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백부장 고넬료 사건 4 _ 예루살렘 교회에 보고하다! [행 11:1-18]
 – 2024년 05월 25일
– 2024년 05월 25일 –
이방인 회심 소식이 예루살렘 교회에 전해지자, 유대인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이들이 베드로의 행동을 비난하고 나선다. 이에 베드로가 이 일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한다. 먼저 하나님이 자기에게 보여주신 환상과 자기를 찾아온 이방인들을 차별하지 말고 따라가라는 성령의 음성을 들은 것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서 일어난 성령 사건을 이야기한다. 이에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베드로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이 단락은 고넬료의 회심 이야기를 이방인의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으로 재조명하는 역할을 한다. 베드로의 해명을 듣고 유대인 신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러나 이 사건이 내포하고 있는 깊은 함의를 그들이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다. ‘누가’는 이 중대한 쟁점들을 당장 본 단락에서 모두 다루지는 않는다. 다만 다음 단락에서 소개되듯이 이방인을 향한 복음 전도는 새롭게 세워진 안디옥 교회가 맡게 된다. 베드로의 설득력 있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인 선교에 열정을 보였는지는 미지수이다.
    
    
    
1. 예루살렘에 회심 소식이 전해지다(1~3절)
고넬료의 회심 사건을 예루살렘 교회에 보고한다. 고넬료를 비롯한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은 것에 대한 소문이 “유대 전역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에게 퍼졌다. ‘누가’는 이 소식이 사도들과 일반 신자인 형제들 사이에 전해졌다는 것과 예루살렘 교회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 흩어져 있는 신자들에게까지 전해졌다는 것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에 어떻게 반응하였는가에 따라 앞으로 전개될 초대교회의 신학적 논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는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라고 기록하며 11장을 시작한다. ‘누가’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표현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회심했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2~3절은 이방인들의 회심에 대한 소문이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돌아가기 이전에 먼저 도착했음을 알 수 있다. “할례자들”은 보수적인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고 그들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문제 삼기보다는 “무할례자들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라는 것을 비난한다. 수백 년 동안 이어온 관습은 이방인이 회심했다고 하여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동일하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한 식탁에서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결정은 조금 더 기다려야만 했다. 이 문제는 갈라디아서 2:11~14에서도 기록된 것처럼 베드로 자신이 범한 실수에서 잘 드러난다. 특히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이런 반응에는 스데반이 이미 겪은 것처럼 자신들도 비난과 박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을 것이다.
    
    
    
2. 베드로가 설명하다(4~18절)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비난을 접한 베드로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로 설명한다. 고넬료의 환상 이야기보다 자신이 본 환상부터 시작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4~10절까지 사도행전 10장에서 이미 기술한 내용을 압축적으로 서술한다. 다만 거기서 생략되었던 한두 가지의 내용이 추가된다. 5~6절에서 훨씬 더 생생한 언어로 하늘로부터 내려온 큰 보자기에 들어 있는 내용물을 묘사한다.
    
세 번의 환상이 나타난 직후 가이사랴에서 세 사람이 도착하고 베드로는 성령으로부터 아무런 차별을 두지 말고 가라는 음성을 듣는다. 이에 욥바에 사는 여섯 명의 신자와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간다. 13절은 고넬료가 어떻게 천사를 보게 되었는지를 언급하지만, 이 시점에서 주의 사자가 고넬료에게 약속한 말씀의 내용을 알게 된다. 바로 “너와 네 온 집이 구원받을 말씀”이었다.
    
15절에서 베드로는 자신이 말을 시작할 때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였다고 말한다. 10장에서는 어느 정도 설교를 했을 때 임한 것처럼 기록이 되어있다. 이는 베드로가 자신이 전하려고 한 메시지를 다 전하기도 전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였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면서 매우 중요한 발언을 하는데, “처음(오순절)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했다”라고 발언한다. 이는 이방인들의 성령 체험을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과 비교하고 있다. 그러므로 누가의 이런 기록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사건은 이방인들을 위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이방인이라고 해서 이류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똑같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한 베드로는 이 사건이 예수께서 사도행전 1:5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고 말한다. “그때 나는 ‘요한은 물로 침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성령으로 침례를 받을 것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새번역_16절).” 베드로는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은 사건은 성령 세례이며 이는 복음을 믿을 때 일어나는 것으로 확신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하신 약속의 성취로 일어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방인들이 성령 세례를 받았기에 물세례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방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음을 보고한 것이다.
    
    
    
나는?
-유대인 할례자들은 이방인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말과 베드로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는 소문을 모두 들었다. 그런데 그 둘 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하신 일인 것은 몰랐다. 도리어 그들은 이방인이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할례를 받고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기에(갈 2:11~14), 이방인들의 회심 자체를 의심했을지 모른다.
    
-내가 고수하는 신학적인 전제나 전통이 도리어 말씀이나 하나님의 역사를 올바로 보는 데 장애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 앞에 이런 막힌 사고가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늘 성령의 충만한 은혜 안에 거해야 하리라. 특히, 성령께서 올바로 듣게 하시고 깨우쳐 주시는 은혜를 신뢰하며 들어야 할 것이다.
    
-베드로는 동료들의 이의 제기에 차분하게 대응했다. 그간 자신과 고넬료 사이에 벌어진 일을 자세하게 밝혀준다. 그러고는 그 일이 성령께서 주도하신 일이었음을 설명한다. 환상으로 들려주신 말씀을 통해 속된 것과 정결한 것 사이의 경계가 무너졌고, 고넬료의 청에 따라 의심하지 말고 그 집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고넬료도 천사의 지시로 베드로를 청하였다. 때로 많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길이라고 해도, 주님이 나를 인도하신 역사를 간증할 수 있다면 흔들리지 않는 확신으로 걸어갈 수 있으리라.
    
-하나님 나라 제자는 현실적인 이해관계나, 전통적인 관습에 따라 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개입과 인도하심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여 성령의 이끄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삶을 산다.
    
-베드로는 고넬료 집에 내려주신 성령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받은 오순절 성령과 똑같은 선물이었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세례 요한이 약속한 성령의 사례이며, 요한과 베드로를 통해 사마리아에 내려주신 것과 같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가 약속하신 성령임이 틀림없다. 이방인이 성령 세례를 받은 것은 보혜사 성령을 통해 왕이신 예수님의 주권이 이방인에게까지 확장되는 새 언약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베드로는 이런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이끄심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고백한다. 베드로의 설명을 듣고 할례자들은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하나님이 이방인에게도 생명 주는 회개를 주셨음을 인정한다.
    
-공동체 안에 이견이 생겼을 때, 영적인 흐름을 잘 짚어내는 지도자의 통찰과 판단력, 인습과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단호한 순종, 서로의 진심을 믿어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런 공동체를 이루어 가야 하리라.
    
    
*예루살렘 교회의 할례자들은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베드로가 그들과 교제를 나눈 것에 대해 정죄하고 비난했다(1~3절). 그들은 단지 소문으로만 들었을 때, 베드로의 복음 전도사역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은 것에 더 관심을 가진 것이었다.
    
*사탄의 속박 아래 놓여 있던 영혼들이 놓임을 받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율법의 규정 하나에 더 얽매이는 모습이다. 우리 안에 있는 그릇된 편견과 고정관념들 때문에 복음 전도의 진보를 방해하고 있지는 않는지, 곰곰이 살펴보아야 한다. 할례자들처럼 복음 전도의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늘 성찰해야 할 것이다.
    
*이방인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시기 위해 모든 상황에 주권적으로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큰일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베드로를 간섭하셔서 그가 종교적이고 관습적인 편견에 갇히지 않고 뛰어넘도록 환상을 통해 도우셨고, 또 말씀하신 대로 상황을 이끄셔서 준비된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다. 이방인 고넬료의 삶에도 구체적으로 개입하시고 그가 베드로를 만나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하셨다.
    
*이 모든 일은 사람이 주도면밀하게 계획하여 움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역사하셔서 이뤄진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막을 수는 없다. 우리의 구원도 이처럼 주권적인 간섭으로 역사해 오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다.
    
*베드로의 설명에 할례자들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깨닫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기억하자, 판단하기 전에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먼저 통찰하며 기다릴 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볼 수 있는 영광을 누리게 하실 것이다.
 
 
*초대교회도 문제는 늘 있었다. 예루살렘교회가 처음에는 구제하는 일로 헬라파 유대인이 불평을 쏟아냈고 이제는 복음이 이방인에게 들어가 세례까지 준 것과 베드로가 그들과 함께 식사했다는 것을 문제제기 한다. 이때까지 교회 공동체가 유대교로부터 완전히 분리되기 전이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면전에 대고 불평하는 이들을 향해 베드로는 그들을 꾸짖거나 나무라지 않고 자신이 체험한 환상과 그 결과를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그러자 불평하던 이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방인에게도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을 인정하며 찬양했다. 베드로의 리더십이 돋보인다.
 
*나도 베드로의 이런 모습을 유의하여 배워야 겠다. 만일 베드로가 자신이 경험한 것을 절대화하여 문제 제기하는 이들에게 면박을 주었다면 초대교회는 금새 깨졌을 것이다. 우뢰의 아들이라 일컬어졌던 베드로의 섬세하고 자상한 리더십이 돋보인다. 물론 그렇게 다듬어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역사는 말할 나위 없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만큼 다양성이 풍부한 집단은 드물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다양하게 만드셨으니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문제는 다양성을 조화롭게 이끄는 능력이 새삼 중요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서로 다른 생각과 이해를 조화롭게 이끌어 더 유익하고 바람직한 길로 이끌어 주는 것이 좋은 리더십이 아니겠나… 본문의 베드로에게서 이런 여유롭고 섬세한 리더십을 볼 수 있어 기쁘다. 나도 이런 리더십을 배양해야 하리라.
    
    
    
*주님, 소문에 휘둘려 정죄와 판단을 먼저 하기보다,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신뢰하고 통찰하며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경험하는 복된 걸음이 되게 하소서.
*주님, 성급함이 나를 부끄럽게 할 수 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주님, 어떤 상황이든 섬세하고 자상한 리더십으로 발휘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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