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아볼로와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 [행 18:24-19:7]
 – 2024년 06월 10일
– 2024년 06월 10일 –
에베소에 당도한 아볼로가 회당에서 담대하게 예수에 대하여 선포한다. 복음에 사로잡혀 열정에 불타올랐던 아볼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 의해 탁월한 선교사로 거듭나게 된다. 바울에게 또 한 명의 든든한 동역자가 생겼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성령께서 새로운 동역자들을 계속 세워 나가신다. 바울의 선교여행도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잠시 윗지방을 다녀온 바울이 어떤 제자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그들은 성령을 경험하게 된다.
    
고린도에서 바울과 함께했던 아굴라 부부가 에베소에 남아 1년 넘도록 사역할 때, 알렉산드리아 출신 아볼로가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만나 복음을 정확하게 배운다. 그렇게 아굴라 부부에 의해 바울의 훌륭한 동역자 아볼로가 세워진다. 아볼로가 고린도로의 파송을 자처하자 그들은 기꺼이 편지를 써주며 추천한다. 당시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떠난 이후 다양한 문제와 도전에 직면하여 여러 어려운 가운데 있었다. 아볼로는 고린도 교회를 견고하게 세우는 위로와 격려의 사역을 펼쳤다. 사역자들 간의 상호 유기적인 연대는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가는 동력이 된다. 에베소에서의 아볼로 이야기는 이후 펼쳐질 바울의 에베소 사역의 예비 단계 역할을 한다.
    
사도행전 18:23에서 바울의 3차 선교여행이 시작되었음을 언급하고 24~28절은 19:1~7의 바울의 에베소 사역을 설명하기 위한 아볼로를 소개하는 부분이다. 이렇게 아볼로 이야기를 언급하는 이유는 누가가 19:1~7에 등장하는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문학적 장치를 한 것이다. 아볼로 이야기를 통해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1.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아볼로(18:24~28).
‘누가’는 바울이 갈라디아와 브루기아를 돌며 제자들의 믿음을 굳게 하였다는 요약 보고를 통해 3차 선교여행의 시작을 알렸다(23절). 그 후 에베소에서 새로운 인물인 아볼로를 등장시킨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19:1~7에 등장하는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도록 사전에 돕는다.
    
아볼로는 매우 특이한 사람이었다. 소위 세속적인 성공의 요인을 많이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24절에서는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고 묘사한다. “언변이 좋다(로기오스)”는 것은 “배운 것이 많은, 학식이 풍성한”이라는 의미가 있으며, 수사학에 능했다는 뜻이다. “성경에 능하다”라는 것도 넓고 깊고 예민한 성경해석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는 뜻이다. 주의할 것은 아볼로의 성경해석은 “구약성경”이 아닌 25절의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히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는 자”라는 소개를 통해 볼 때 유대교적인 성경해석이 아닌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구약을 통찰하는 능력을 가리키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 아볼로는 지혜와 열정을 겸비한 보기 드문 일꾼이었다. 그리스 학문의 중심지였던 알렉산드리아에서 교육받았다면 철학과 수사학에 두각을 나타냈을 것이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했는데, 그가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25절). 그것은 아마도 세례 요한 계열의 선교사들에게 복음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점에서 정확한 가르침일 수 있었으나 브리스길라 부부와 바울의 교정(19:4)이 필요할 만큼 심각한 허물도 가지고 있었다. 한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바울이 시리아로 떠날 때 에베소에 머물며 에베소 교회는 더욱더 공고한 토대를 갖추게 되었고 이런 기초 위에 바울의 방문을 다시 받을 수 있었다(행 19:1).
 
아굴라 부부는 아볼로를 집으로 데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전했다(26절). “풀어 전하다”는 표현은 사도들의 “가르치다, 선포하다”와 달리 “버리다, 밖에 놓다, 설명하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이는 부부가 아볼로에게 해준 것은 공적인 가르침이나 설교가 아니라 사적인 설명임을 보여준다. 아볼로는 그전에,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아크리보스)” 말했는데,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그를 데려다가 “더 자세히, 혹은 더 정확하게(아크리베스테론)” 가르쳐서 그가 온전한 가르침을 전할 수 있도록 했다(26절).
    
이후 아볼로는 형제들이 써준 편지를 가지고 아가야 지방, 고린도 교회에 도착하여 사역을 감당한다(19:1). 고린도는 이미 바울이 1년 6개월이나 머물면서 사역했던 곳이기 때문에 그곳에는 이미 믿는 자들이 많은 상태였다. 에베소에서 잘 준비된 아볼로는 바울이 없는 고린도에서 그의 공백을 충분히 메울 만큼 사역을 잘 감당하였다. 고린도전서 3:6에서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라고 인정할 정도였다. 아볼로는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행 18:27)” 준 동역자였다. “믿은”의 헬라어 용법은 현재 완료 분사형이므로 아볼로의 사역이 이미 잘 믿고 있는 성도들을 행한 양육 사역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2. 에베소 어떤 제자들의 성령 체험(19:1~7).
에베소와 고린도에서 교회가 든든히 서 나가고 있을 때 바울의 본격적인 3차 선교여행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목적지는 에베소이다. 에베소는 2차 선교여행 막바지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한 곳이다(18:21). ‘누가’는 이 상황을 설명하면서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었을 때(1절)”라고 언급하며 윗 지방(북쪽 길)을 택하여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났음을 밝힌다. 그들이 어떤 제자인지는 사도행전 19:3~4를 통해 “요한의 제자”들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고 성령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아볼로와 비슷한 배경을 가진 제자들임을 알 수 있다. 아볼로 또한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다고 했다(25절). 그런데 둘의 다른 점도 명확했는데, 에베소 제자들은 메시아를 몰랐으나 아볼로는 요한의 메시지 핵심이 메시아인 것을 알고 있었다. 또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은 성령에 대하여 전혀 몰랐으나, 아볼로는 구약적인 의미의 성령은 알고 있었다. 이런 차이점은 아볼로와 달리 어떤 제자들이 가진 복음의 이해가 가르침을 통해 교정이 가능한 수준이 아니었음을 드러낸다(4절).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근본적으로 예수를 인격적으로 경험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따라서 “제자”라고 언급했으나 사실상 구원받은 신자들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바울은 “요한이 믿으라고 권한 그분이 바로 예수라고 가르친 것이다(4절). 이는 바울이 처음부터 복음을 새롭게 전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은 바울로부터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 또한 바울이 안수함으로써 그들이 성령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왔다.
    
바울이 그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2절) 라고 질문한 것은 요한의 세례와는 별도로 다른 세례를 받았느냐는 질문이 아니다. 이는 “너희가 진정한 신자가 되었느냐?”라는 질문에 가깝다. 당시 예수를 믿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명확한 길은 성령의 선물 수여에 달려 있었다(행 2:17~18, 38; 10:45~47; 11:15~16). 그런데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은 성령이란 이름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대답한다(2절). 이런 묘사를 통해 그들이 이방인이고, 또 세례 요한의 메시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며, 에베소에서 왔지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의 도움도 받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바울이 그들에게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라고 묻자, 요한의 세례만 받았다고 대답한다(3절). 그러자 바울은 메시아가 베푸는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쳐 준다(4절). 예수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는 성령 세례는 불가능할 뿐 아니라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고 질문한 것은 사실상 너희가 예수를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는 뜻이 된다. 요한의 물세례와 회개의 세례를 완성하는 것이 예수에 대한 믿음임을 일깨운 것이다. 이에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5절). 이어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니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였으며 그들이 방언을 하고 예언하였다(6절).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인들에게 안수할 때 성령이 내렸던 것과 같은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는 믿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의 선물이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에게 내렸음을 의미한다.
    
이 사건은 바울의 선교 사역 가운데 처음으로 믿는 사람들이 성령을 받을 것을 기록한 것이다. 믿는 사람들이 성령을 받는 기록이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의 경우로 기록된 것은 이때 처음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미 무수하게 있었지만,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볼로의 경우와 함께 언급된 것은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겠다는 약속이 임하므로 더욱 온전하게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세례받고 성령을 받은 그들의 수가 “열두 사람쯤(7절)” 되었다는 언급이 무슨 의미인지는 선명하지 않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이 바울을 도와 에베소 교회의 복음화에 크게 이바지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부족한 사람을 채워준 사람들이 있었다. 아볼로는 언변이 좋고 (구약)성경에도 능통했다. 예수에 관한 도를 알고는 안 만큼 열심히 가르치는 일꾼이기도 했다. 하지만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고 예수를 믿은 후 받는 성령의 세례는 알지 못했다. 이는 예수가 성령으로 마음의 할례를 받는 새 언약의 시대를 여신 메시아요 왕이심을 몰랐다는 뜻이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아볼로에게 모자란 것이 있음을 알고는 은밀하게 불러 하나님의 도를 정확하게 풀어 설명해 준다.
    
-에베소에서 이미 영향력 있는 교사인 그의 권위를 존중하면서도 그가 모자란 것에 무작정 눈감지 않았다.
    
-한편 아볼로는 이미 높은 식견과 열심을 겸비한 선생이요 성경에 정통한 학자였지만, 갓 에베소에 온 낯선 부부에게 겸손하게 마음을 열고 배운다. 배움에 있어 자기 부정의 겸손과 진리를 향한 온유한 열정, 그리고 공동체의 따뜻한 격려와 신뢰 속에서 아볼로는 변화되고 성숙하여 갔다. 그리하여 구약성경으로 믿는 자들, 특히 고린도의 유대인들을 전도하는 일에 아름답게 쓰임을 받는다(고전 1:12; 3:4~6).
    
-가르치는 자는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을 인정하고 늘 배우기를 즐거워해야 한다. 그때 다른 지체를 통하여 더 깊고 오묘한 진리의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이들의 은사를 시기하거나 깎아내리지 않고, 진심으로 인정하고 격려하여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기회를 내어주는 삶이 되어야겠다. 나와 우리 공동체는 이렇게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에 모두 열려 있는 공동체인가?
    
-바울이 에베소에 내려와 요한이 베푸는 예비적인 세례만을 알고 성령이 누구이신 줄도 모르는 어떤 제자들을 만난다. 그들에게 세례 요한이 소개한 예수와 그를 믿음으로 받는 성령 세례를 가르쳐 준다. 바울이 그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안수하자 성령이 임하시고 제자들이 방언하고 예언하기 시작한다.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이 아볼로가 요한의 세례만을 알고 있을 때 가르친 것을 받아들인 이들이라고 가정한다면, 아볼로에게서 배운 성경 지식이라는 장작더미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성령 세례라는 불로 태운 것이다.
    
    
*아볼로의 설교는 예수님에 “관한” 것은 자세히 말했지만, 예수님을 메시아로 전하지 못한 것과 같았다(24~25절). 그는 예수님을 세례 요한처럼 구약에서 기대한 미래의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 또 한 명의 예언자로 이해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전하더라도 구원을 주시는 그분을 인격적으로 나의 왕으로 모시며 살지 않는다면 무익하기만 한 지식일 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그런 아볼로를 데려다가 구약을 풀어 설명하며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심으로 이미 출범한 “하나님 나라의 도”를 가르쳐 준다(26절). 아볼로가 이미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그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주었다. 스스로 성경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여 그 수준에 머물지 말고 더 깊이 알기 위해 더욱 겸손하게 배우겠다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성령께서 언제 어떻게 가르쳐주실지 모르니 사모하며 기다려야 하지 않겠는가!     
    
*에베소 교회는 고린도 형제들에게도 아볼로를 잘 영접해 달라고 부탁한다(27~28절). 이처럼 한 사람을 지도자로 세워주고 후원하는 섬세한 사랑과 배려가 있었기에, 아볼로가 고린도에서도 유대인에게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을 당당히 선포할 수 있었다. 지도자는 한순간에 스스로 나올 수 없다. 우리 공동체는 다음 세대 지도자와 일꾼들을 발굴하고 가르치며 양육하는데, 섬세하게 감당하고 있는가? 인적인 R&D를 얼마나 성실하게 세워가고 있는가?
    
*에베소에 합류한 바울은 아볼로처럼 요한의 세례만 알고 성령의 세례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주 되심과 왕 되심, 그리고 메시아 되심을 모르는 열두 사람쯤 되는 사람을 가르쳤다. 그리고 그들에게 세례를 주어 방언과 예언 등을 통해 성령의 역사를 직접 경험하게 한다(19:1~17). 이런 경험을 통해 그들은 예수님과 성령 세례에 관한 세례 요한과 바울의 가르침을 확증 받았을 것이다.
    
*이들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2년 넘게 사역할 때 교회의 든든한 일꾼 역할을 했을 것이다. 성경을 바로 아는 것이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세워가는 첩경이다.   
    
    
    
*주님, 지식으로 믿는 것에서 성령께서 풀어주시는 은혜를 더욱 풍성하게 누리고 싶습니다.
*주님, 부족한 부분을 알게 하셨을 때, 더욱 겸손하게 배우고 채워서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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