 못했고(막 4:39), 베드로에게 바다는 실패의 자리이다(요 21:6).
 
 
 
 
*주님, 오늘날 혼돈과 무질서의 세계를 평정하여 주십시오. 더 없이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 여기에도 여전함을 믿습니다. 
*주님, 오늘 내게 “물”이 실패의 자리가 아니라 주님의 조화로움과 평안을 누리는 자리가 되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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