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예루살렘에서 오해는 풀었지만, 예언대로 결박을 당하다 [행 21:17-36]
 – 2024년 06월 17일
– 2024년 06월 17일 –
바울과 이방교회 대표단과 야고보와 예루살렘 교회 대표단의 감격스러운 만남이 이루어진다.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환대 속에서 자신의 사역을 통해 행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선교에 관해 보고한다(18~19절). 하지만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들은 하나님을 찬양하지만, 율법에 열정적이고 보수적인 유대인 기독교인들은 이방 지역에서 바울이 율법을 무시했다는 소문을 듣고 오해하여 분노한다. 교회는 바울에게 유대의 관습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라고 한다(20~25절). 바울은 교회의 조언을 받아들여 그대로 실행한다(26절). 바울이 성전에서 정결예식을 끝마치자 이번에는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바울을 비판한다. 그들은 바울이 이방 지역에서 이스라엘 민족, 율법, 성전을 비방했다고 분개한다(27~28절). 게다가 바울이 이방인을 성전 안으로 데려왔다는 거짓 보고까지 더한다(29절). 그러자 분노한 유대인들이 성전 안에서 바울을 바깥 뜰로 끌어내 죽이려 한다(30~31절). 이때 로마 수비대가 개입하여 바울을 심문하려고 데려간다(32~36절).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이 바울과 네 명의 동행자들에게 제안하는 정결예식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네 사람의 정결예식은 나실인 서원과 관련이 있다. 나실인 서원 기간에 부정하게 되어 서원을 갱신해야 할 때, 또는 최소한 30일간의 서원을 완료하나 것을 정결예식을 진행하는데, 머리를 깎았다는 표현을 주목하면 나실인 서원의 마무리 단계임을 추정해 볼 수 있다. 둘째, 바울의 정결 예식은 이방인들의 지역을 통과해 온 후 행해야 하는 정결예식과 관련이 있다. 당시 이방인 지역을 다녀온 사람이 성전예배에 참여하려면 일주일 동안의 정결예식(27절)에 참여해야 한다.
 
 
 
1. 예루살렘 입성(17~26절)
바울의 다섯 번째 예루살렘 방문이다. 예루살렘 형제들이 따뜻하게 맞아준다. 이튿날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 대표격인 야고보와 장로들을 만난다.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후(18:22) 거의 4년 만의 만남이다. 따뜻한 환대 후에 지금껏 자신을 통해 이방에 행하신 위대한 구원 사역을 들려준다. 그 명백한 증거가 그의 곁에 서 있는 일곱 명의 대표단과 그들과 함께 온 풍성한 연보(사랑)이다. 지난 4년간 소아시아와 마게도냐, 아가야에서 있었던 선교적인 상황을 상세하게 들려준다. 예루살렘 교회 형제들이 듣고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이 한가지 민감한 상황을 들려준다. 다른 유대 형제들이 바울에게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는 핍박 속에서도 복음을 받아들여 믿는 유대인들이 늘어만 갔다. 형제들은 그 수를 “수만 명”으로 이야기한다. 그들 모두는 율법에 열심이었다. 문제는 바울이 이방 사역 중 회당을 찾아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율법과 전통을 무효화하는 태도가 예루살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해졌고 이 때문에 바울을 매우 불편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모세의 율법, 할례, 관습을 지적했는데, 원문은 바울이 가르친 것을 “모세에 대한 배교”로 규정했다고 기록한다. 이렇게 규정한 것은 바울이 유대인의 아이들에게 할례를 금하고 유대 관습을 따라 살지 말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율법에 열심이었던 유대인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이들의 분노를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이것은 과거 예루살렘 교회에서의 총회(행 15장)에서 결의된 사항과도 별개의 문제로 비춰질 수 있었다. 바울을 율법폐기론자로 바라볼 수 있는 충분한 상황이었다.
 
예루살렘 교회의 야고보와 형제들은 유대 형제들도 바울의 방문 소식을 알고 있었기에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바울이 율법을 존중하고 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음을 요청한다. 마침 교회안에 서원을 한 네 사람이 있으니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가서 정결예식을 행하고 그들의 머리깎는 비용을 대신 지불할 것을 권면한다. 그런 모습을 통해 강경한 유대-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이 율법을 존중하는 것으로 보고 오해를 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한편 이런 요구는 바울과 동료들의 심기를 건드려서 괜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음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예루살렘 총화의 결정을 무위로 돌리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결정문의 내용(15:29)을 다시 환기해 주었다.
 
바울은 놀랍게도 전혀 불편한 기색 없이 이를 수용한다. 바울은 이제껏 사역하면서 율법을 부정한다든지, 무가치해졌다고 가르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율법을 존중했고, 예수 안에 완성된 율법을 가르쳤을 뿐이다.하지만 오해와 갈등이 심화된 상황에서 바울이 최우선으로 고민한 것은 “예루살렘 교회의 덕”이었다. 이 요청에 응하는 것이 복음을 훼손하거나 타협하는 것이 아니기에 형제들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이행한다. 이런 모습은 바울이 이제껏 보여온 상황에 따른 복음의 유연성이었다. 복음의 가치를 훼손 시키지 않는 조건에서 복음을 얼마든지 유연하게 표현해 왔던 것이다.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다(고전 9:20~23)”고 선언했던 것은 허언이 아니었다. 이튿날 바울은 서원한 네 형제를 데리고 정결예식을 행한 후 성전으로 들어가 제사를 마치기까지 일주일을 기다렸다가 결례 기간 만기를 신고한다.
 
 
 
2. 예루살렘 소동과 바울의 체포당함(27~36절)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들로 인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다. 마침 소아시아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성전을 방문중이었다. 그들이 바울을 단박에 알아보고 또다시 무리를 충동한 것이다(행 14:9; 17:13). 그들은 두 가지 내용으로 선동하며 바울을 고발한다. 먼저 바울이 이방 지역에서 가는 곳마다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비방했다고 주장한다. 과거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죄목과 동일한 고발이었다. 두번째는 매우 황당한 것인데, 바울이 이방인을 무단으로 성전에 들여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는 것이다. 고발자들은 얼마 전 바울이 에베소 출신 이방인 드로비모와 시내에 함께 있던 모습을 목격했는데 바울이 지금 그를 데리고 성전까지 온 것이라고 섣불리 짐작한 것이다. 이 고발은 거짓이었지만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만약 드로비모가 이방인의 뜰이 아니라 구별된 성전 안으로 들어왔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일이 된다. 당시 성전에는 이방인의 뜰과 거룩한 뜰 경계에 이방인들이 볼 수 있도록 경고문이 새겨진 표지석이 있었다.
 
이 고소를 들은 유대인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만다. 모두 의기투합하여 바울을 붙잡고 성전 밖으로 끌고 가서 죽이려고 한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는 그 이방인이 누구인지를 색출하지는 않는다. 소요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고, 예루살렘에 주둔하고 있던 로마 군대의 천부장이 귀에까지 상황이 보고된다. 사태 진압을 위해 천부장이 직접 부하들을 이끌고 출정할 만큼 이 상황은 심각했다. 최소 200명 이상의 로마 군인이 투입된 것이다. 로마 천부장의 신속한 개입으로 바울은 죽음을 면한다.
 
천부장은 바울을 일단 쇠사슬로 결박한다. 가이사랴에서 아가보가 예언한 대로 이루어졌다(21:11). 천부장은 유대인들에게 자초지종을 묻는다. 하지만 이쪽 저쪽에서 다양한 말로 이유를 설명했으나 소동으로 인해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천부장은 소요의 원인으로 지목된 바울을 유대인의 무리와 분리하여 관할 영내로 연행할 것을 명령한다. 그런데 바울이 얼마나 심각하게 폭력을 당했는지, 계단을 스스로 오를 수 없을 정도여서 들 것에 실려 갔음을 보고한다. 하지만 무리들은 여전히 군대를 뒤따르며 “그를 없애자”며 쉼 없이 외쳐댔다.
 
누가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이 사람을 없이 하자(아이레 투톤_눅 23:18)”이라고 외친 것 처럼 바울에게도 “그를 없이 하자(아이레 아우톤)”라고 외쳤음을 비교한다. 예수님이 가셨던 길을 바울이 뒤따라가 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바울에게는 환대를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는 바울과 교회의 만남이었다.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하나님이 주도한 이방인 사역을 듣고 그분께 영광을 돌린 것이다. 선교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렇기에 일각에서처럼 사람이 주목받고 영광을 사역자에게 높여서는 안된다. 사람에게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예루살렘 교회 안에는 아직 율법을 열성적으로 지키고 있는 유대-그리스도인들이 많았다. 이미 예루살렘 회의에서 구원을 위해 이방인들에게는 아무것도 부여하지 말라고 결정했지만, 여전히 할례를 비롯하여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고집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눈으로 보기에 할례를 요구하지 않는 이방인 전도방식은 모세의 율법을 배반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참으로 무서운 인식과 관습이다. 어떤 교리나 관습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우위에 있을 수 없다.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가 자신의 사역을 하나님이 하신 일로 온전하게 인정하면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오해를 바로 잡기 위해 성전에 들어가 서원한 이들의 결례의식에 동참하고 이 사람들의 삭발 비용을 대신 지불하라고 권면한다. 바울은 이 권면을 따라 행한다. 바울은 구원의 본질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면 편협한 원칙론을 고수하지 않고 상황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융통성을 발휘하는 사람이었다. 사랑과 연합을 위해서 모든 사람의 종도 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성령의 예언대로 환난이 찾아온다.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의 오해가 발단이었다. 바울이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와 같이 있는 모습을 거리에서 우연히 본 유대인들이 그를 데리고 이방인은 들어올 수 없는 성전 뜰까지 데려왔다고 짐작하고 소동을 일으킨 것이다. 바울은 무고했다. 그를 고발한 유대인들은 순수하고 열정이 넘쳤다. 모두 자신들의 소신대로 열심을 다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자신들에게 최선을 다한 이들에게 오해가 생겼고 피해자도 나왔으며 복음은 방해를 받게 된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잘못 알고 열정을 내는 것의 위험성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
 
-영문 밖에서 유대인들에게 죽을 만큼 맞은 바울은 로마 천부장의 개입으로 “그를 없이 하라”라고 뒤쫓아 온 유대인들로부터 가까스로 구원을 받았다. 유대인들에게 죽은 예수(눅 23:18), 역시 유대인들에게 죽은 스데반이 고스란히 기억에 소환된다. 주님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고, 스데반의 죽음도 결토 헛되지 않았듯이 성령이 허락하신 바울의 고난 또한 승리를 여는 관문이 될 것을 기대하게 한다.
 
-바울이 죽을 만큼 맞았다. 그런데 군중은 그것을 천부장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군중은 왜 바울이 죽도록 맞아야 했는지에 대해 잘 몰랐다. 그런데도 군중은 들 것에 실려 로마 군대에 의해 이동하는 순간에도 바울이 층대에 이를때까지 그를 없이 하라고 소리친다. 우둔한 군중이 예수님에게 그렇게 한 것처럼, 바울도 애매한 고난을 당한 것이다.
 
 
 
*주님, 묵상하는 내내 답답하기만 합니다. 이제는 내가 답답함을 고수하는 기성세대여서 그런지 더 답답합니다.
*주님,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을 알고 있으면서도 복음을 위해서라면 선선히 받아들이는 바울의 유연성이 놀랍기만 합니다.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을지요… 복음을 변질시키지 않되,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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