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성령께서 이르시고, 성령께서 보내시고, 성령께서 일하시고 [행 13:1-12]
 – 2024년 05월 28일
– 2024년 05월 28일 –
13:1-14:28은 바나바와 사울의 첫 번째 이방 선교를 다룬다. 누적 거리 약 140,300km에 이르는 대장정이었다. ‘누가’는 지역 방문과 그 과정에서 발생한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전도 여행을 묘사한다. 모든 여정은 성령께서 주도하신다.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이 그랬듯이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도 성령에 충만했고 성령의 명령에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사울과 바나바는 성령에 의해 선교사로 세워지고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그들을 선교사로 파송한다. 사울의 첫 번째 선교여행이다. 구브로를 방문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을 거쳐 루스드라까지 이어진다.
 
본문은 특히 안디옥 교회가 선교의 전초기지가 되는 과정을 알려준다. 안디옥 교회는 흉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부조를 보내는 교회가 될 만큼 성장했고 성숙했다. 그들의 성숙함은 교회의 핵심적인 지도자인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보내는 결단을 할 정도였다. ‘누가’는 이 일이 사울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약속(9:15~16)의 성취임을 보여준다. 누가가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선교사와 선교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1. 바나바와 사울의 선교사 파송(1~3절)
흥미로운 것은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와 교사가 존재했다는 언급이다. 바나바와 사울이 가운데 세 명의 인물을 감싸는 느낌이다. “니게르라고 이름하는 시므온, 구레네 출신 루기오, 그리고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 이다. 많은 학자가 “니게르”가 “흑인”을 뜻한 것으로 추정하고 시므온을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졌던 “구레네 시몬”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렇다면 알렉산더와 루포가 그의 아들들이 된다(롬 15:13). 구레네 출신 루기오는 안디옥 교회 초기 설립에 함께 한 인물일 것으로 추정하고(11:19), 여성인 마나엔은 헤롯과 어린 시절을 함께 자랐다. 그녀를 통해 누가가 기록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헤롯 일가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제공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예루살렘 교회가 사도들과 일곱 제자로 구성된 리더십을 갖췄듯이 이들이 안디옥 교회의 리더십들이었다.
 
그들의 존재감이 2절에서 드러난다. 안디옥 교회 안에 다양한 역할로 교회를 섬기는 이들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다양한 출신과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예배할 때 성령은 일하셨고 회중은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특히 하나님이 바울을 선교사로 부르신 것은 다메섹 도상에서 그에게 약속하신 말씀의 성취였다. ‘누가’는 이 일을 언급하면서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오로지 파송하는 교회의 순종과 택함 받은 바나바와 사울의 순종에 초점을 맞춘다.
 
안디옥 교회는 예배와 금식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흥미롭다. 2~3절에서 금식이 반복되어 나타나는데, 예배와 금식과 기도가 하나로 연결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본다. 안디옥 교회는 왜 금식했는가? 선지자와 교사들이 “주를 섬겨 금식할 때(2절)”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는 성령의 음성을 듣는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음성에 금식으로 반응하며 순종한다.
 
예배와 기도와 금식의 공통점은 자아의 죽음에 있다. 하나님 앞에서 자아의 죽음을 통해 교회는 하나 됨을 추구해야 한다. 지체 안에서 기능은 다양하나 단일의 지배적인 기능은 존재하지 않는다. 금식과 기도를 통해 교회는 철저하게 자신의 편견과 고집을 내려놓고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난 후에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하기로 하는 순종에 이른다.
 
 
 
2. 구브로에서의 선교(4~5절)
선교사로 세움 받은 바나바와 사울은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구브로로 향한다. 두 사람의 첫 목적지가 왜 구브로였는지에 대해서 누가는 침묵한다. 정황상 바나바의 고향이었기 때문일 수 있었다. 선교여행의 출발까지 철저하게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이루어졌다(4절).
 
또한 각 지역마다 유대인의 회당을 선교의 전략적인 출발점으로 선택한 모습은(5절) 바나바와 사울의 선교가 결코 즉흥적이거나 무계획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이후 이어지는 선교여행에서도 이 전략을 유지했다. 또한 “요한(마가)”을 수행원으로 둔 것은 선교여행이 매우 체계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증명한다.
 
“수행원(휘페레테스)”으로 번역된 단어는 “하인, 고용인(servant), 조수(helper), 보조자(assistant)”등의 의미가 있는데, 적어도 마가는 바나바와 사울과는 다른 책임 및 사역이 부여되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는 후일 바나바와 사울이 다투고 각자의 길을 선택하게 된 원인이 마가와 관련된 문제였음을 볼 때, 그에게 요청된 특별한 일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즉, 바나바와 사울은 철저하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면서도 선교에 대한 자신들의 구체적인 계획과 전략을 가지고 임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구브로는 이미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통해 그곳 출신들에 의해 복임이 전해진 곳이었다. 안디옥 교회도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 사람들의 전도로 이루어진 교회였다.
 
 
 
3. 바보에서의 선교(6~12절)
이때부터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참 선지자로 급부상하게 된다. ‘누가’는 7절까지는 이 선교여행의 지도자를 바나바로, 사울을 동역자의 위치에 두었다. 그런데 9절에 이르러 ‘누가’는 사울의 이름을 바울로 바꾸면서 그를 선교여행의 핵심으로 묘사한다. 이렇게 된 과정을 “바예수”라는 거짓 선지자이자 마술사와의 대결로 묘사한다. ‘누가’는 “바예수”라는 거짓 선지자이자 마술사와 사울의 대결을 부각하며 그가 어떻게 이방인 선교의 전면에 부상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이를 위해 ‘누가’는 “성령의 인도하심”이라는 방식을 택한다.
 
2절에서 성령에 의해 따로 세움을 받고, 4절은 성령의 보내심을 따라 구브로에서 살라미를 거쳐 바보로 왔음을 밝힌다. 그리고 바보에서 총독 서기오 바울에게 복음을 전한다. 바울은 성령이 충만하여 총독 서기오 바울의 믿음을 방해하려는 거짓 선지자요 마술사인 바예수와 대결한다. 이 대결은 성령이 충만한 바울의 승리로 끝난다. 바울은 바예수를 향해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10절)”라고 규정하지만, 그에 대한 바울의 심판은 바예수가 “얼마 동안”만 벌을 받는 것에 그친다. 결과적으로 총독 서기오 바울은 믿음을 갖게 된다.
 
서기오 바울은 어떻게 믿게 되었을까? 바울이 성령 충만하여 행한 기적 때문일까? 아니다 바울의 기적은 바울이 선포한 하나님 말씀의 부차적인 도구일 뿐이었다. 7절에서 서기오 바울은 이미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있어서 바나바와 바울에게 그 말씀을 듣기를 원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바나바와 바울은 매우 성의껏 복음을 전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마술사 ‘엘루마’였다. 그는 총독에게 조언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이었다. 총독이 회심하면 더는 생계를 이어가기가 어렵게 된다. 그래서 당연히 바울과 바나바를 대적하면서 총독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방해한 것이었다. 바울은 이런 상황에서 엘루마에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바울의 능력 행함은 하나님의 말씀이 효력 있게 전달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능력 대결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또한 엘루마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일시적이었던 것은 엘루마 역시 돌이키기를 기대하셨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자신의 어리석었던 지난날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특히 엘루마를 향해 눈이 어두워질 것을 선포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을 만났던 때를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런 정황은 바울이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방해하는 엘루마 역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땅끝으로 보냄을 받은 바나바와 사울이다.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주시고, 복음의 핍박자였던 바울이 복음을 위해 핍박을 받는 전도자로 부르셨다. 또한 성령은 안디옥을 이방 선교의 중심으로 삼으심으로써, 이제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땅끝까지 뻗어 나가게 하신다.
 
-이방지역인 구브로와 다소 출신 바나바와 각각 예루살렘과 고향 다소에서 사역하게 하시다가 안디옥 교회로 불러 1년 동안 동역하게 한 후 성숙해진 공동체의 후원을 받아 땅끝으로 떠나게 하신다. 계획하시고 준비하시며 파송하시는 것까지 성령은 모든 과정을 주관하셨다.
 
-출신과 인종적 배경과 신분이 다른 다양한 일꾼들이 모든 차이를 넘어 안디옥 교회 안에서 복음의 전진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같은 비전을 품고 있었다. 교회는 주를 섬겨 금식하는 중에 성령이 말씀하신 것을 듣고 곧장 순종한다. 겨우 1년밖에 안 된 교회가 가장 크게 의지하던 핵심 사역자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한 것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절대 순종이자 희생이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자신들의 유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었고 그들이 우선시했던 것은 자기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였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방해를 이기고 선포된다. 구브로의 “바보”라는 곳에서 총독에게 복음을 전하던 바울과 바나바는 “바예수”라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의 방해를 받는다. 성령에 충만한 바울이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이 사람 배후에 마귀가 있음을 분별하고 그를 눈멀게 하자 바예수는 총독을 인도하던 장에서 누군가에게 인도함을 받는 자로 전락해 버린다.
 
-사탄은 “바예수(구원의 아들)”를 통해 예수의 복음이 총독에게 들어가려는 것을 막으려 했으나 “하나님 아들의 영인 성령”이 일하시는 것을 본 총독은 복음을 받아들인다. 거짓과 방해 중에서도 성령은 실수함 없이 자기 백성을 부르신다. 이를 믿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안디옥 교회는 출신과 성분이 다양한 이방인 지도자들이 조화롭게 이끌었다(1~3절). 또 성장하는 중에도 주님을 경배하고 금식하며 기도하는 경건한 교회였다. 또한 교회를 이끌던 가장 유력한 두 지도자를 선교사로 보내라는 요구에 순종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신중하게 성령의 뜻을 확인한 후 파송하기로 한다. 이 모습을 보면 우리 공동체가 우리 교회의 명예와 성장보다 하나님의 명예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더 중요시하고 있는지 늘 돌아보아야 할 것을 깨닫는다.
 
*성령께서 안디옥 교회의 두 사역자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이방 선교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하시고 그들이 갈 곳도 정해주신다. 바나바는 이방지역 구브로 출신으로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11:24)” 지도자였고, 사울은 이방지역 다소 출신으로 이방 선교를 위해 부름을 받은 후(9:15), 오랜 기간 다메섹과 수리아와 길리기아(갈 1:21)를 거쳐 안디옥에서 사역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시고 곧바로 선교사로 보내신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준비시키셨다. 그리고 때가 되자 한참 성장 중인 교회의 핵심 사역자로 1년간 함께 사역하게 하신 후(11:26), 신실한 공동체의 지원을 받아 복음을 들고 땅끝으로 떠나게 하신다.
 
*하나님 나라의 계획(1:8)이 성령의 인도와 오랜 준비 과정, 하나님께 순종하는 공동체를 통해 성취되어 가고 있다. 교회의 일을 결정하는 모든 과정에서 우리도 성령의 인도를 구하고 분별하며 순종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성령께서 바울에게 충만하게 역사하셔서 마술사(박수)의 영적인 실체를 분별하게 하시고 영적 소경인 마술사를 육적인 소경이 되게 해달라는 요구를 들어주신다. 이를 본 총독은 말씀의 능력에 놀라서 예수님을 영접한다. 이처럼 성령은 이방 선교의 시작과 진행을 때마다 책임지신다. “땅끝까지” 그 복음이 편만해지는 순간까지 복음을 전하는 우리 공동체의 걸음도 인도하실 것이다.
 
 
 
*주님, 결국 성령께서 하나님 나라의 꿈을 이끌어 이루어 가고 계심을 봅니다. 성령의 감동이 임할 때 믿음으로 성령과 함께하겠습니다.
*주님, 인간적인 계산과 상황 판단을 넘어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분별해 주심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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