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부활 이후 승천과 성령이 임하기까지 [행 1:1-11]
 – 2024년 05월 01일
– 2024년 05월 01일 –
본문은 누가복음 24장 44~53절과 겹친다. 이 부분에서 ‘누가’는 승천하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주님의 “성령 세례” 약속을 기록한다(행 1:4, 5, 8). 특히 8절은 사도행전의 주제를 다루는 핵심 구절로 기독교의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유대와 사마리아와 로마까지 전파되는 사도행전의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후속편이다. ‘누가’는 집필 당시부터 이 두 권의 책을 1, 2부로 나누어서 한 권의 책으로 기록하였다. 하지만 주후 1세기 말부터 2세기 초에 사복음서가 함께 묶여 회람되기 시작하면서 누가의 의도와 달리 사도행전은 누가복음과 따로 분리되어 읽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가의 본래 의도는 예수님의 지상사역에 관한 이야기(누가복음)와 초대교회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사도행전)를 “누가-행전”이라는 하나의 역사, 문학 작품으로 연속성과 통일성 있게 드러내려고 했었다. ‘누가’는 사도행전의 서문을 통해 부활의 생생한 경험으로 서시를 시작하여 누가복음과의 강력한 연결성을 확인해 주고, 서사적 통일성을 구축하려 했다. 또한 이제 예루살렘에서 땅끝까지 펼쳐질 하나님 나라 대서사의 청사진을 선명하게 제공한다.
    
    
    
1. 서문(1~5절)
사도행전의 서문은 누가복음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고(1~2절) 자연스럽게 다음 이야기로 전환하는 역할을 한다. “데오빌로 각하에게(눅 1:3) 와 데오빌로여(행 1:1)”라는 표현으로 인해 누가-행전이 저자 누가가 데오빌로에 보내는 서신처럼 오해하기도 하지만, 이는 당시 문학적 관행을 따라서 자기 작품을 특정인에게 헌정하는 형식을 표현했을 뿐이다.
    
“내가 먼저 쓴 글”은 누가복음이다. ‘누가’는 ‘예수가 행하시고 가르치심과 사도들을 택하시고 성령으로 명령하신 후 승천하심까지 일’로 누가복음을 압축 요약한다. 이를 통해 지금부터 기록할 사도행전이 누가복음과 밀접하게 연결되며 연속된 서사라는 것을 강조한다. 예수의 행함과 가르침은 사도행전에서도 계속될 것인데, 핵심은 “하나님 나라(3절)”이다. 그리고 특별히 부름을 받은 열두 제자를 “사도”라 칭하고 그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 것과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릴 것을 명령하신다(4절). 그리고 세례 요한의 말(눅 3:16)을 인용하여 그 아버지의 약속이 “성령 세례”임을 깨닫게 하신다.
    
“아버지의 약속(텐에팡겔리안 투 파트로스)”은 이사야 32:15, 요엘 2:28~32에서 이미 예언되었다. 특히 요엘 2:28~32은 베드로의 설교에서 직접 인용된다(행 2:17~21). “내게서 들은바”는 주님이 제자들에게 이 약속에 대해 눅 24:49에서 이미 언급한 것을 가리킨다. 성령 세례라는 의미는 성령이 하늘로서 부어지는 것을 말하며 죄 사함과 연결된다(행 2:38). 사실 한국교회가 익숙하게 사용하는 “성령 세례”라는 명사는 신구약 성경 어느 곳에서도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사도행전에서는 동사형으로 두 번 등장(행 1:5; 11:16)하는데 모두 세례 요한의 예언과 관련이 있다. 중요한 것은 사도행전에서는 “성령 세례” 대신에 “성령을 받는다. 성령이 임한다. 성령의 부으심을 받는다” 등의 다양한 표현으로 나타난다.
    
    
    
2. 예수의 승천(6~11절)   
6절은 새로운 장면의 시작이다. 이와 함께 제자들의 새로운 질문이 도입된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6절)” 주님은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에 대해 줄곧 말씀하셨다(3절). 그런데 제자들이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 6절의 질문을 직역하면 “주여, 지금이 (하나님) 나라(왕국)를 이스라엘에게 회복하실 때입니까?”이다. 제자들의 무지(혹은 동상이몽)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주님은 공생애 사역 기간뿐 아니라 분명히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가르치셨지만, 제자들은 터무니없이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회복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럼에도 주님은 7~8절을 통해 제자들이 고수하고 있는 편협한 유대교적 종말론을 넘어서 온 민족을 품는 새로운 기독교적 종말론으로 확장한다. 먼저 하나님 나라의 성취에 관한 때는 아무도 모르고 하나님만 아신다는 것과, 하나님 나라는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을 통해 성취될 것이다. 이는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8절은 사도행전의 핵심 구절로서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 전개될 사도행전의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요약하기 때문이다. ‘누가’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로마 제국의 심장부까지 전파될 것을 선언한다. 이 역사는 “(그러나)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에서부터 시작된다. 4절의 아버지의 약속, 5절의 성령으로 세례를 받음을 지칭하며 2장의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예고한다.
    
초대교회는 성령 강림 사건으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8절은 개인의 성령 체험과 선교 열정에 관한 말씀이기보다는 사도행전의 역사적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면 제자들에게 두 가지 현상이 일어나는데, 먼저 “능력을 받고”, 그리고 주님의 “증인”이 된다. 증인(마르튀스)으로 번역된 단어는 일차적으로 복음 증거를 뜻하지만, 증인의 삶이라는 의미를 수반한다. 초대교회는 말씀 선포와 거룩한 삶을 서로 불가분일 것으로 이해했다.
    
다른 복음서 저자와는 달리 오직 누가만이 예수님의 승천에 대해 기록하였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을 단순히 죽음에서 살아난 사건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하나님 우편으로 승귀한 사건으로 보았다(행 2:33~35). 이를 시편 110:1의 메시아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오르신다는 예언을 통해 예수님의 승천 사건을 확증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누가의 승천 기사의 초점은 승천 사건 자체보다는 승천 직전에 주님이 하신 말씀에 초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면서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실 것이다.” (새번역_11절)
 
    
    
나는?
-부활하신 예수가 부활의 증거와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치셨다. 공생애 기간의 가르침을 정리하고 하나님 나라와 관련하여 자기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가르치셨을 것이다. 40일 동안 주님이 가르치셨다는 것은 제자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증인이 되기 전에 꼭 해야 하는 일이 진리를 배우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바르게 알아야 바르게 살 수 있다. 진리를 알아가는 것에 들이는 땀과 수고를 다른 것으로 대치할 수는 없다. 그저 배워야 그저 가르칠 수 있다.
    
-교회는 말씀의 공동체이다. 그것은 증인들에 의해 기록된 구체적인 역사적 인물과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형성된 신앙공동체라는 뜻이다. 성경에 기초하지 않고 경험만 의존하거나 세상 관습에 포박된 신앙은 굳게 설 수 없다. 예수의 행하심과 가르치심, 그분의 명령과 승천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고 그 참된 의미를 알 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설 수 있다.
    
*교회는 기록된 말씀을 따라 살아내는 말씀의 공동체이다.
    
    
-교회는 배움과 순종의 공동체이기도 하다.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과 40일을 더 머물면서 자신을 통해 이 세상에 도래한 하나님 나라, 자신이 떠난 후에 성령을 통해 임할 하나님 나라, 그리고 자신의 재림을 통해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성령(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이 임할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신다. 교회는 배움의 공동체이자 순종의 공동체이다. 어떤 것보다 하나님 나라 복음을 잘 배워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는 시대적 사명을 살아내야 한다. 예루살렘은 제자들에게 좌절과 실패, 패배의 절망을 안겨준 도시였지만, 그 실패와 불순종과 자신의 한계를 부릅뜬 눈으로 응시할 때, 성령은 그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견인하실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제자들은 여전히 이스라엘 나라가 지금 회복될 것인지 묻는다. 흥미롭게도 주님은 하나님 나라를 가르쳤는데, 제자들은 이스라엘에 집중하는 형세다. 나라와 민족, 혈육을 뛰어넘는 하나님 나라의 큰 관점을 아직 인식하지 못했기에 할 수밖에 없었던 질문이다. 주님의 관심은 모든 사람이었다. 내 나라, 민족, 혈육에 국한된 구원의 여망이 아니라 모든 민족과 열방을 구원하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큰 구원의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낙심할 필요는 없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대로 성령께서 임하시면 그들의 시각은 변한다.
    
    
-교회는 성령의 공동체이다. 제자들의 관심은 이스라엘의 회복이었지만 주님의 관심은 땅끝 이방인들까지 포함하는 하나님 나라였다. 예루살렘 중심의 회복만 기대했던 제자들은 이제 성령을 받고 계급과 혈통과 영토를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원심적 운동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내가 죽고 성령으로 거듭나는 자기 부인의 영성을 통해서만 하나님 나라의 증인이 될 수 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때와 시기는 하나님의 주권에 있는 것과 이에 따라 제자들의 역할은 땅끝까지 하나님 나라 복음의 증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주님의 초점은 십자가와 부활로 본격적으로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 제자들을 통해 계속 진행되는 것이다. 시간적으로는 종말 때까지, 공간적으로는 땅끝까지 진행되어야 할 사명이다.
    
-우리 더온누리교회를 포함한 이 땅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도 동일한 부름을 받았음을 잊으면 안 된다. 어둠 속에 있는 이를 빛으로 인도하는 생명의 통로, 곧 제사장의 삶을 지금 여기에서 감당하며 살아내야 한다.
    
    
-교회는 기다림의 공동체이다. 주님은 제자들이 승천하시는 것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고 천사들이 알려 주었다. 성령에 사로잡힌 자들은 하늘만 쳐다보는 자들이 아니라 하늘의 시각으로 온 땅을 쳐다보고, 주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다. 오늘, 이 땅에 충실한 모습이 다시 오실 주님을 가장 진실하게 기다리는 하늘 백성의 태도이다.
    
    
*주님이 부활하셨다. 모든 것은 역전이 되었다. 부활 직후 주님만 계시면 삽시간에 온 세상이 복음으로 뒤덮일 것 같았다. 그런데 부활을 경험한 제자들이 증인의 삶을 살기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는 것,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따라 기도하는 것, 그리고 승천하신 주님의 모습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기대하는 것이었다.
    
*부활하신 주님이 40일 동안이나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하나님 나라를 가르쳐주시면서 어서 빨리 나가 한 사람에게라도 즉시로 전도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그 대신 성령이 임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셨다. 구원받은 하늘 백성의 삶은 나의 마음이 깃든, 나의 시간표로 사는 삶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과 가르침을 따라 주님의 시간표를 따라 살아야 한다.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배웠다. 하지만 그 지식이 곧바로 증인으로 만들어 주지 못한다. 성령이 임하셔서 권능을 주실 때 온전히 깨달을 수 있고, 담대하게 전할 수 있으며, 땅끝까지 나아갈 담대함이 생긴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오직 성령께서 이루어 가시는 나라이다.
    
*주님은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승천하셨다. 이제 눈에 보이는 의지할 대상이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제자들은 성령을 의지해야 한다. 성령을 의지하여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순종하며 살아내야 한다.
    
*증인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하나님 나라를 잘 배우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잘 기다려야 한다. 성령을 통해 진리를 깨달아야 하고 그분이 주시는 권능을 따라 보내시는 곳으로 가서 주 오실 날까지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다. 이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일을 어찌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을까? 하나님 나라의 일이니, 하나님의 성령 힘으로 감당하면 되는 것이다.
    
    
    
*주님, 하나님 나라를 치열하게 배우고, 성령의 권능을 사모함으로 기다리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대하며 살아내겠습니다.
*주님, 하나님 나라 증인은 하나님의 열심으로 만들어지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증인으로 부름을 받은 삶, 주님이 빚으시는 대로 잘 다듬어져 하늘 백성답게, 하늘의 증인으로 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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