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암살 음모를 넘어서 가이사랴로[행 23:12-35]
 – 2024년 06월 21일
– 2024년 06월 21일 –
바울을 잡는 데 실패한 일부 유대교 열성분자들은 바울을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그들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을 찾아가 바울을 영외로 유도할 것을 요청하고 자신들이 매복해 있다가 바울을 죽이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그들의 음모는 바울의 조카의 귀에 들어가고,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천부장은 바울을 가이사야에 있는 로마 총독 벨릭스에게 보내기로 한다. 바울을 호송하기 위해 삼엄한 경비대가 함께 했다. 하나님의 섭리가 초자연적인 섭리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본문은 유대인들의 음모를 바울의 조카의 귀에 들어가게 하심으로서 그들의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바울을 구하시는 사건을 기록했다.
    
    
    
1. 바울을 살해하려는 음모(12~30절)
바울이 로마 군대에 의해 영내로 들어가 놓치게 되자 일부 열성분자들은 그를 다시 살해할 기회를 얻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당을 지어”라고 번역 되었지만 “음모를 꾸며”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 열성분자들은 바울을 죽이기 위해 모여서 음모를 꾸몄고 이 거사를 성사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며 식음 전폐를 맹세한다. 이와 같은 음모에 가담한 사람이 마흔 명이 넘어갔다.
    
이들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을 찾아간다. 대부분 바리새인들인 서기관들을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 열성분자들은 산헤드린 공회 내에서 자기들의 음모를 좀 더 흔쾌하게 받아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당시 랍비 문헌에 의하면 산헤드린 공회는 어떤 음모에도 공조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럼에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가’는 그들이 바울을 죽이기 전까지는 식음을 전폐하겠다는 맹세를 두 번 반복하여 기록함으로써 그들의 강한 의지를 알려준다(12, 14절).
    
특히 “맹세하다(아나떼마티조)”는 단순한 맹세의 의미보다 “저주를 받다”라는 의미가 있다. 이는 이 음모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도 마땅하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그들은 15절을 통해 구체적으로 바울을 죽일 계획을 공개한다. 그런데 이 내용이 바울의 조카 귀에 들어간다. 조카는 바울이 붙잡혀 있는 영내로 들어가 이 사실을 알린다. 바울을 죽이려는 열성분자들의 계획이 조카의 귀에 들려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번 일에 직접 개입하셔서 모든 일을 진행하시는 필연이었다. 이 단락의 이야기를 통해 ‘누가’는 이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하나님이 기적적인 일을 통해 병자를 고치시고, 베드로를 옥에서 구해 내시며, 바울과 실라를 옥에서 풀어주는 장면을 알려주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기의 뜻을 이루는 길에서 언제나 이와 같은 초자연적인 기적의 방법으로만 역사하지 않는다. 비상한 방법이기보다,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으로도 진행하신다. 하늘에 나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 유대인 열성분자들의 테러 계획이 바울의 조카에 의해 발각되었기에 바울이 궁극적으로 로마 호위대의 보호를 받고 로마까지 가게 되었고, 거기서 복음을 자유롭게 전하게 된 길이 열린 것이다.
    
바울 살해 첩보를 접수한 로마 군대는 이 사안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인 듯하다. 천부장은 지체하지 않고 가이사랴의 로마 총독 벨릭스에게 편지를 쓰고 호위 부대를 편성하여 바울을 이송하기로 한다. 이렇게 신속하게 결정한 이유는 바울이 로마 시민인 것과 그를 암살하려는 간계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천부장의 결정은 당시 로마 속주에 주둔한 로마 군대의 주된 임무가 공공질서를 유지하는 것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피의자를 직접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따라서 천부장은 바울의 조카의 말을 들으면서 이 사건을 상부 기관으로 넘겨야겠다는 결심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천부장은 밤 제 삼 시(밤 9시)에 어두움을 틈타 바울을 가이사랴에 있는 총독부까지 이송하는 작전에 돌입한다. 이를 위해 보병 200명과 기병 70명, 창병 200명, 총원 470명이라는 대규모 경호 부대가 편성되었다. 이 숫자는 평상시 예루살렘에 주둔하는 부대의 절반에 가까운 숫자이다. 상식적이지 않지만, 열성분자들이 잠복하여 바울의 목숨을 노리는 예루살렘을 벗어나는 지점까지는 삼엄한 경비를 유지하고 다시 부대로 복귀했을 것이다. 이렇게 이송되는 바울과 함께 25절 이하의 내용은 함께 동봉된 서신(편지)의 내용(25~30절)이다. 신약성경에서 유일하게 세속적인 편지로 알려져 있다.
    
이때 천부장의 이름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그의 이름은 “글라우디오”였다. 그가 보낸 편지의 내용으로 보아 바울에 대한 혐의에 대해 결론을 이미 내린 듯 보인다. 이 사건은 형사법에 처벌받아야 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 아니라 단지 쌍방 간의 신학적 견해 차이에 불과하다는 의견이었다. 이러한 천부장의 결론은 매우 큰 의미가 있는데, 처음 유대인들이 바울을 기소할 때 바울에게 적용된 혐의는 이방인을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곧 당대 유대인의 법에 따라 사형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혐의는 사라지고 오로지 종교적인 문제만 남아있게 된 것이다.
    
    
    
2. 바울이 가이사랴에 도착하다(31~35절)
그날 밤 천부장의 작전은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다. 호송대는 예루살렘과 가이사랴 사이 사마리아에 있는 안디바드리로 바울을 밤새 호송한다. 예루살렘에서 대략 60km 떨어진 곳이다. 가장 위험한 구간을 철통 경호 속에 이동했다. 이튿날 어느 정도 위험 지역을 벗어나자, 목적지 가이사랴까지는 기병이 호송하고 보병은 예루살렘으로 귀대한다. 가이사랴에 무사히 도착하여 바울은 총독 벨릭스 앞에 선다.
    
벨릭스는 바울에게 로마제국의 어느 속주 출신인지를 묻는다. 바울이 길리기아 출신이었기에 외부 자문 없이 직접 다룰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벨릭스는 바울을 기소하는 고소인들이 도착하면 고소 사건을 공식적으로 다루겠다고 말한다. 그동안은 바울을 헤롯 궁에 가둘 것을 명령한다. 헤롯 궁은 헤롯 대왕이 본래 자기 자신을 위해 가이사랴에 지은 궁전이었지만, 당시에는 로마 총독의 관저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바울은 유대인의 손에서 벗어나 로마 총독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성난 유대교 열성분자들과 자기들의 책임을 면하려는 로마인들 사이에서 바울이 매우 차분한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해 ‘누가’는 사도행전 23:11에 기록된 말씀으로 이 모습을 설명한다.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어려운 상황일수록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확신과 위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나는?
-그릇된 지식이 낳은 광적인 열정, 유대인 암살단 40명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식음을 전폐하겠다고 맹세한다. 하나님을 위한 열정이고 율법을 수호하기 위한 결의이다. 그릇된 지식이 낳은 열정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준다. 바른 지식과 분별력이 없는 순수함은 사탄의 손쉬운 먹잇감이 된다. 또 자기애에 사로잡힌 인간은 항상 선한 의도로 불의한 과정을 정당화하여 고통을 일으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바울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열정은 광적이었다.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라는 그들의 비장한 맹세와 용의주도한 실행 계획은 “담대하라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신 하나님의 약속 앞에서 무력하기만 했다. 바울의 조카에게 음모의 전모가 발각되게 하시고 천부장을 통해 보호받게 하시며, 총독 관저가 있는 가이사랴로 안전하게 이송될 수 있도록 해주셨다.
    
-바울의 길을 막으려는 유대인들의 광적인 열정은 로마로 가는 길을 친히 여신 하나님의 길을 막을 수 없었다. 아무리 대제사장이나 장로들이라도 하나님의 길을 막을 수 있는 권력이나 음모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세상이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길을 걷고 있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다.
    
-하나님은 ‘누가’도 이름을 알지 못하는 바울의 조카를 통해서도 약속하신 일을 변함없이 진행하신다. 바울의 조카는 이 책을 읽는 우리는 기억하기도 힘든 하나님 나라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조그만 부분을 차지하는 조연이지만,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는 길에서 “꼭 그때 거기서” 필요했던 하나님의 종이었다. 우리도 동일하다. 이름이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일을 행하실 때 “꼭 그때 거기에” 우리가 순종하여 하나님 나라가 든든해진다. 하나님 나라의 모든 역사에는 하나님이 주연이고 우리 모두는 “꼭 그때 거기에” 있어야 할 조연이다.
    
-바울의 조카처럼 불현듯 듣게 되고, 용기를 내어 감당하는 모습처럼 우리의 일상에서 불현듯 하나님의 계획이 들려오고, 성령께서 용기를 내어 동참하게 하시는 그 일이 훗날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루어지게 한 “꼭 그때 거기서”를 감당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또한 정당한 공권력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일하시는 것을 본다. 천부장의 신중하고도 정확한 판단과 합리적인 일 처리로 바울은 안전하게 가이사랴까지 호송된다. 모든 악의 도모를 하나님 나라 복음의 승리를 위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이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신다.
    
    
*바울에게 “담대하라” 하시면서 로마행을 약속하신(11절) 하나님께서, 다음 날 아침에 곧바로 그 약속을 이행하시기 시작하셨다. 바울을 죽이겠다고 식음을 전폐한 유대인들의 열렬한 맹세와 은밀한 음모가 하나님의 눈과 귀까지 가리지 못했다. 바울의 조카(생질_누이의 아들)를 통해 발각되게 하시고, 로마 시민을 지키려는 천부장을 통해 안전하게 총독 관저가 있는 가이사랴로 옮기셨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로마로 여정이 역경과 긴 기다림이 있겠지만, 만유의 주이신 하나님은 그 어떤 사람과 수단을 통해서든 이 약속을 기어코 이루신다. 그러므로 나의 삶도 하나님의 능하신 손에 맡기고 더욱 의지해야 하리라
    
*하나님과 율법을 지키기 위한 결정이었으나 그릇된 지식이 낳은 열정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철저하게 거스를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한다. 우리 역시 교회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도록 주의하고 주의해야 하리라
    
    
    
*주님, 말씀하신 약속을 지체하지 않고 이행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 큰 위로가 됩니다. 나에게도 약속해 주신 말씀대로 나의 걸음 가운데 세밀하게 역사하심을 신뢰합니다.
*주님, 그릇된 지식이 낳은 왜곡된 열정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습니다. 늘 말씀의 거울 앞에 내 생각과 판단을 점검받고 성령의 도우심을 신뢰하며 겸손히 말씀을 감당하는 사역자가 되겠습니다.
*주님, 꼭 그때 거기에서 이름 모를 믿음의 영웅을 세우셔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이어가심을 봅니다. 저도 언제든지 주님이 원하시는 꼭 그때, 거기에서 드러나지 않는 순종으로 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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