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게도냐 활동 이후 베뢰아를 거쳐 뱃길을 통해 아테네에 도착한 바울은 고린도 지역에 도착했다. 고린도에서 바울은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한다.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유대인들의 계속되는 압박과 비방 속에서도 회심자들이 계속 일어났다.
바울의 선교는 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큰데, 바울의 선교가 매우 전략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도시들에는 회당이 있을 확률이 높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할 수 있었다. 당시 아덴의 인구는 약 1만 명 정도로 추정되고, 고린도에는 최대 75만에 이르는 인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린도는 향락적인 상업의 중심 도시였다. 바울은 꽤 길게 고린도에 머무는데, 약 1년 6개월 동안 머물러 하나님 말씀을 가르쳤다.
1.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한다(1~3절).
바울은 베뢰아에서 혼자 고린도에 도착한다. 고린도라는 도시는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그리스의 광채, 영광이라고까지 불렸다. 하지만 동방 종교와 그리스 종교가 만나는 십자로 지점에 있었기에 종교적 혼합주의 양상도 뚜렷했다. 항구 도시가 갖는 특성과 아프로디테 신전에서 행해지는 성전 노예들의 성적인 제사 행위들은 이 도시가 문란한 곳으로 알려지게 했다.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의 사역은 성공적이었지만 아덴에서부터는 홀로 사역을 감당해야 했다. 적대적인 유대인들의 거센 반대와 핍박을 감수하며 외로움을 감내하고 있었다. 행 17:15은 바울이 실라와 디모데를 속히 만나고 싶다고 했었다. 그만큼 바울 스스로 서로 격려하고 위로가 될 동역자가 필요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선교팀을 대신하여 하나님은 바울과 함께 할 새로운 믿음의 동역자들을 예비해 주셨다(2절). 그들도 글라우디오의 추방령에 따라 고향 로마로부터 쫓겨난 사람들이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라는 부부였다. 바울과 이 부부의 직업이 같았다(3절). “생업”이라고 번역된 “스케노포이오스”는 “천막 제조 및 피혁 노동자”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유대인들의 경구중에 “누구든지 아들에게 기술을 가르치지 않는 자는 도적이 되게 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아마도 바울은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있을 때 천막 만드는 기술을 습득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바울은 직업의 환경을 선교의 장소로 인식했다. 노동의 현장에 사람을 만나 대화하고 설득하고 토론하였다. 동시에 생계를 직접 해결함으로써 아무에게도 속박받지 않고 자유롭게 사역하였다. “일을 하니(에르가제토)”로 번역된 단어는 미완료 형태인데, 바울이 부지런히 지속해서 일을 계속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고린도에서 바울을 위해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위해 바울을 준비해 주셨다.
2. 고린도에서의 사역(4~11절)
고린도에서의 사역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들과 헬라인 들을 권면”하며 복음 전파에 힘썼다(4절). 즉, 평일에는 작업장에서 노동자로 사람을 만났고, 안식일에는 회당을 찾아 유대인과 하나님 경외자를 상대로 토론과 설득을 통해 복음을 전했다. 바울의 이런 활동은 실라와 디모데 도착한 이후로도 지속되었다.
바울의 사역을 기록하면서 ‘누가’는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라고 “말씀”이 의인화하여 바울을 사로잡아 증언하게 하였다고 밝힌다. 새번역은 “오직 말씀을 전하는 일에만 힘을 쓰고(5절)”라고 번역한다. 이는 두 동역자가 도착하자 노동을 중단하고 선교에 전념한 것으로 번역했다. 하지만 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주로 “붙잡히다”의 의미로 사용되는 것으로 보면 바울의 선교가 갖는 신적인 기원과 복음에의 집중력(집착)을 강하게 표현하는 방식으로 보는 것도 타당하다.
바울에게 적개심을 품은 유대인들은 예수가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바로 그 “그리스도(메시아)”가 되신다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오히려 바울을 비방하며 대적했다. “비방하다(블레스페메인)”라는 비난하며 모욕적 언사를 내뱉는 것을 뜻한다. 바울의 심정이 어땠을까? 심한 좌절과 모욕감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의 이러한 반응에 대해 바울은 단호하게 대처하였다. 이전에 비시디아 안디옥에서(행 13:51) 하듯이 옷을 털어버리며 그들에게 심판이 이를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상황을 통해 바울은 이제 자신이 이방인들에게로 가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6절). 얼마나 확고한지,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라는 선언에서 선명하게 읽힌다. 바울은 거부하고 거절하는 유대인들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강력하게 지적한다.
이후 바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의 집에 들어간다(7절). 그의 집은 회당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8절은 회당장 그리스보의 집안이 예수를 믿은 것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고린도에서의 사역이 적잖게 성공을 거두고 있음을 알린다. 주님께서도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10절)”라는 말씀으로 이를 증명하신다. ‘누가’는 이와 같은 기록을 통해 고린도에서의 사역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특히 회당장 그리스보의 회심은 사도행전 안에서 매우 특별하다. 사도행전 5:34~39에서 등장하는 가말리엘을 제외하고, 사도행전에서 유대 지도자 중에서 바울의 복음을 우호적으로 받아들인 경우는 그가 유일하다. 참고로 바울은 고린도전서 1:14과 16절에서 그가 그리스보, 가이오, 스데바나의 집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는 기록과도 본문의 상황이 일치한다.
9~11절은 바울이 고린도에서 겪을 수난을 염두에 둔 기록이다. 바울의 고난을 미리 준비시키기 위해 주님이 환상 중에 나타나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울과 관련하여 ‘누가’는 “환상”이라는 표현을 세 번 사용하는데, 사도행전 16:9~10의 드로아에서의 환상에 이어 본문에서 마지막으로 사용되었다. 드로아에서의 환상이 답보상태에 있었던 바울 일행의 선교 여행을 위로하고 다음 진로로 인도하는 방법으로 환상이 사용되었다. 본문에서도 주님은 이 성에 하나님의 백성이 많다고 위로하려는 방법으로 환상을 사용하셨다. 그러니 그가 당할 고난이 많을 것이란 의미일 수도 있고, 그들을 돕기 위해 길게 체류해야 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누가’는 이와 관련하여 바울이 1년 6개월을 고린도에서 머물렀다고 구체적으로 기록한다.
주님은 환상을 통해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9절)”라고 명령하신다. 이는 극심한 반대가 일어날 것을 짐작하게 한다. 말씀 선포자가 침묵을 강요받는 상황을 예측하게 한다. 하지만 복음을 끝까지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이 지키셔서 그를 해할 자가 없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동행하여 주심이 담대한 선교를 가능하게 한다. 또한 주를 믿는 고린도인 들이 많아서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하려면, 역경 속에서도 고린도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바울은 주님의 말씀대로 1년 6개월을 머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하게 가르쳤다.
이런 모습을 통해 복음 선포, 또는 선교 행위가 말씀 교육인 것을 보여준다. 물론 대상이 유대인들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선교가 포함하는 교육적인 의미를 살펴보게 하는 중요한 기록이다.
나는?
-바울은 혼자가 아니었다. 혈혈단신 복음의 불모지이자 음행의 도시인 고린도에 내려온 바울에게 유대인 그리스도인 부부인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예비해 놓으셨다. 이어 마게도냐에 있던 실라와 디모데도 합류하게 하신다. 로마 추방령에 따라 고린도까지 내려온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처럼 황제의 박해와 추방마저 하나님의 인사이동을 대행하는 역할이 되게 하신 것이다. 서슬 퍼런 살기가 여전한 대작자들의 공격과 비방에 시달리는 바울에게 하나님은 임마누엘의 약속을 주시며(10절) 위로하시고 용기를 주신다. 그리고 바울을 통해 구원하신 많은 백성이 있음도, 그들을 위해 그를 안전하게 지켜주실 것임도 약속하신다.
-그렇다 바울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랬기에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동안이나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며 사역할 수 있었다.
-바울이 어떻게 고린도에서 사역하였는가? 그것은 철저하게 말씀에 얽매여 사역했음을 잊으면 안 된다. 바울은 복음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마땅히 대가를 받을 권리가 있음에도 거절한 채 천막을 짓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서 복음을 전한다.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가 합류하자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담대하게 예수를 그리스도로 증거하였다.
-유대인들이 대적하고 비방하자 바울은 주님이 가르치신 대로 이방인에게로 향한다. 이제껏 고대하던 메시아가 바로 예수라는 증거를 듣고 유대인들은 거절한 것이다. 거절한 그들에게 미련 없이 돌아서고 회당 옆에 있는 이방인 디도 유스도의 집을 새로운 선교본부로 정하여 복음을 전한다. 회당장과 그의 온 집이 주를 믿고 수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음에 이르렀다. 우리는 열매를 만들어 내도록 부름을 받은 자들이 아니다. 전하라고 하는 대상에게 전하라고 맡겨 주신 것을 에누리 없이 전하면 그만이다.
*좋은 동역자들이 함께 있음은 물론이고, 함께 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격려가 있는 고린도에서 바울은 18개월을 사역했다. 나도 그랬다. 좋은 동역자들이 있었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분명했던 지난 15년을 전주온누리에서 사역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리고 지난 2020년부터는 역시 좋은 동역자들이 있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분명한 더온누리교회에서 벌써 5년째 사역하고 있다. 고린도에서의 18개월을 보내는 바울의 모습에서 더온누리에서 사역을 감당하는 내가 붙잡아야 할 모습들이 보인다.
*그것은 철저하게 말씀대로 사역하는 것이다. 바울은 고난과 핍박을 당하면서도 일관되게 증거한 것이, 바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이었다(5절). 나도 이곳에서 일관되게 사역해야 할 것이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하나님 나라 복음이 아니겠는가? 아무리 다원적이고 상대화된 이 세상이 싫어하는 말일지라도 말씀 사역자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전해야 할 말씀은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겠는가!
*또한 바울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자 하나님께 처분을 맡기고 이방인에게로 나아간다. 이에 하나님은 회당 바로 옆에서 모이는 가정 교회를 허락하셨다. 거기에 회당장까지 회심하고, 수많은 사람이 믿고 세례를 받는 부흥을 주셨다. 인간적으로 볼 때 복음에 더 가까이 있는 것 같은 유대인들은 거절했지만, 더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하나님은 더 풍성하게 더 놀라운 방법으로 하나님 나라 복음의 결실을 맺혀 주셨다. 더온누리교회 공동체에도 이와 같은 함께 역사하여 주심이 분명히 있음을 고백한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위로하시고 사명을 일깨워 함께 하시겠다고 격려하셨다. 그럼에도 고린도인 들이 더 많이 주께 돌아올수록 유대인의 위협과 협박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에게 안전을 보장하시고 또 아직 구원받아야 할 주의 백성들이 많으니 더 머물러야 한다고 일러주신다. 그리고 18개월 사역을 무사히 감당하게 하신다. 주님의 인도하심의 타이밍은 늘 정확하다. 시의적절한 격려와 확신을 주시는 환상을 통해 바울의 선교사역은 주저함이 없었다.
*나에게도 이와 같은 하나님의 분명하고도 시의적절한 사인들이 사역의 여정을 여기까지 인도함을 받게 하였다. 앞으로도 각종 사역의 시작과 맺음의 모든 일에 대해 더 편하고 안전한 상황을 고려하여 결정하기보다 주님의 뜻을 여쭤서 사역하리라. 나의 가고 서는 것을 하나님이 결정하시도록!
*주님, 좋은 동역자들이 있어 오늘 제가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음을 깨닫습니다.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그러나 주님이 늘 함께 해주셨기에 더욱 이 길을 묵묵히 걸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주와 함께 이 길을 걷겠습니다.
*주님, 내가 결정하며 걷기보다 주님께서 선명하게 보여주시는 대로, 이끌어 주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