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가 여리고 근처에 이르렀을 때 여호와의 군대 대장과 대면한다. 1장에서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여호수아에게 명령을 내리며 용기를 북돋아 주신 하나님께서 전령을 보내신 것이다. 여호와의 군대 대장은 여호수아에게 “신을 벗을 것”을 요구한다. 이런 행동을 요구하는 것은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종으로 전투에 참여하게 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군대 대장을 통해 여리고 정복을 위한 구체적인 지시를 전달하신다.
- 여호와의 군대 대장과 마주친 여호수아(13~15절).
이 단락은 앞뒤 문맥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다. 요단강을 기적적으로 건넌 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여리고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었다(13절). 그리고 누구의 편인가를 묻는 여호수아에게 자신은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노라고 대답하고(14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15절)”라고 선포한다. 이에 여호수아는 신발을 벗는다. 이 장면은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여호와를 만난 장면과 병행을 이룬다(출 3장). 특히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라는 문장은 히브리어 원문이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런 표기는 두 장면에서 출현한 신적인 존재가 본질상 동일한 존재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이 곧 거룩한 장소가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두 장면 모두는 “네 신을 벗으라.”라고 명령한다.
이 장면은 앞으로 펼쳐질 6장의 여리고 전쟁 직전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이 전쟁에 개입하고 있음을 간파하도록 하기 위함인 듯하다. 여호와는 전쟁의 주로서 여리고, 나아가 가나안 정복 전쟁을 이끄신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민족들을 이끄시겠다고 확인해 주신 것이다. 기억해야 한다. 가나안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이다. 앞으로 시작될 여리고 전쟁과 이후의 가나안 정복을 진두지휘하실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다.
- 여리고 성 함락을 위한 기이한 명령(6:1~5)
여리고 성문은 철저히 봉쇄되고 철통같은 수비로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비 중이었다. 여리고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정탐꾼이 첩보활동을 하다가 도주했었기 때문에 전쟁이 임박한 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그들은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명성을 듣고 넋이 나간 상태였다. 여호와께서는 “넘겼다”라는 완료 동사를 처음 사용하여 여호수아에게 이미 여리고는 함락된 것이라고 말씀 하시면서 여리고 공략을 위한 전투 수칙을 말씀하신다.
1) 모든 군사가 매일 성 주위를 한 바퀴 도는데, 엿새 동안 반복한다. 2) 일곱 명의 제사장이 양각 나팔을 불며 언약궤 앞에서 행진한다(8절). 3) 선봉대가 일곱 명의 제사장보다 앞에, 즉 선두에 선다(7, 9절). 4) 나머지 군사는 침묵하면서 언약궤 뒤를 따른다. 5) 일곱째 날에는 성을 일곱 바퀴 돈 뒤 양각 나팔을 길게 분다. 6) 이때 군사들 모두가 큰 소리를 외친다. 7) 성벽이 무너지는 동시에 올라가서 점령한다.
전투 수칙이라고 하기에는 상식적이지 않지만, 이러한 비군사적인 행진은 여리고 성이 통상적인 전쟁방식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능력으로 정복된다는 것을 교훈한다. 이것은 여호와의 전쟁이며 백성 편에서는 믿음의 전쟁이다. 이것은 앞으로 모든 가나안 전쟁의 기본 원리가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리고 전쟁을 통해 이 교훈을 깊이 새겨야 한다. 이후 다른 가나안 남부지역 성들을 정복할 때 자주 모범으로 등장한다(수 8:2; 10:1, 28, 30).
여리고 성 전투 방식에 거듭 등장하는 숫자 “7”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곱째 날은 일곱 바퀴 성을 돈다. 7명의 제사장’이다. 성경에서 “7”은 완전수로 흔히 일의 성취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이러한 숫자 “7”의 배열은 여리고 성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완전히 정복될 것을 암시한다.
- 여호수아의 명령(6~7절)
여호수아는 여호와께 받은 여리고 전투 수칙을 제사장들과 백성들에게 하달한다. 제사장들의 임무가 둘로 나뉘어 먼저 주어진다. 일곱 명의 제사장이 선봉대와 함께 선두에서 나팔을 불며 행진한다. 그 뒤를 제사장들이 운반하는 법궤가 따른다.
군사들의 행진 대열도 둘로 나뉜다. 먼저 중무장한 선봉대가 나팔수 제사장보다 앞장서 맨 선두에 선다. 다음 본문에서 나타나지만, 이 선봉대는 요단 동편의 두 지파 반 자파의 4만 군사다. 나머지 군사들은 후방 부대로 법궤 뒤에 법궤를 따라간다.
나는?
-하나님은 군대를 거느리고 계신다. 야곱이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 하나님의 군대를 만난다. 그것을 기념하여 그 장소를 ‘마하나임’이라 불렀다(창 32:2). 여호와의 군대는 거룩한 전쟁을 수행한다. 거룩한 전쟁은 말씀으로 세상을 이기는 것이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 처음 함락하려는 여리고 도성에 대해서 거룩한 전쟁이 선포되기 위해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 앞에 선 것이다.
-할례와 유월절 준수 후 갑자기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등장한 것이 문맥의 흐름은 어색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후 6장부터 전개될 가나안 정복 전쟁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려는 의도다.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 하나님께서 앞서 싸우시는 전쟁이 되어야 함을 보여준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싸워주신다. 여호와의 군대 대장을 여호수아에게 보내 주셔서 이를 확인 시킨다. 하나님의 군대가 이 전쟁에 참전하여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전쟁이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거룩해야 한다. 여호수아에게 신발을 벗으라고 한 것도(15절), 전투에 앞서 이스라엘 백성이 할례를 행하고(3~8절), 유월절을 지킨 것도(10~11절) 같은 이유에서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 편인지 묻기 전에 우리가 하나님 편에 있는지 물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워주시기를 바라기 전에, 우리 안에 거룩하지 못한 것들과 싸워야 함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거룩하지 못할 때 여호와의 군대 대장의 칼끝이 적이 아닌 우리를 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지킨 이스라엘 앞에 선 여호와의 군대 대장의 모습은 가나안 정복 전쟁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전쟁은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전쟁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여호와의 군대 대장은 여호수아에게 신을 벗으라고 명령한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도 순종해야 할 지도자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총사령관 되어 가나안 전쟁을 수행하실 때 여호수아는 그분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전쟁이기에 여호수아부터 거룩해야 하고 백성도 거룩해야 한다. 전쟁의 승패가 거룩함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대 대장의 공격 대상은 가나안일 뿐 아니라 불순종하는 이스라엘도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예배는 순종으로 이어져야 한다. 여호수아는 자기 앞에 선 여호와의 군대 대장 앞에 즉각 엎드려 절을 하고 그의 말대로 신을 벗는다. 신을 벗는 행위는 하나님의 충성된 종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예배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라면 그다음 반응은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충성하는 것이다. 예배는 많이 드리지만, 순종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나님은 크신 능력으로 승리를 약속하신다. 하나님은 두려움 속에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근 여리고 성을 여호수아의 손에 넘겨 주시며 여리고 성을 매일 한바퀴씩 6일간 돌고, 마지막 7일째는 일곱 바퀴를 돌라고 하신다. 이러한 명령은 일반적인 전쟁방식과 거리가 먼 것으로 승패가 이스라엘이 소유한 무기나 전략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순종을 통해 요단강을 건넌 것처럼(4:22), 여리고 성도 순종을 통해 함락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잘 이해되지 않아 때로 터무니없다고 여겨질 때일수록 더욱 순종의 도전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여리고 성은 이스라엘에 대한 두려움으로 굳게 닫혀 있었다. 그 성을 열고 허무는 방법은 언약궤를 앞세운 이스라엘의 행진과 나팔 소리와 함성이었다. 전쟁의 통례를 깨뜨리는 방식이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혼돈의 세력인 넘실대는 요단강이 이 명령에 굴복하는 것을 이미 보았다. 승리는 명령의 합리성이 아니라 명령의 절대성에 순종하는 데서 나온다.
*여리고 성은 가나안땅의 입구다. 여호와께서는 그 성을 함락하는 방법을 통해 매우 중요한 상징적인 메시지를 던지신다. 성경에서 완전성을 의미하는 “일곱(7)”의 반복적인 언급(일곱 제사장, 일곱 양각 나팔, 칠 일째, 일곱 바퀴, 일곱 바퀴째) 을 통해 하나님의 완전하신 통치를 드러내고, 일곱 양각 나팔을 일곱째 날, 일곱째 바퀴를 돌 때 길게 부르라는 것은 레위기 25:8~10에서 희년의 선포를 알리는 나팔 소리를 언급하듯 가나안 땅에 하나님의 완전한 회복을 선포하는 의미가 있다. 또, 7일 간의 행군 과정은 하나님의 창조를 빗대는데, 가나안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그곳에서 억압받고 억눌린 자들을 해방하시는 하나님의 새 일을 알리는 것으로 본다. 그렇기에 일곱째 날, 일곱 번째 바퀴를 돌 때 길게 불리는 양각 나팔 소리에 맞춰 함성을 지르는 것은 이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는 예배(삼하 6:15)가 된다. 가나안 전쟁은 “온 땅의 주(3:11)”이신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억압으로부터 해방하고(눅 4:18~19) 완전한 하나님 나라로 새롭게 창조하시는 역사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 일의 목격자로, 참여자로 부르신 것이다(매일 성경 해설 인용).
*그러므로 하나님의 군대인 이스라엘은 가나안 전쟁에 임할 때 오직 이 일의 주권자가 되신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주님, 주님이 통치하시는 이 땅의 삶을 주님 앞에서 신발을 벗듯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겠습니다. 나의 고집과 주관과 지식의 신발을 벗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겠습니다.
*주님, 주님 명령의 합리성을 따지지 않고 말씀 따라 절대적으로 순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