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핍박하는 자에서 핍박당하는 자로 [행 9:19b-31]
 – 2024년 05월 20일
– 2024년 05월 20일 –
건강을 회복한 사울은 지체하지 않는다. 곧바로 다메섹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전한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그가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 모습에 매우 당황한다. 이 때문인지 사울은 암살당할 처지가 되고 다메섹을 극적으로 탈출한다. 예루살렘에서는 바나바의 도움으로 사도들과 우호적인 유대 관계를 맺은 사울은 거기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지만 또다시 살해 음모 때문에 고향 다소로 돌아간다. 
 
 
 
1.다메섹에서 사울(19b~25절).
19b~22절은 갈라디아서 1장에서 기록한 자서전적 기록과 나란히 놓고 읽으면 역사적 정황을 이해할 수 있다. 아나니아의 도움으로 시력과 건강을 되찾은 사울은 다메섹에서 며칠을 보내면서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전한다(19b~20절). 사울은 이제 교회 박해자에서 복음 전도자로 전향했다. 누가는 바울이 전한 복음의 내용을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 되심으로 요약한다. 매우 독특한 것인데, 사도행전에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사도 바울의 설교(행 13:33)를 제외하고는 예수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갈라디아서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기독론적인 칭호는 매우 중요하다. 갈 1:1~4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할 때에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가 등장한다. 또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이야기할 때에도(갈 4:4)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 언급한다. 이 칭호는 예수가 유대인들이 고대하던 이스라엘의 메시아이며(삼하 7:14) 부활 이후 하나님 우편으로 올라가 가신 분(시 2:7)임을 의미한다. 
 
23~25절은 다메섹에서 ‘여러 날’이 지났음을 알리며 시작한다. 이 기간은 갈 1:18에서 바울이 예루살렘을 방문하기 전의 기간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이 단락은 바울이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온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아라비아에서 얼마 동안 머물렀는지는 알 수 없다. 한편 다메섹의 유대인들은 사울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몄고 이 사실이 들통 나서 그리스도인들이 사울을 광주리에 넣고 성 밖으로 탈출 시킨다. 이 일도 고린도후서 11:32~33에서 언급한다.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여기서 아레다 왕은 당시 나바트 왕국의 왕을 가리킨다. 
 
 
 
2.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을 만남(26~29절)
사울은 다메섹을 극적으로 탈출한 후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누가는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과 사귀고자” 했다고 기록한다. 여기서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하지만 사울의 이런 바람과 달리 예루살렘의 성도들중 어떤 이들은 사울이 과거에 저질렀던 “행적” 때문에 그의 회심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신들을 만나고자하는 것을 하나의 잘 기획된 “속임수”로 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바나바”가 등장한다. 바나바는 사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그의 극적인 회심과 그에게 맡겨진 사명과 그의 전도 활동에 대해 말해준다. 여태껏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 사도들의 마음을 회유하고 사울의 명예 회복을 도왔다. 곤란한 상황의 사울을 돕는 바나바의 따뜻한 배려는 사도행전에서 묘사된 그의 온유한 성품과 조화를 이룬다. 
 
 
 
3.다소로 돌아간 사울, 굳건하게 세워지는 교회(30~31절)
사도들과 유대 관계를 맺은 사울은 예루살렘에서도 담대하게 예수의 이름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헬라어를 주로 사용하는 유대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며 그들과 논쟁을 벌인다. 이 때문에 그들은 사울을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미게 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성도들은 그를 가이사랴로 데리고 간 후 다시 다소로 보낸다. 
 
이제 사울은 사도행전 11:25에서 다시 등장하기까지 사도행전의 무대에서 약 10년간 사라진다. 누가의 관점에서는 9장까지의 이야기를 통해 이방 선교를 위한 사전 준비가 모두 끝난 것이다. 그렇기에 전반적인 초대교회의 진행 상황을 간략하게 요약하며 6:8부터 서술된 초대교회의 복음 확장 이야기를 일단락 한다. 무엇보다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는 팔레스타인 전체에 복음이 전파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사울은 눈을 뜬 즉시 다메섹 회당의 유대인들을 향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라고 선포한다. 신성모독과 관련한 죄로 인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처형 되었다고 여겼던 예수가 사실은 자기 죄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갈 3:13)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돌아가셨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의 죽음은 죄인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한 메시아요, 하나님 아들의 고난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은 그의 신학과 가치관과 인생 목표 전체에 변화를 가져왔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세계관을 수용한다는 뜻이다. 
 
-사울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새로운 사명을 즉시로 수행한다(19b~22절). 자신이 핍박했던 제자들과 함께 친교의 시간을 보내고 회당에 가서 자신이 핍박했던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전한다. 예수님을 만난 후, 그의 삶이 완전히 변한 것이다. 내게도 주님을 만난 확실한 경험과 그 후로 확실히 변화된 삶의 증거들이 있을까?
 
 
-예수의 도를 좇는 이들을 잔멸하러 온 사울이 예수의 이름으로 전하고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예수를 전하던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섰던 사울이 그 예수를 전하는 것을 보고 다메섹과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했다. 아나니아를 통해 들었던 복음 때문에 고난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행 9:16)이 이미 실현되기 시작했다. 
 
-모든 이들에게 환영받는 복음은 참 복음이 아니다. 모든 이들을 기쁘게 하는 복음 전도자는 참 증인이 아니다. 듣는 이들이 다 좋아하는 말씀은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 복음과 진리는 고난과 함께 한다. 거절과 냉대와 친구다. 
 
-하나님의 돕는 손길들을 통해 복음 전도자의 신변을 안전하게 보호해주신다.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했을 때는 다메섹의 제자들을 통해 성 밖으로 피신시켜 주셨고, 예루살렘 제자들의 오해를 받을 때는 바나바를 통해 인정을 받게 해주셨다. 헬라파 유대인들이 살해 음모를 꾸밀 때도 예루살렘의 형제들을 통해 안전하게 지켜 주셨다. 하나님은 지금도 복음을 증거하는 일꾼들이 처한 어려움을 아시고, 곳곳에 돕는 손길들을 준비하고 계신다. 
 
 
-과거 사울의 악명 때문에 그를 두려워하고 꺼려하던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 사울이 얼마나 철저히 변했고 믿을 만한 예수의 사람인지를 잘 소개해준 이는 “바나바”였다. 그는 위로의 사람으로 불릴 만큼 온유했고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구제할 만큼 신앙과 인격에 본이 되었다. 그래서 사도들은 그의 추천을 믿고 사울을 형제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주님의 제자들에게 갖가지 박해와 오해가 있었지만 오히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주님의 교회는 더욱 든든히 서나갔다. 성령께서 믿는 자들 가운데 위로하심으로 내주해계셨기 때문이다.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있을지라도 성령의 위로 가운데 있다면 든든히 서 있을 수 있다.
 
-내가 몸소 주의 일꾼이 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나를 통해 누군가가 주의 일꾼이 되고 은사를 발휘하고 적절한 일과 자리를 찾아가도록 돕는 “통로” 역할을 하는 일이다. 
 
-바나바는 사울의 회심을 의심하는 예루살렘 제자들 앞에 적극적으로 사울을 인도하여, 사울의 삶에 일어난 진정한 변화와 믿음을 옹호했다. 그의 별명(위로의 아들)에 걸맞은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이렇게 사울을 세워주는 바나바의 담대한 믿음의 행보가 있었기에 사울이 위대한 복음 전도자로 거침없이 활보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다메섹에 아나니아 있었다면, 예루살렘에는 바나바가 있었다. 
 
 
 
*주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온전하게 하는 사역을 잘 감당하겠습니다. 
*주님, 복음을 전하는 길에 온갖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주의 말씀이 더욱 힘을 얻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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