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비시디아 안디옥 _ 변수를 넘어, 약속의 성취되신 예수를 선포하다 [행 13:13-31]
 – 2024년 05월 29일
– 2024년 05월 29일 –
바보에서 성공적인 사역을 마친 후 바울과 바나바는 버가를 거쳐 비시디아 안디옥에 도착한다. 여기에서 회당을 찾아가 설교할 기회를 얻게 되고 바울은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이심을 가르친다. 그리고 메시아의 오심은 성경에 기록된 약속의 성취임을 설교한다.
    
사도행전에서 설교는 복음의 핵심을 전달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24개의 설교 혹은 연설이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는데, 전체 분량의 약 1/4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가말리엘, 데메드리오, 에베소 서기장, 베스도와 같은 사람들의 설교를 제외하면 순수하게 설교로 볼 수 있는 것은 20개이다. 베드로가 9회, 바울이 9회, 스데반과 야고보의 설교가 각 1회이다. 본문은 ‘누가’가 요약하여 제시하는 바울의 첫 번째 설교이다. 13:16~41까지 상당히 긴 분량을 차지한다.
    
    
    
1. 비디시아 안디옥에 이르다(13~15절)
바보에서의 사역을 마친 바울과 그 일행은 배를 타고 북쪽 밤빌리아에 도착한다. 밤빌리아는 바울의 고향 다소와 인접한 지역이다. 밤빌리아의 항구 도시 잇달리아에서 북쪽으로 약 20km 들어간 내륙 도시 “버가(페르게)”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마가 요한으로 인한 선교팀 내부의 어려움이 있었다.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라는 누가의 표현(13절)은 안디옥에서 출발한 선교팀 안에서 리더십의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안디옥을 출발할 때 “바나바와 사울”에서 시작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거쳐 이제는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로 표현한다. 이는 13절의 마가 요한이 선교팀에서 이탈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사도행전 15:37~38에서 바울은 마가의 이탈을 심각한 문제로 보았지만, 바나바는 큰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그가 어떤 이유로 이탈하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몇 가지 이유를 추론하지만, 그저 추론일 뿐이다. 우선 그간 여행이 고단했고, 다음 가는 곳 비디시아 안디옥은 타우르스 산맥을 넘어야 하기에 젊은 청년의 의지에 한계가 왔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수리아의 수도였던 안디옥에서의 화려한 도시에서 삶을 꿈꾸며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왔지만, 별안간 1년 만에 전도 여행에 차출되어 고된 여정을 감당하기에 무리가 왔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13절에 삼촌 바나바가 아닌 바울이 주도권을 잡은 것과 관련하여 바나바와 바울 사이의 리더십의 변화에 강한 불만을 느꼈으리라 추정한다. 하지만 이런 이유이든 저런 이유이든 마가 요한의 행동은 매우 무책임했다. 이 사건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두 번째 전도 여행을 나설 때 마가 요한의 동행 여부로 인해 바울과 바나바가 심히 다투고 갈라서게 된다(15:37~41). 그럼에도 훗날 마가 요한은 바울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동역자가 된다(딤후 4:11; 몬 1:24).
    
마가의 중도 탈락에도 불구하고 선교팀의 동요는 없었다. 이 일 후 누가 선교팀의 지도자가 되는 문제에도 이 팀은 매우 자유로운 것을 짐작하게 된다. 팀원의 포기, 리더십의 변화에도 선교팀은 그들에게 부여된 사명을 잊지 않는다. 그들은 기꺼이 다른 가치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바보에서부터 버가까지는 약 180km에 이르는 여정을 소화했고, 버가로부터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기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160km에 이른다. 해발 1,097m에 있는 도시였다. 그러므로 선교팀이 이동한 거리는 훨씬 길었고 많은 수고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던 여정이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비시디아 안디옥에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약 2천 명쯤 살았다고 서술한다.
    
바울과 그 일행이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을 통해 바울의 선교 전략을 엿볼 수 있다. 회당이 있는 도시에서는 먼저 회당을 방문하여 그곳 사람들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다.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 지도자들은 바울과 그 일행이 무슨 권면의 말을 할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럼에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렇게 호의적으로 받아들일 때까지 바울과 그 일행들이 기울였을 노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고 청중의 마음을 열기 위해 신중하고 겸손한 태도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2. 회당에서 바울의 설교 1(16~31절)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첫 설교를 시작했다. 16절은 서론이다. 곧장 설교의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고 이미 파악한 회당의 구성원들을 파악한 것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여, 내 말을 들으십시오(새번역_16절)” 이방 도시의 회당에 모인 이들이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도 있음을 파악하고 구성원 모두를 아우르며 설교를 시작했다.
    
    
17~25절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간추려 선포한다. 출애굽 사건을 시작으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기를 거부한 사사 시대 및 다윗과의 약속을 언급한다. 그러면서 예수가 하나님 약속의 성취이며, 세례 요한에 의해 메시아로 확인되었다고 전한다. 그의 설교는 베드로와 스데반의 설교와 비교해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강조점을 둔다. 단순하게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언급하는 듯하지만, 하나님이 패역한 이스라엘을 어떻게 사랑하시고 인도하셨는지를 설명하는데 많은 관심을 쏟는다.
    
이 단락에서 가장 핵심적인 표현은 “큰 권능으로(17절)”이다. 직역하면 “높은 팔로”이다. 이 표현을 통해 출애굽으로부터 다윗 왕조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어떻게 이스라엘을 인도해 오셨는지를 알게 한다. “큰 권능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하나님은 참으신다(18절). 그리고 대적을 멸하시고(19절), 땅과 사사들과 왕을 주신다(19~21절). 최종적으로 이스라엘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다(22절). 이 단락 동사들의 주어는 모두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의 생존 배경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자기 백성을 위해 행하시는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이끄셨다. 바울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정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며, 이는 하나님의 약속 성취라고 선포한다.
    
    
26~30절을 통해 바울은 하나님이 약속을 성취하시기 위해 보내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백성들이 알아보지 못했다고 책망한다. 바울은 말씀을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자들을 거침없이 책망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예수를 다시 사리시고 말씀으로 약속한 구원을 성취하셨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무지와 완고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약속대로 모든 것을 이루었음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인간의 방해와 훼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 약속은 성취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최종적인 승리의 영광스러움을 30절을 통해 표현한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부활은 인류의 모든 죄악에 대해 하나님이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셨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부활은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이야기의 절정이다.
    
    
31절은 부활하신 예수가 여러 날 동안 나타나신 이유가 제자들을 증인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이는 요한의 증언에서도 드러나는데, 요한복음 21장에서 부활하신 주님이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신 장면은 바울의 설명과 들어맞는다. 그러므로 제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은 예수가 행하신 일에 대한 증인 되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도 역시 그 사명을 위해 부름을 받았음을 알린다.
    
    
    
나는?
-고난 앞에서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의 혼란한 속에서도 선교는 지속됐다. 바울과 바나바를 수행하던 요한이 선교를 중단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 후에 바울은 그를 다시 선교 여행에 합류시키는 것을 반대하는 것을 볼 때(행 15:37~39), 선교 여행의 고단함을 이기지 못하여 그만둔 듯하다. 하지만 요한은 떠났어도 바울과 바나바의 사역은 계속되었다.
    
-당시 강도가 자주 출몰하던 타우르스 산맥을 넘어 버가에서 북쪽으로 160km 떨어진 비시디아 안디옥까지 이른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도우심만 있으면 모든 사역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적으로 연약함을 비롯한 숱한 변수들이 바울과 바나바 앞에 있었다. 타우르스 산맥이라는 절망적인 자연환경도 있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뜻에 대한 명확한 확신과 성령의 동행하심, 투철한 사명이 없었다면 과연 바울과 바나바가 멈추지 않고 전진했을까?
    
-아무리 성령의 인도함이 함께하는 여정이어도 이런 돌발 상황은 바울 일행을 크게 낙심하게 했을 것이다. 한 사람으로 인해 공동체 전체가 힘들지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아쉽게도 공동체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지 않고 결정하는 모습들을 종종 보게 되면서 마가 요한의 이탈이 바울과 그 일행에게 끼친 영향력이 어땠을까를 좀 더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최근의 일들이 생각이 난다. 그럼에도 더온누리 공동체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로 계속 발돋움할 것이다.
    
-아쉬움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낙심된 마음이 덮쳐와도 성령께서 이끄시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여정을 포기하지 않으리라.
    
    
-바울은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했다. 안식일에 회당에서 발언할 기회를 얻자, 놓치지 않았다. 구약에 익숙한 청중들을 고려하여 족장들로부터 세례 요한에 이르기까지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소개하고(17~25절), 그 나라의 언약을 성취하시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명쾌하게 증거한다(26~31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천국의 서기관 되어 옛 말씀과 새 말씀을 자유자재로 꺼내주는 주인장과 같은(마 13:52)” 모습을 보인다.
    
-무엇보다 어렵게 얻은 기회였지만, 듣는 이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고려하지 않고 담대히 선포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복음을 전할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질 때 서툴더라도 날 것의 복음을 순수하게 전하는 담대함을 붙잡아야 하리라.
    
-바울은 복음을 전할 곳이면 어디든 가는 단순한 순종의 사람이었다. 전할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 담대하게 전할 말씀이 준비된 일꾼이었다. 아! 나도 이런 말씀 설교자가 되고 싶다. 내게 맡겨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께서 자유자재로 나를 사용하셔서 언제 어디서든 주의 말씀을 생명력 있게 전하고 싶다. 그런 말씀의 사람이 되고 싶다.
    
    
-바울은 언약에 신실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일깨운다. 하나님은 족장들과 언약을 맺어 약속을 주시고 그 하나님 나라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출애굽과 광야 여정, 가나안 땅 정복과 사사들의 통치 사울을 세워 시작한 왕정까지의 역사를 진행해 오셨다. 하지만 다윗의 통치에서 희미하게 보이던 하나님 나라의 윤곽은 그의 후손으로 오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분명해졌다. 이스라엘은 메시아를 몰라보고 죽였지만, 하나님은 그를 살리시어 주와 구주가 되게 하셨다. 구원은 그 나라의 백성이 되는 일이고 예수의 통치에 복종하는 자의 것이다. 새 언약의 백성이 되는 일이고, 말씀의 사람이 되는 일이다.
    
    
    
*주님, 변수가 결론되지 않고 과정이 되게 하는 올곧은 순종을 배웁니다. 최근 저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변수에 휘둘리지 않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길 우직하게 걷겠습니다.
*주님, 말씀을 자유자재로 언제든지,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전하겠습니다. 전하되 날 것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그래야 생명의 소식이 되기에 듣는 이들을 눈치 보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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