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예수님처럼, 더 예수님처럼 [행 9:32-43]
 – 2024년 05월 21일
– 2024년 05월 21일 –
사울의 회심과 초기 전도 활동(9:1~31) 이야기를 잠시 접고 8:25의 사마리아 방문 이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베드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 베드로가 예루살렘을 떠나 팔레스타인 서쪽 해변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며 행한 두 가지의 기적 이야기를 소개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베드로가 룻다에서 중풍 병자 애니아를 고쳐주는 내용이고 두 번째 이야기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병들어 죽어 장례를 기다리던 과부 도르가를 다시 살리는 내용이다.
    
이 두 가지 기적 이야기는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고치신 이야기(눅 5:17~26) 및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이야기(눅 8:41-56)와 매우 유사하다. ‘누가’는 이후 바울의 이야기에서도 이와 유사한 기적을 행하는 이야기를 서술한다(행 14:8~12; 20:7~12). 공관복음은 예수가 일으키신 기적들을 그가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표징으로 소개했다. ‘누가’는 예수님의 지상 사역 동안 함께하셨던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따르는 제자들을 통해 나타나고 있음을 이와 같은 기적 이야기를 통해 보여준다.
    
    
    
1. 룻다에서 중풍 병자 애니아를 치유함(32~35절)
베드로는 여러 지역을 두루 다니다가 “룻다”라는 마을에 도착한다. 그곳의 “성도들(32절)”을 만났다고 기록하는데, 예루살렘에 일어난 박해를 피해 두루 흩어진 성도들이 이 지역에도 이주해 있었거나, 빌립이 사마리아 지역을 전도할 때 아소도에서 가이사랴로 가면서 복음을 전했는데(8:40절), 그때 믿은 신자들일 가능성도 있다.
    
“애니아”라는 이름은 헬라식이지만, 이미 예수님은 믿은 신자였을 가능성이 크다. 베드로가 애니아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34절)”라고 말했는데, 이는 그가 이미 신자였음을 암시한다. 애니아는 베드로를 만났을 당시 이미 팔 년 동안이나 중풍으로 누워있었다. 하지만 베드로는 이런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치유하신다”라고 담대하게 선언했다.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5:17~26에서 네 명의 친구들에게 들려 온 중풍 병자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라고 말씀하신 기적을 연상케 한다. 예수님을 통해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능력이 이제 베드로를 통해 동일하게 나타나신 것이다. 또 “네 자리를 정돈하라”로 번역된 문장은 직역하면 “네 자신을 펼쳐라.”라는 뜻인데, 일반적으로 침상을 정리한다는 의미이지만, 식사를 위해 앉을 자리를 준비하라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한다면 예수님께서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려 주시고 그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눅 8:55)과 같은 맥락의 선언이다.
    
이 치유의 기적은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졌고 이 기적을 통해 룻다와 사론에 사는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35절).
    
    
    
2. 욥바에서 죽은 도르가를 살림(36~43절)
룻다를 떠난 베드로는 욥바에 들어왔다. 욥바는 룻다에서 17km 떨어진 해변 도시이다. 이곳에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살고 있었다. “여제자(마데트리아)”라고 번역된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유일하게 이 본문에서만 사용된다. 중풍을 치유받은 애니아와 달리 다비다는 명시적으로 “제자”라고 소개된다. “다비다”는 아람어인데, 헬라어로 번역하면 “도르가”이다. “영양(羚羊)”이라는 뜻이다. ‘누가’는 그녀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은” 사람으로 소개한다(36절).
    
그런 도르가가 병들어 죽고 만다. 사람들은 그녀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눕혔다. 이는 장례를 치르기 위한 준비가 끝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욥바에 있던 제자(신자)들이 베드로가 룻다에서 중풍 병자를 고쳤고 아직 그곳에 있다는 말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 속히 와 달라고 요청한다(38절). 이에 급하게 온 베드로가 도르가의 시체가 뉘어있는 다락방에 올라갔다. 그 방에는 도르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애도의 눈물을 흘리는 과부들이 있었다. 그들은 도르가가 살아있을 때 자신들에게 만들어 준 속옷과 겉옷을 베드로에게 보여준다(39절). 아마도 베드로가 그녀의 착한 마음을 보고 기적을 베풀어 주기를 기대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베드로는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을 따라 한다. 먼저 애도하는 자들을 다 방에서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리고 죽은 여인의 이름을 부르며 “다비다야 일어나라”라고 명령한다(40절). *베드로가 이 말을 아람어로 했다면 “타비따 쿰”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일으키실 때 하셨던 “탈리따 쿰(딸아 일어나라)”과 같은 구문이며 거의 비슷한 음가를 따른다.
    
죽었던 도르가는 베드로의 말에 눈을 떴고 베드로를 보더니 그대로 일어나 자리에 앉았다. 기도와 명령 한마디에 그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통해 또다시 기적을 일으키신 것이다. 이 일 후에 욥바에서도 죽었던 도르가를 다시 살리는 기적을 통해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42절).
    
‘누가’는 도르가를 살린 이야기를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43절)”라는 말로 마무리한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기록이지만, “무두장이”는 짐승의 생가죽을 다루는 직업(제혁업자)이다. 당시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바리새인들은 부정하다는 이유로 무두장이들과 접촉을 피했다. 유대인인 베드로의 변화된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율법 준수에 있어서 개방적인 입장으로 완전히 변화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안디옥에서 이방인들과의 식사 자리를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시선 때문에 피했던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복음이 예루살렘을 넘어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을 관통하고 이방지역으로 나아가는 선명한 방향성을 보이고 있으며,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의 변화도 지속해서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나는?
-복음이 예루살렘에만 머물지 않고 점점 확장되고 있다. 지경이 넓어지고 찾아가서 살피며 실제적인 필요들에 대한 기적들이 이어진다. 하나님 나라 복음이 유대 안에서 점차 소외된 지역, 이방지역으로 나아가며 예수님께서 유대 땅에서 행하셨던 놀라운 기적들이 이어진다. 베드로가 룻다에서 중풍으로 8년을 누워있던 성도 애니아를 일으켰다.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고치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베드로 자신도 이런 치유의 기적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임을 분명하게 밝힌다. 그래서 회복된 애니아를 본 사람들은 베드로가 아닌 주님께로 돌아왔다. *이 장면을 기억하자. 나의 삶과 사역을 통해 사람들의 시선이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집중되게 해야 한다.
    
-베드로를 통해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가 사마리아 지역에 선명하게 보여지고 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람이 그어놓은 경계선이 무의미하다. 그곳에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예수님의 능력으로 전해진다.
    
    
-욥바에 사는 다비다가 죽자 다른 제자들은 17km 정도 떨어진 룻다로 두 사람을 보내 베드로에게 와달라고 간청한다. 그렇게 죽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다비다였다. 그녀는 선행과 구제로 본이 되는 제자였다. 제자들은 죽은 자를 살렸고, 자신도 살아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제자) 베드로라면 도르가의 죽음도 충분히 극복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야이로의 딸을 살리는 것을 보았던 베드로(막 5:40)는 그 절차를 따라서 다비다를 살린다. 우는 자들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그러고는 예수님이 “달리다굼 “하신 대로, 마찬가지로 아람어로 말했을 베드로도 “다비다쿰(다비다야 일어나라)” 말하여 다비다를 살려낸다. 이 사건을 통해 다비다만이 아닌 욥바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다.
    
-다비다가 살아난 이야기는 한 지체를 향한 성도들의 사랑,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 사역자의 믿음의 결행이 어우러져 사망의 땅에 생명이 찾아왔음을 알리는 놀라운 일이었다.
    
    
*예수님을 믿는 자를 통해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하게 하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요 14:12)이, 베드로와 제자들의 사역 안에서 놀랍게도 성취되고 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는 예수님의 생명 능력이 우리 더온누리 공동체의 사역을 통해서도 일어나기를 기대하며 믿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붙잡아야 하겠다.
    
*도전되는 부분은 다비다의 죽음을 알았고, 장례 준비까지 다 마쳤지만, 그런데도 욥바에 베드로가 있다는 소식에 두 사람을 보내 도움을 요청한 성도들의 믿음이다. 이 믿음이 다비다의 부활 역사를 낳았다. 고통받고 있는 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믿음으로 무엇이라도 행하는 것이 곧 믿음의 삶이 아니겠는가!
    
    
*베드로의 욥바와 룻다에서의 사역은 “예수님처럼”에서 “더 예수님처럼”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고 치유와 회복의 사역을 믿음으로 도전하는 제자들의 변화를 볼 수 있게 한다. 복음은 전하면 전할수록 복음을 듣는 이들에게보다 전하는 이들에게 더욱더 확신과 능력으로 다져지는 것을 바라보게 된다. 중풍 병자를 고칠 때에도, 죽은 이를 일으켜 세울 때도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하신 것을 기억해 내며, 예수님처럼 믿음으로 감당했다. *나도 지금, 여기에서 더욱 예수님처럼 내게 주어진 복음 전도의 현장을 꿋꿋하게 지켜 나가리라!
    
    
    
    
*주님,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치유와 살림의 역사가 일어나고 하나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서 더욱 확장되게 하실 것을 바라봅니다.
*주님, 룻다 제자들의 믿음의 용기가 도전됩니다. 저도 성도들의 삶에서 믿음의 도전을 앞장서겠습니다. 세상 가치와 인식, 경험을 먼저 이야기하기보다 믿음의 이야기를 먼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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