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은과 금 내게 없지만, 예수의 이름으로 [행 3:1-26]
 – 2024년 05월 06일
– 2024년 05월 06일 –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 시간에 성전에 오르다 나면서부터 못 걷던 한 사람을 만난다. 예수님께서 복음서에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알리는 기적들을 친히 행하셨던 것처럼, 두 제자는 적선을 기대하던 거지를 향해 “일어나 걸으라”고 명령하며 일으킨다. 기적적으로 치유함을 받은 이 사람은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 일을 지켜본 사람들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무리가 두 제자에게 몰려들면서 솔로몬의 행각에 모이게 되고 그때 베드로가 자연스럽게 두 번째 설교를 선포한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 가장 먼저 소개되는 이 기적은 예수님의 지상사역과 초대교회의 사역의 연속성을 보여주며, 나사렛 예수가 진정한 메시아 되심을 확증하는 사건이다. 누가는 이 치유사역을 통해 계속해서 진두지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보여준다. 
 
 
 
1.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거지를 고치다(1~10절)
앞 단락에서 누가는 사도들이 많은 기사와 표적을 나타냈다(2:43)고 언급했다. 본문은 그 대표적인 예를 소개한다. 단순히 치유 기적만을 소개하는 차원이 아니라 이 사건에 담긴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앞 단락은 베드로의 설교(행 3:11~26)와 뒷 단락은 사도들의 구속과 석방 이야기(4:1~22)를 배치했다. 이 치유기사는 당시 초대교회에서는 자주 회자되었던 이야기였을 가능성이 크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갔다.’ 유대교의 공식 기도 시간은 아침 번제와 함께, 오후 번제(제9시_오후 3시)와 함께, 그리고 ‘해 질 때’이다. 일반적으로 아침 번제와 오후 번제가 회중의 기도 시간으로 이어졌다.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적선은 특별히 칭송받을 행위로 여겨졌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거지는 평소와 같이 성전으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구걸했을 것이고 마침 지나가는 베드로와 요한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두 사도가 무언가를 줄 것처럼 ‘우리를 보라’라고 했고, ‘은과 금은 내게 없다. 하지만(그런데) 네게 줄 것이 있다.’ 라고 말하고 이윽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는 선포 직후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그를 일으키자 그의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어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했다(7~8절) 이는 그의 신체적 장애가 즉각 치유 되었다는 의미다. 이는 이사야 35:6의 예언이 제자들을 통해서도 성취된 것이다. 물론 예수님의 기적과 제자들의 기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메시아 시대가 도래했음을 분명하게 증거하였다.  
 
누가는 이 사건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먼저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면서 여러 가지 기적을 몸소 보여준다. 이를 통해 예수님의 지상사역과 초대교회 사역의 연속성의 이야기를 보여주려고 했다. 사도행전의 이야기는 예수의 지상 사역과 메시지가 제자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복음서에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임했음을 보여주는 기적들이 동일하게 예수의 이름의 능력을 의지하는 제자들을 통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 기적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나사렛 예수가 진정한 메시아 되심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또한 본문은 현대의 독자들에게 초대교회의 역동적인 모습을 잘 보여준다. 특히 메시아 예수를 통해 이 땅에 하나님 나라 통치가 임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이 세상은 은과 금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당연하게도 은과 금이 지배하는 세상은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하여 있다. 교회 안에서도 황금만능주의가 휩쓸고 있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악한 영들은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까지도 맘몬주의로 유혹한다. 오늘날 교회 안에 돈이 우상이 된지 얼마나 오래인가? 사실 베드로와 요한에게 실제로 은과 금이 없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행 2:44~45). 하지만 그들은 은과 금보다 훨씬 좋은 것인 하나님 나라 복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복음을 외치는 자에게는 복음을 따라 살아갈 용기와 담대함이 필요하다. 
 
 
 
2.베드로의 기적 사건 설명(11~21절)
치유 기적에서 곧바로 베드로의 설교 장면으로 전환된다. 치유함을 받은 자가 두 사도를 붙잡았고 모든 백성이 솔로몬의 행각에 모인다(11절). 베드로는 곧이어 이런 기적이 일어난 이유를 그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한다. 베드로는 진정한 기적의 출처로 백성의 시선을 안내한다. 
 
먼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다”고 선포한다(13~15절). 이사야 52:13를 통해 고난 받는 종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성취되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베드로는 빌라도가 풀어 주려고 했으나 이스라엘 백성이 거부했음을 언급한다. 예수를 잡아준 유대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13, 14절), 의로운 예수와 바라바를 대조하며, 예수를 거부한 유대인들과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증인인 제자들을 대조한다(15절). 그리고 치유 받은 이가 온전해 질 수 있었던 것은 예수의 이름 때문이었음을 선언한다(16절). 그의 능력은 예수의 이름을 믿는 믿음을 통해 나타났다. 
 
17절부터 베드로는 유대인들을 설득하고 복음을 전한다.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인 것은 그들의 무지 때문이었다(17절). 그런데 하나님은 메시아의 죽음을 구역성경에서 이미 예언하셨고 이미 그 일을 성취하셨다(18절). 그러므로 베드로는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촉구한다(19~20절). 
 
 
 
3.베드로의 불순종에 대한 경고(22~26절)
베드로는 회개의 메시지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 구약의 여러 선지자들을 인용한다. 모세와 사무엘 이후 다른 선지자들이 선포한 말씀과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예언이었다는 것이다(22~23절). 베드로는 신명기 18:15~19에 나오는 모세의 말을 인용했다. 이는 신명기 인용구절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이방 족속처럼 점술에 의지하지 말 것을 명령하는 문맥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려 할 때에는 선지자를 세워서(모세를 세웠던 것처럼) 하시겠다는 의미이다. 
 
베드로는 당시 유대인들이 “한 선지자”에 천착하여 특정 선지자를 고대하던 고정 관념에 그 선지자가 바로 예수임을 확신하며 논증한다. 모세뿐만 아니라 사무엘로부터 그 후의 모든 선지자들도 예수의 때를 내다봤다는 것이다. 
 
결국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복음이 이방인들에게로 향할 것이라는 경고이다. 베드로는 예수를 통해 얻게 되는 아브라함 언약의 축복이 죄의 길에서 돌아옴으로써 얻게 되는 영적 축복이라고 결론 내린다. 
 
 
 
나는?
-못 걷는 걸인 같은 성전이 보인다. 성전 미문 곁에서 구걸하는 마흔 살의 걷지 못하는 걸인은 동전 몇 푼으로 자신의 삶을 연명하였다. 성전은 그에게 더는 구원도 베풀 수 없는 무능한 종교 체제일 뿐이었다. 늘 성전 앞에서 구걸했으나 정작 부정하여 성전 안으로는 들어가지도 못했다. 구원받은 자가(선택받은 백성이) 들어가는 곳이라고 여긴 성전은 그 문 앞에서 구걸하는 영혼을 책임질 수 없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름은 달랐다. 베드로는 성전이 무능하여 할 수 없었던 치유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권세로 해냈다. 걸을 수 없는 걸인은 은과 금을 요청했지만, 예수는 사도들을 통해 그에게 필요한 것을 주셨다. 부활하신 주님의 권능으로 구걸하던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예수가 왕으로 계신 하나님 나라는 사망을 이긴 치유의 나라요, 건물 성전이 아니라 예수 안에 참되 생명의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말씀을 의지하여 오늘날의 교회를 바라보면 교회는 은과 금을 쌓아놓고 주는 곳이 아니다. 교회는 죽은 자를 살리는 역동성 있는 생명의 공동체이다. 
 
-기적의 치유를 경험한 앉은뱅이는 일어나 뛰면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은과 금이 줄 수 없었던 기쁨이고 감동이었다. 평생을 주저앉아 살던 그는 예수의 이름의 권세로 일어나 찬양하며 뛰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유대인들은 그저 놀랐을 뿐이었다. 
 
-자신들이 성전을 오가며 늘상 보아왔던 앉은뱅이 걸인이 일어나 걸으며 찬양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반응이 나올 수 있을까? 그들은 습관적으로 성전 기도에 몰두할 뿐, 메시아의 도래를 그저 입술로만 갈망할 뿐,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를 알아보지 못할 만큼 마음이 어두워질 때로 어두워져서 무디고 무딘 딱딱한 마음만 덩그러니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놀라운 치유의 기적의 현장을 보았음에도 ….
 
 
-은과 금을 구걸하였던 걸인은 이제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았다. 그들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은 것이다. 성전의 제자가 아니라 예수의 제자가 되기를 선택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의 권세로 몸만 나은 것이 아니라 영적인 굶주림을 느낄 줄 아는 사람으로 변화했다. 
 
-한편 베드로는 못 걷는 걸인을 고친 것을 본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이 아니라 예수에게 쏠리도록 오직 예수를 바라볼 것을 선포한다. 자신이 영광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할 기회로 바꾼 것이다. 주님을 만나면 사람이 이렇게 변한다. 자기를 어필하는 것보다 예수를 어필하는 것이 먼저인 사람이 된다.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한 바른 메시지를 전한다. 그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었고 믿었던 것과 달리 예수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은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죽기까지 순종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한다. 또, 우리는 그를 무고하게 죽였으나 하나님은 그의 순종을 의로 여기셔서 그를 살리시고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삼으셨다고 담담하게 가르친다. 
 
-치유의 기적은 예수가 생명의 주로 살아계심을 증명한 사건이며, 오직 그분을 향한 믿음만이 치유의 길이요 생명을 얻는 길임을 보여준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이 세상 힘을 의지하지 않고 예수를 믿는 미음의 역사를 많이 드러낼 때 세상도 예수의 왕 되심을 인정할 것이다. 
 
-이전에는 몰라서 예수를 못 박았으나 회개하고 돌이켜 예수를 구주와 왕으로 영접할 때 새로운 인생이 열릴 것이다. 이제 주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통치하시다가 만물을 회복하러 오실 것이다. 
 
 
 
*주님, 나의 주님이시기에 그저 찬양합니다. 
*주님, 주님은 내게 은과 금보다 더 귀한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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