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백부장 고넬료 사건 2 _ 환상에 함몰되기보다 생각하고 질문하며 [행 10:17-33]
 – 2024년 05월 23일
– 2024년 05월 23일 –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에 도착하여 베드로를 찾는다. 성령이 베드로에게 주저하지 말고 함께 가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을 집으로 들여 하룻밤을 머물게 한 베드로는 그들과 함께 가이사랴로 출발한다. 베드로는 어떤 목적으로 자기를 집으로 초대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고넬료로부터 직접 듣는다.
    
고넬료의 회심 이야기는 하나님의 절묘한 타이밍을 목격하게 한다. 베드로가 환상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그의 집 앞에 도착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과 섭리를 이루시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신다. 그분의 섭리 안에서는 때와 장소 역시 절묘하다. 예루살렘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빌립이 에티오피아 내시를 만나게 하신 하나님이 이번에는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을 주관하신다.
    
    
    
1. 욥바의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서(17~23a절)
베드로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의 의미를 쉽게 깨닫지 못한다. 환상을 세 번씩이나 보여주셨다는 것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베드로는 그 환상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베드로가 방금 본 환상의 의미를 생각하며 머리를 갸우뚱하고 있을 때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 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베드로를 찾았다. 여전히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베드로에게 성령께서 직접 말씀해 주신다. “…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19b~20절).”
    
특히 주의 사자가 베드로에게 말한 “의심하지 말고”로 번역된 동사는 “의심하다”라는 의미 외에도 “차별하다”라는 뜻도 함께 사용하는데, 문맥에 비추어 보면 “차별하지 말라”는 해석이 더 적절해 보이기도 한다.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베드로에게 미리 환상을 보여주신 이유를 드러낸다. 즉 이 사람들의 방문을 미리 준비하라는 의미였다. 이에 베드로는 옥상에서 내려가 자기를 찾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백부장 고넬료가 자신을 초청하여 중요한 말씀 듣기를 원한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가이사랴에서 온 이들은 덧붙여 자기들을 보낸 주인에 대해,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22절)”라고 소개한다. 고넬료가 로마 백부장인데 선한 사람이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임을 알려준 것이다. “의인”이라는 말은 그가 좋은 성품과 인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인이 아래 사람에게 이런 평가를 받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라는 표현으로 고넬료의 인품을 부연 설명한다. 2절에서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라고 말한 부분과 일치한다. 그런 인물이 ‘베드로를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한다’라고 말한다. 베드로는 그들을 집 안으로 불러들이고,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한다.
    
    
    
2. 가이사랴 고넬료의 집에서(23b~33절)
시몬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문 그들은 이튿날 베드로와 함께 가이사랴로 출발한다. 그런데 “욥바에서 온 어떤 형제들”이 함께 갔다고 덧붙인다. 이들은 욥에 사는 몇몇 믿는 신자들을 가리킨다. 사도행전 11:12에서 이들의 숫자가 여섯 명으로 밝혀진다. 본문에서는 별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베드로가 고넬료 가정에 복음을 선포하고 세례를 받는 모든 과정에서 목격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고넬료는 베드로 일행이 도착하기 전까지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고 기다린다. 베드로가 도착하자 급히 달려 나가 그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한다.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을 맞이하는 예의를 의미한다. 이전에 누구로부터도 이런 예우를 받아본 적이 없는 베드로는 당황하면서 “일어나세요. 저도 다 같은 사람입니다”라면서 고넬료의 예의를 사양한다.
    
그렇게 집 안으로 들어간 베드로는 고넬료의 친척과 친구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방인의 집에서 이런 사람들과 만나게 될 줄은 미처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대 사람으로서 이방 사람과 사귀거나 가까이하는 일이 불법이라는 것은 여러분도 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사람을 속되다거나 부정하다거나 하지 말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나를 부르러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반대하지 않고 왔습니다. 그런데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무슨 일로 나를 오라고 하셨습니까? (새번역_28~29절)” 라고 말한다. 헬라어 본문은 매우 정중하게 이 말을 하고 있음을 밝힌다.
    
베드로는 자기가 본 환상에서 특정 음식이 속되거나 깨끗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도(메데나)” 곧 “한 사람도” 부정하거나 불결하다고 여길 수 없음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즉, 베드로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보여주신 “음식”에 관한 환상에서 “사람”에 대한 새로운 적용 포인트를 발견한 것이다. 30~33절에 기록된 고넬료의 대답을 통해 “주님께서 당신에게 지시하신 모든 말씀을 들으려고, 다 같이 “하나님 앞에 모여 있다”라고 고백한다.
    
    
    
나는?
-베드로는 환상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때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당도한다. 또 베드로가 환상의 뜻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성령은 고넬료가 보낸 사람의 요구에 의심하지 말고 순종하라는 말을 들려주신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열린 마음으로 주의 뜻을 찾는 이에게 때로는 상황으로, 때로는 말씀으로 인도해 주신다.
    
-베드로는 말씀을 따라 한 걸음씩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간다. (17~23절). 보자기 환상이 단순하게 구약의 음식 규례에 대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지만 뜻을 확실히 알기까지 기다렸다. 또 하나님이 보내신 이들이 방문하였을 때 그들과 함께 거하면서 고넬료가 받은 환상에 대해서도 충분하게 들었다. 자기 경험이나 생각으로 판단하여 일을 행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을 인도해 가시는지에 집중한 것이다. 기억해야 한다. 한두 가지 되어진 일을 보고 마치 하나님의 뜻을 다 안 것처럼 서둘러 행동하지 말고 더 주의 깊게 말씀을 따라 한 걸음씩 걸어야 한다.
    
-베드로는 분명히 환상을 보았으나 그 환상이 의미하는 바를 알기 위하여 진지하게 골똘히 생각했다. 또다시 성령의 말씀을 듣고도 고넬료가 보낸 사람에게 그리고 고넬료에게도 자신을 부른 이유를 묻는다. 그렇다. 이처럼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계시나 환상이 그 자체로 늘 명확한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또 지성을 마비시키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고정관념의 변화를 요구하는 불편한 환상이었으나 외면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확한 뜻을 알기 위해 지적으로 씨름했고 그 과정에서 사고의 전환을 경험한다. 기억해야 한다. 단숨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신비적인 경험이나 말씀만을 요구하기보다는 편안한 영역을 떠나 열린 마음으로 깊이 사고하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베드로의 생각과 행동을 주관하셔서(19, 20, 28절)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의 문을 열어 주신다. 보자기 환상이 가르쳐주는 의미를 깨달으려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베드로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해야 할 일을 제시해 주신 것이다. 이는 마치 성령께서 친히 빌립에게 행할 일을 상세하게 가르쳐 주신 것과 같다(행 8:26, 29).
    
    
-유대인 베드로는 성령의 명령대로 욥바를 떠나 이방인 백부장이 기다리는 가이사랴까지 동행한다.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이 위법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접은 채 명령에 단순하게 순종한다. 거기에서 고넬료의 경배를 거절하고 그를 형제로 받아들인다. 베드로는 그렇게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다. 베드로는 천사보다 높은 사람으로 자신을 숭배하는 고넬료의 태도를 만류했다(25, 27절). 자신도 고넬료처럼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나를 지나치게 높이 평가할 때 나는 과연 어떻게 처신하고 있을까?
    
-고넬료 역시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에 따라 순종했다.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릴 만큼 그는 마음이 순전하고 가난하였다. 지배국의 장교가 피지배국의 백성에게 엎드려 절할 만큼 겸손했고 베드로를 통해 주실 하나님의 말씀을 구할 만큼 간절했다.
    
-말씀을 듣기 위한 고넬료의 경건한 자세가 두드러진다. 베드로가 전해줄 말씀에 대한 기대감으로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다 모아놓고 기다렸다. 즉, 베드로를 통해 하나님이 자신과 가족들에게 놀라운 말씀을 주실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말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비교해 보면 좋겠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의 교제를 금지하는 유대인의 규례와 관습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때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정서나 생각들을 뛰어넘어 순종할 것을 촉구하기도 한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기꺼이 내 생각을 거스를 수 있을까?
    
*건강한 기독교일수록 “생각이 깊다” 물론 이성이 만능은 아니다. 하지만 이성의 지혜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지혜를 풍성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신앙과 이성은 충돌하지 않는다는 거다. 아이러니하게도 생각하지 않는 신앙은 기독교를 미신화 시킨다. “생각하는 사람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을 외면할 때 오히려 하나님의 깊고 풍성한 지혜의 경륜이 막혀 버린다.
 
*베드로는 탁월한 설교가였다(2:14).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이었고(3:1), 주님의 능력을 힘있게 베풀기도 했었다(3:6, 9:34, 40). 그런 베드로가 환상까지 보았다. 그런데 그 환상을 보고 “깊은 생각(곰곰이)” 빠진다. 하나님은 이성을 초월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이성과 지성을 무시하시지 않으신다. 생각없는 신앙이 가져오는 맹옥적인 신앙 행태에 경종을 울리는 본문이다.
 
*주님이 꺠우쳐 주신 일에, 성령께서 주시는 생각을 하며 살아내리라.
 
 
 
    
    
*주님, 내게 편안하고 익숙한 관습이나 고정관념보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하는 믿음으로 살겠습니다.
*주님, 초자연적인 환상에 함몰되기보다 끈질기게 생각하고 확인하며 주님의 깨우쳐 주심을 사모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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