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베드로의 설교 [행 2:14-36]
 – 2024년 05월 04일
– 2024년 05월 04일 –
베드로는 여러 나라 방언으로 말하는 자신들의 기이한 모습에 놀란 청중들에게 자신들은 아침부터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베드로는 그들이 보고 듣는 것은 마치 요엘 선지자를 통해 말세에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기로 약속하신 하나님 약속의 성취라고 설명한다. 또한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이미 시편에 예언된 메시아의 부활을 성취하신 사건이라며 예수님의 주(LORD)되심과 메시아 되심을 입증한다고 선포한다.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최초의 설교이다. ‘누가’는 이 설교를 무려 23구절이라는 지면을 할애하며 소개한다(14~36절). ‘누가’는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사도행전의 독자들이 말세에 일어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의 참된 목적과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베드로의 설교는 증인된 제자들이 증언으로 담아내야 할 핵심 내용들을 담고 있다. 설교 방식이 독특한데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을 엮어서 성취의 관점에서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 행하신 일들을 해석, 적용하고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목적과 섭리 아래 행동의 주체자로서 뜻을 이루시고 결국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다. 베드로의 설교 내용은 승천 이후 예수께서 성령을 부어주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고기독론(High Chistology)”의 핵심 내용을 다룬다. 무엇보다 예수를 죽인 예루살렘 한복판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담대하게 선포했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의 생생한 현장에 몰려든 사람들 속에는 예루살렘 주민들도 있었다. 그들 앞에서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높여 외쳤다. 지금 일어난 이같이 놀라운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면서 설교를 시작한다.
    
    
    
1. 술에 취한 것이 아닌 요엘 선지자의 예언 성취(14~21절)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많은 이들은 긍정적인 반응이었으나 일부는 제자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하였다. 앞 단락은 오순절 성령강림을 두고 두 가지의 반응을 소개했다. 많은 이들이 놀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일부는 제자들이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했었다. 이에 베드로가 열두 사도를 대표하여 모인 청중에게 해명하면서 설교가 시작된다.
    
베드로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술에 취했기 때문이 아니라 요엘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된 것으로 이해해야 함을 지적하며 요엘 2:28~32을 인용한다. 이 구절은 로마서 10:13과 요한계시록 6:12에서도 인용된다. 이는 누가가 사도행전에서 처음 인용한 것이 아니라 이미 초대교회에서 인용되어 이해되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베드로는 요엘서를 인용하면서 당시 정황에 맞게 일부 어구를 수정했는데, 요엘의 ‘그 후에”가 “마지막 날에”로 수정하여 베드로가 성령강림 사건을 종말론적인 사건으로 이해했음을 보여준다.
    
요엘의 예언 문맥에서는 하나님이 메뚜기 떼를 통해 이스라엘을 심판하겠다고 하셨을 때, 이 경고의 메시지를 듣고 백성이 회개했고 이에 하나님은 그들의 회개를 받으시고 심판을 철회하시며 풍성한 추수를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그러고 나서 “그 후에”로 시작하는 인용 본문이 뒤따른다. 베드로는 요일의 예언이 오순절 사건으로 성취되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지금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예언의 핵심 내용은 무엇일까? 먼저, 하나님의 영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모든 육체”)에게 부어진다. 구약 시대의 특정 인물들인 선지자, 왕, 제사장에게만 국한 되었던 것이 만인에게(자녀들, 젊은이들, 늙은이들, 남종과 여종) 허락되었다. 여기에 언급된 예언, 환상, 꿈은 각각 다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말세에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깨닫게 될 것임을 가리키는 것이다. 또한 말세에는 기사와 징조가 나타날 것인데, 요엘의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로 바뀐다. 기사와 징조는 방언과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기사들을 가리키는 듯하다. 그리고 반드시 최후의 심판의 날이 있을 것인데, 그것이 바로 “여호와의 날, 곧 주의 날”이다. 그때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라는 선언은 구원의 메시지로서 주 예수를 의지하고 신뢰하는 자는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2.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 하신 일(22~28절)
베드로는 이어서 예수의 행한 기사와 표적들은 하나님이 친히 하신 일임을 밝힌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로 알아보지 못하고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뜻과 미리 아심”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유의지를 행사하여 예수를 죽였다. 그들의 살해는 구약에 예언되었던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으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법 없는 자들”의 책임이 감면되거나 면제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24절 이하는 부활에 관한 설교다. 이는 초대교회가 예수님의 부활을 기정사실로 믿고 증언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베드로는 이 부활에 대하여 예수께서 메시아이시기 때문에 부활하실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면서 시편 16:8~11을 인용한다. 베드로는 이 시편 구절을 메시아가 직접 다윗의 입을 빌려 자신의 부활에 대해 진술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시편 16편은 다윗이 어려운 역경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신앙의 표현인데, 베드로는 이 시편을 인용하는 본문부터 주어가 바뀐다는 것을 통찰하고 더 이상 다윗이 아닌 곧 메시아의 독백으로 해석한다(25절). 또한 다윗은 이미 죽고 그의 묘가 아직 남아 있으므로 이 예언은 다윗이 아니고 다른 사람을 대신해 말한 것이라고 설교한다.
    
    
    
3. 예수가 주와 메시아임을 입증(29~35절)
다윗은 후손 중 한 명이 자기의 보좌에 앉을 것을 알았다. 또한 다윗은 선지자로서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예언할 수 있었다(30~31절). 베드로가 이 시편을 인용한 이유는 다윗의 입을 통해 예수가 이스라엘이 고대하던 메시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증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서 베드로는 성령강림에 대하여 설명한다(33~35절). 예수의 부활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 우편으로의 등극으로 이해된다. 35절에 인용한 시편 110:1에 근거한 것이다. 이 구절은 초대교회에 가장 널리 알려진 메시아 시편이다. 신약성경에서만 22회가 인용되었다. 다윗은 말한다. “주(하나님)께서 내 주(메시아)에게 말씀하신다…. 너(메시아)는 내(하나님) 우편에 앉아 있으라.” 특히 주님께서 직접 바리새인들과 변론하실 때 자신의 초월적 정체성을 암시하며 인용하셨다(눅 20:41~44).
    
베드로는 하나님이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내용으로 설교를 마무리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동과 하나님의 행동이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베드로는 시편의 예언을 통해 예수가 이미 태초부터 주와 메시아였음이 확증되었다고 선포한 것이다.
    
    
    
나는?
-베드로가 처음으로 설교하며 선포한 “하나님 나라 복음”은 어떤 내용인가? 베드로는 “예수가 복음의 핵심”임을 선포했다. 메시아 되시는 예수의 정체성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천의 사역에 대해 전했다. 성령강림 후 첫 증언과 증거였다면 아무 모든 증거의 핵심도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여야 한다. 우리 교회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전하는 교회인가?
    
-성령의 첫 사역은 진리를 증거하는 것을 돕는 일이었다. 제자들이 예수에게 배운 것을 깨닫고 생각나게 하셨다. 성령을 구하는 것은 곧 진리를 전하기 위해, 진리를 드러나게 하려고 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오늘날 성령을 신비한 특정 현상으로만 이해하고 그것만 체험하고 소유하면 된다는 식의 왜곡된 인식을 빨리 버려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성령을 구하는가? 성령의 역사는 진리의 말씀을 깊게 이해하게 하고 바른 적용의 삶으로 이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사도들은 오순절 전에는 도망가고 숨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부활한 예수를 만나 진리를 배웠고 기도하며 성령의 도움을 받았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부활의 주님을 먼저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헌신하기 전에 주님이 먼저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위선의 탈을 쓸 수 있다.
    
-베드로의 첫 설교는 단지 그의 헌신이나 열심이 아니라 성령으로 인한 변화와 진리의 배움과 깨달음을 가져온 역사의 열매였다. 주님께서 보내신 성령과 더욱 친밀해질수록 성령께서 더 바르고 깊은 진리의 말씀을 전하도록 도우실 것이다. 이 믿음으로 오늘도 설교자의 자리에 서리라.
 
 
*베드로의 변화가 놀랍다. 베드로 뿐인가? 함께 선 열한 사도들의 변화된 모습이 담대하고 진지하다. 주님을 믿고 함부로 기고만장하던 때와 다르고(마 27:33), 칼을 빼어 말고의 귀를 쳤던 혈기도 사라졌다(마 27:51).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세번이나 부인하던 비겁자도 아니었다(마 27:75). 차분하고 논리정연하면서도 한편으로 거침없이 구약성경을 오가며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한다. 놀라울 정도로 하나님의 구속사를 차분하게 풀어낸다. 무엇보다 홀로가 아닌 열한 사도와 함께 이 말씀을 성령에 이끌려 담대하게 선포한다.
 
*참으로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니 “권능”이 드러난 것이다. 성령은 이렇게 제자들을 변화시켰다. 그들에게 강령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채워주셨다.
 
*사도행전의 본문을 읽거나 묵상할때면 늘 “주님 저에게도 이 권능을 주십시오” 간절하게 매달리게 된다. 주일마다 성도들 앞에 서야 하는 제게 베드로처럼 담대함으로 주의 말씀을 말씀에서 말씀으로 풀어내도록 도와주십시오 라고 매달리게 된다. 매 주일, 매 시간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이미 임하신 성령께서 늘 그래주셨으면 좋겠다.
 
    
    
    
*주님, 성령의 능력과 은혜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증언하겠습니다.
*주님,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진리를 더욱 깨우쳐 진리를 진리답게 선포하고 가르치도록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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