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스데반의 설교_모세 이야기 [행 7:17-36]
 – 2024년 05월 14일
– 2024년 05월 14일 –
스데반은 출애굽의 이야기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모세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모세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바로 공주의 아들로 입양된 이야기로 시작하고, 청년 시절 애굽 사람을 죽이고 미디안으로 도주한 사건과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사건을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나간다. 스데반은 출애굽기 1장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요약하면서 요셉의 이야기에서 모세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전환하였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때가 가까움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의 수는 늘어났고 요셉을 모르는 새 바로가 왕위에 오르게 되면서 가중된 노역으로 그들을 괴롭게 했다. 새로운 바로는 곡식을 저장하는 성읍 비돔과 라암셋을 건설하는 일에 이스라엘 백성을 동원하였다. 또한 갓난 사내아이들을 내다 버리게 만드는 잔인한 정책도 감행했다.
 
스데반은 본문 모세의 이야기를 통해 의도적으로 그의 설교 후반부에 소개될 예수 이야기의 모형적인 유사성을 연상되도록 유도한다. 또한 구약 시대의 이야기를 회고하는 형식으로 조상의 불순종을 되풀이하는 산헤드린 공회원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한다.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미묘하게 선포하는 발판으로 삼는다. 스데반에게 성령의 역사하심 속에 나타난 놀라운 능력이 틀림없다.
 
 
 
1. 모세의 어린 시절(20~22절)
스데반은 모세의 생애를 40년 주기로 나누어 세 단계로 소개한다(23, 30절). 이 단락은 모세의 어린 시절을 다룬다. 모세는 위기 상황 가운데 태어났다. 스데반은 모세의 출생과 관련하여 그의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라고 말한다. 모세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태어난 아기임을 강조한 것이다. 모세는 태어나서 3개월 동안 부모의 보호를 받았다. 출애굽기 6:20은 아버지의 이름이 아므람이었고 요게벳과 결혼했음을 밝힌다. ‘석 달’은 갓난아이를 감출 수 있는 최장기간이다. 스데반은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라고 표현했다.
 
버려진 후에는 바로의 딸이 모세를 발견하여 아들로 입양하게 된다. 모세의 누나 미리암의 도움과 하나님의 섭리로 모세는 생모의 젖을 먹고 자라게 된다. 출애굽기에는 이 바로의 딸의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 공주의 이름을 “데르무디스”로 소개한다. 22절은 모세가 자라난 배경을 강조하는데, 출애굽기에서는 모세의 교육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스데반은 모세가 애굽의 훌륭한 학문을 전수받아 언변과 행동이 뛰어난 인물로 성장했음을 부각한다. 이는 앞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 땅에서 구원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한 지도자로 모세가 준비되었음을 암시해 준다.
 
 
 
2. 모세의 청년 시절(23~29절)
23절부터는 모세의 생애 둘째 주기로 접어든다. 나이 마흔 살에 모세의 인생에 큰 위기가 찾아온다. 출애굽기는 모세의 당시 나이를 명시하지 않고 단지 “장성한 후에(출 2:11)”라고 말한다. 하지만 랍비 전승은 모세의 생애 120년을 40년씩 삼등분하기도 하고, 40년을 일반적으로 한 사람의 장성한 나이로 본다. 40은 정확한 숫자라기보다는 어림수에 가깝다.
 
‘그의 마음에 떠올랐다’라는 스데반의 표현은 그들을 돌보고자 하는 생각을 하나님이 직접 모세의 마음에 심어주었다는 어감을 느끼게 한다. 애굽 사람을 우발적으로 살인하게 된 것도 원통한 일을 당하는 동족을 도우려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모세의 마음을 이해하지 않고 도리어 그를 살인자로 배척한다. 스데반은 하나님이 모세의 손을 통해 동족을 구해내려 하신다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이 깨달을 줄 알았는데, 그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다고 덧붙인다. 이러한 전개는 모세의 이야기와 나중에 소개될 예수의 이야기 사이에서 유사성을 확보하려는 의도이다.
 
스데반은 모세를 예수의 모형으로 보여주기를 원했다.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구원자로서 두 사람의 공통점이 드러나기를 원한 것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애굽 종살이로부터 구해줄 구원자로 알아보지 못한 것처럼, 지금 유대인들도 하나님의 메시아로 오신 예수를 구원자로 알아보지 못한다. 스데반은 27~29절과 34~39절에서 이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아쉽게도 스데반의 연설을 듣고 있는 공회원들이 이를 얼마나 인식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누가’는 사도행전을 읽는 독자들이 이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기를 원했다.
 
바로의 눈을 피해 도망친 모세는 미디안 땅에서 아들 둘을 낳고 나그네처럼 살게 된다.
 
 
 
3. 모세의 소명(30~36절)
‘사십 년이 차매’는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인 후 미디안 땅에 거주한 기간을 가리킨다(출 7:7). 스데반은 이 단락에서 모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시내산 계시 사건을 소개한다. 모세는 어느 날 가시나무 덤불 불길 속에서 천사의 모습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임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가까이 다가간 모세는 그 속에서 하나님이 음성을 듣게 된다. 그런데 스데반은 의도적으로 출애굽기 3:5~6에 기록된 하나님의 음성의 순서를 바꾸어 소개한다. 이는 그에게 나타나 자신을 계시하신 분이 바로 선조들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임을 확실하게 보여줄 뿐 아니라 선조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연상시키는 효과를 주었다.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다시 한번 스데반의 연설을 듣고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약속의 땅에서만 자신을 계시하는 분이 아님을 인식시킨다. 유대인들은 구약에서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가장 분명하게 계시하신 사건이 시내산 계시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스데반은 그 계시의 장소마저 약속의 땅이 아니라 타지 시내산이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이 부분에서도 유대 지도자들을 향한 메시지는 너희가 믿는 하나님을 너희의 생각으로 재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스데반은 하나님이 유대인들의 예상과는 달리 나사렛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시고 죽음에서 다시 살리심으로써 온 인류를 향한 자신의 계획과 경륜을 이루시는 분이심을 보여준다.
 
스데반은 35~36절을 통해 모세에 대해 중요한 진술을 한다. 헬라어 원문에는 “이 모세” 혹은 “이 사람”이란 표현이 문장의 첫머리에 네 차례 등장한다. 스데반의 진술을 요약하면 “이 모세가 바로 하나님이 너희의 지도자와 구원자로 세운 사람인데 너희들이 거부한 그 사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단지 모세를 거부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를 거부함으로써 하나님을 거부한 것이다. 이 단락에서도 역시 모세가 예수의 모형으로 그려진다.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속자”(개역 개정은 “속량하는 자”)라는 칭호가 주어진 사람은 모세가 유일하다.
 
 
 
나는?
-어디든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성전만이 아니라 메소포타미아와 하란에서, 가나안에서, 애굽에서, 미디안 광야에서 주의 종들에게 임재하시어 자기 뜻을 계시하셨다. 하나님은 성막과 성전에 갇히지 않으시고, 온 세상 어디든 계시면서 통치하신다.
 
-하나님은 번성케 하신다. 그러나 바로는 핍박한다. 사백 년 나그네 생활의 기한이 다 끝날 때 이스라엘도 약속대로 번성하였다. 하지만 고센 땅은 약속의 땅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게 하고 새로 태어난 아이들을 죽이는 바로의 악행을 감수해야 했다. 모든 것을 다 갖추어도 하나님이 왕으로 계시지 않는 나라는 결코 복된 나라가 될 수 없다. 풍요롭지만 바로가 통치하는 애굽은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없다.
 
-아름다운 땅 가나안으로 자기 백성을 인도할 아름다운 사람 모세를 압제자 바로의 왕궁에서 자라게 하신다. 거기서 애굽의 모든 지혜를 배워서 애굽을 상대할 지도자로 성장시키신다. 가장 절망이 깊어져 갈 때와 가장 위태로울 때도 하나님은 자신의 역사를 중단하지 않으신다. 모세는 자신의 구원 사명을 깨닫고는 왕국의 영광을 뒤로한 채 동족의 고통에 참여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그를 거절한 것은 이스라엘이었다. 구원자로 오신 예수를 거절한 유대인들도 이 조상의 죄를 반복한 것이다.
 
-거절하는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미디안 광야에서 사십 년을 나그네 생활하던 모세를 찾아가셨다. 그리고 다시 그를 거절하는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속량하게 하신다. 구원자를 거절한 이스라엘이지만 그들의 괴로움을 보고 신음을 들으시고 다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이다.
 
-이렇듯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스라엘 백성의 반역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역사이다.
 
 
*약속을 이루시기 위한 정확한 때와 기한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이시다(17~19절).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약속이 실현할 때가 다가오자, 애굽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의 수가 많아졌고, 애굽 바로의 학대는 갈수록 심해졌다. 약속의 성취가 무르익을 무렵 고난의 강도 역시 더욱 강해진 것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백성이 고난에 지지 않는 것은 고난 뒤에 오는 영광을 확신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지금 나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는커녕 갈수록 고난이 더 깊어져 가는 것 같은가? 그럴수록 약속의 때가 가까이 왔다는 믿음으로 말씀 위에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이 가장 깊은 시간에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세를 태어나게 하셨다(20절).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아이를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진 때에 모세가 태어난 것이다. 이 모세는 장차 이스라엘을 고통 가운데서 구출해 낼 구원자가 될 것이다. 인생의 위기 순간에 아름다운 사람 모세를 준비하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섭리를 기억하고 신뢰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아이를 죽이라는 애굽 바로의 왕궁 한복판에서 이스라엘의 구원자를 성장하게 하신다(21~22절).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방법이다. 때로 우리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도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해야 한다.
 
*모세는 자기 동족을 돌아보며 구원을 베풀려고 하다가 오히려 동족에게 오해와 배척을 받고 미디안으로 도주한다(23~29절). 그는 애굽의 궁정에서 성장하면서 민족의식에 눈을 뜨고 자신이 하나님의 손이 되어 이스라엘을 구원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모세와 달리 백성들은 아직 하나님의 일을 깨닫지 못하고 그를 거절한다. *나의 삶 속에 일어나는 여러 사건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통해 어떤 방법으로 일하실지 주의 깊게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내는 삶이어야 하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거절하고 배척한 모세를 하나님이 지도자와 해방자(*관원과 속량하는 자)로 세우셨다(30~36절).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보내신 모세에 대해 백성은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세웠느냐?”며 거절했으나(27, 35절) 하나님은 오히려 그를 불러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삼으신 것이다.
 
*백성들의 무지와 고집스러운 반역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열심히 구원의 약속을 실행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오늘 우리에게도 소망의 근거가 된다.
 
 
 
*주님, 어떤 상황 속에서도 약속하신 대로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에 오늘도 믿음으로 충분히 살아낼 용기를 발휘하겠습니다.
*주님, 가장 어려울 때 가장 아름다운 이를 보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가장 고통스러울 때를 지날 때 가장 아름다운 일을 행하실 하나님이 나의 소망 되심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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