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로마 압송_유라굴라 광풍 속에서 [행 27:1-20]
 – 2024년 06월 27일
– 2024년 06월 27일 –
이제 바울은 그에게 호의적인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의 손에 넘겨져 로마로 향하는 배에 오르게 된다. 가이사랴를 출항한 배는 이튿날 시돈에 도착한다. 바울은 백부장의 특별한 호의를 받아 그곳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방문하고 식탁 교체를 나눈다. 시돈을 떠난 배는 맞바람을 맞는 어려운 기후 조건에서 항해하다가 무라에 도착하였고 여러 날 만에 미항에 도착한다. 바울은 기후가 좋지 않음에도 항해를 강해하려는 선장과 선주에게 출항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 그러나 바울의 경고를 무시하고 출항한 배는 갑자기 유라굴라로는 광풍을 만나게 되고 표류하기 시작한다. 선원들은 광풍을 만나 남쪽으로 떠밀려 가고, 선원들은 광풍과 사투를 벌이지만 속수무책이었다.
    
    
    
1. 로마로 압송(1~8절)
2년의 수감 끝에 마침내 바울이 로마로 이송된다. 27장부터 상당히 자세하게 압송 과정을 소개한다. ‘누가’는 이 모든 압송 과정에 함께 했다. 1절에 기록된 “우리”라는 표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 이를 통해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가지만, 함께 한 일행들이 있었다는 것도 짐작게 한다. 그리고 바울의 로마행 항해 이야기는 당시 일반인들이 지중해를 어떻게 항해했는지에 대한 통찰도 제공한다. 일반적으로 모든 배들은 지중해의 해변을 따라 항해하였고, 가능한 겨울철에 항해 하는 것을 피했다.
    
‘누가’는 이 여정에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였다고 밝힌다(2절). 그는 사도행전 19장의 에베소 소동 때 등장했고 20장에서는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는 일행으로 등장했다. 그가 로마까지 동행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빌레몬서와 골로새서의 기록을 통해 보면 바울과 함께 로마로 갔을 가능성도 있겠다(빌 1:24; 골 4:10). 바울의 로마행에는 적어도 누가와 아리스다고가 함께 했다. 이렇게 가이사랴를 출발한 ‘아드라뭇데노 배’에 올라 이튿날 시돈을 거쳐 지나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시에 도착한다(5절). 이 여정은 서방 사본(필사자에 의해 추가된 내용이 들어있는 사본)에서는 15일 걸렸다고 기록한다. 이렇게 가이사랴에서 무라까지의 첫 번째 항해가 마무리 되었다.
    
무라에서 알렉산드리아 배에 승선하여 출발하게 된다. 당시 로마에게는 이집트가 곡식 창고와 같았다. 그런데 당시 항해술은 맞바람을 맞부딪치며 항해할 기술이 부족했기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북쪽으로 항해하여 무라에 도착하여 소아시아 해변을 따라 항해하는 항로를 이용하곤 했다. 바울 일행이 올라탄 배는 로마에 곡식을 수송하는 배였다. 그런데 알렉산드리아 배는 강한 북서풍으로 인해 항해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들은 수일 만에 미항이라는 항구에 겨우 들어가 된다(8절).
    
    
    
2. 강행한 항해 중 유라굴로(광풍)을 만남(9~20절)
그동안 항해가 많이 지연되었고 계속해서 날씨가 좋지 못해서 미항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즉, 항해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나버린 것이다. 그것을 ‘누가’는 “금식하는 절기”로 표현한다. 유대력으로는 “대 속죄일”을 가리키는데, 9월에서 10월이 해당한다. 당시에는 9월 15일 이후부터는 항해가 위험하다고 기록하고 있고, 11월 11일부터 이듬해 3월 10일까지는 항해가 완전히 중단되었다고 한다. ‘누가’는 이 시점에서 바울이 개입하는 모습을 기록한다(9~10절). 단순히 시기적으로 항해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상식선의 이야기 인지, 아니면 일종의 선견지명을 가진 예언자적인 발언인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단순히 어떤 막연한 가능성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 있을 재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것으로 보면(10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21~26절의 발언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1절에서는 결국 선장과 선주의 의견을 따르기로 백부장은 결정한다.
    
이렇게 항해를 강행한 이유는 미항이라는 항구가 겨울을 나기에 좋지 않은 곳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그래서 겨울나기에 훨씬 더 나은 80km 떨어진 뵈닉스로 출항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기에 다수가 무리한 항해를 결정하는 데 동의했다. 잔잔한 남풍을 타고 해안을 따라 하루 이내면 도착할 거리이기 때문이다. 순한 남풍이 불자 곧 출항했고 그들은 무사히 뵈닉스에 도착할 줄 알았다. 하지만 바람의 방향이 곧바로 바뀔 것으로 생각도 못 했다.
    
섬에 있는 산으로부터 광풍이 강하게 불어닥쳤다. 당시의 배는 광풍을 적절하게 다룰 만한 기술이 없었다. 그래서 광풍에 따라 배가 움직이도록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다. 바람을 따라 떠밀려 가다 보니 배는 그레데 섬에서 약 37km 거리에 있는 가우다라는 작은 섬에 도달한다. 선원들은 거룻배(배의 뒷부분에 달고 다니는 배, 광풍이 심할 경우 이 거룻배가 다른 배와 충돌할 위험이 있어서))를 갑판 위로 끌어 올리고 배가 부서지지 않게 밧줄을 이용하여 선체를 동여맸다. 그리고 스르디스(모래톱)에 배가 박힐까 두려워서 닻을 내리고 그냥 계속 표류할 수밖에 없었다. 선원들이 이 모든 수고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배가 계속해서 풍랑에 밀렸다. 큰 풍랑으로 배 안으로 계속 물이 들어와서인지 배는 점점 무거워졌다. 그들은 하는 수 없이 배에 실은 화물을 바다에 버려서 배를 가볍게 할 수밖에 없었다. 사흘째 되는 날도 배를 가볍게 하는 작업은 계속되었다. 이제는 배의 기구까지도 바다에 내던지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17~19절). 이 기구는 추측하기로 배 돛대의 하활(돛의 맨 아래에 가로로 댄 나무, 거의 배 길이만큼 했다)이었을 것이다.
    
20절은 아주 절망적인 상황을 묘사하는데,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라고 했다. 당시에는 태양이나 별을 봐야 위치를 확인할 수 있지만 그들에게는 그럴 능력도 없었고 완전히 희망의 줄을 놓을 수밖에 없는 처참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나는?
-“로마에서 증거하리라(23:11)”는 약속을 이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결코 바울이 기대하거나 원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바울을 제국의 중심지로 점점 가까이 데리고 가신다. 내 삶의 진로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방황할 때, 상황이나 사람에 의해 좌우될 때,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우리는 내 인생의 배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항구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신뢰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모든 과정은 내가 직접 하나하나마다 통제하려고 하거나 내가 바라는 여건을 조성하려고 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만 일하시고 설명하실 수 있는 더 많은 여백을 남겨둘 때 신비로우신 하나님의 손길로 채워질 것이다. 그렇기에 결과 때문에 교만하여지지 않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찬송해 드릴 수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길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방식으로 인도될 것이다.
    
-바울의 로마행에 누가와 아리스다고가 동행해 준다. 또 백부장의 배려로 시돈에서는 믿음의 형제들과 교제할 수 있었다. 거칠고 긴 항해에 그들은 바울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나는 누구의 항해에 동승해주고 있는가? 또 내 고달픈 인생의 항해에 함께 해주고 있는 지체들은 있는가?
    
-바울은 순탄하지만은 않은 길을 순종하며 나아간다. 바울은 비록 자유인이 아니라 감시와 통제를 받아야 하는 미결수 신분과 화물선에 승선해야 했지만, 백부장 율리오를 통해 동역자들과 함께 항해하고 두로에서는 친구들의 대접을 받는 호의를 누렸다. 그러나 바울을 실은 배이고 복음으로 세상의 중심을 뒤집어놓으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품고 떠난 배였으나 바람이 쉽게 전진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를 통해 깨닫게 되는 메시지가 있다. 아무리 대의명분이 분명한 의로운 사역일지라도 역풍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풍만이 늘 하나님의 인도의 표지는 아니다. 바울에게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낯설지 않은 경험이었다. 지난 세월 복음을 전하러 다니는 동안 이 바다와 바람을 숱하게 만나보았다. 바울의 부름을 받은 이후의 삶은 고난의 바람을 뚫고 하나님이 열어주신 길을 따라 항해한 인생이었다.
    
-바울은 항해를 자제하는 금식 절기가 끝나는 때(9~10월)이기에, 다가오는 위험한 시기(11~3월)에 항해를 지속하면 화물뿐 아니라 사람의 생명도 위태로울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백부장 율리오는 바울의 말은 멀리하고 무리한 화물 수송으로 큰 돈을 벌려는 마음이 앞선 선주의 말을 더 신뢰하여 항해를 강행하였다.
    
-선장은 항해를 만류하는 바울의 말을 묵살하고 선주의 뜻을 따라 항해를 결행했다. 게다가 더 많은 사람이 원하는 대로 뵈닉스에서 겨울을 나려고 미항을 떠난다. 순풍을 만났을 때만 해도 자신들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머잖아 광풍이 기다리고 있는 줄은 몰랐다. 유력자의 말이나 다수의 견해, 혹은 순조로운 환경이 늘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다. 가장 좋은 때를 넘긴 듯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확증될 때까지 기다려본 적이 있는가? 내가 성급하게 결정하고서는 광풍을 만난 책임을 하나님께 돌린 적은 없었는가?
    
-바울이 탄 배가 “유라굴라”라는 광풍을 만난다. 배는 가려던 방향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표류하기 시작한다. 간신히 구명정(거룻배)을 붙잡아 본선에 고정해 놓았지만, 아무도 배를 통제할 수 없었다. 돛을 내린 채 광풍이 이끄는 대로 놔둘 뿐이었다. 배의 무게를 줄이려고 짐을 버리고 배의 기구까지 버렸지만, 해와 별을 가린 하늘은 열리지 않았다. 선원들은 패배감과 공포에 사로잡혀 먹는 것도 그만둔 채 다가오는 죽음만 기다리고 있었다.
    
-광풍은 인생의 주도권이 내게 없음을 알려준다. 내가 붙잡고 쌓아둔 것이 위기 때는 내게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도리어 나를 해롭게 하기에 다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우리 삶이 태풍의 한가운데 있는 듯 앞이 캄캄하고 하늘도 어두운 이때야말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다 맡기라”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메가폰이 아니겠나!
    
    
    
    
*주님, 광풍 속에서 어떤 구원의 여망도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주님, 나의 걸음에 주님이 동행하여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거친 바람이 내 앞길을 가로막는 고달픈 항해의 인생이라 할지라도 주의 뜻을 이루는 길로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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