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2년의 세월_결국 가이사에게 상소하는 바울[행 24:24-25:12]
 – 2024년 06월 23일
– 2024년 06월 23일 –
벨릭스는 아내 드루실라와 함께 옥에 갇힌 바울을 찾아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도에 관해 듣는다. 그는 심판에 관한 메시지를 듣고 두려워하지만 동시에 뇌물을 요구한다. 벨릭스의 후임으로 베스도가 부임하고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다시 한번 바울을 기소한다. 베스도 앞에서 다시 재판이 열리지만, 그들은 바울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이번에는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진행하려고 하자, 바울은 가이사에게 상소할 것을 천명한다.
    
본문의 이야기는 사도행전의 전개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바울이 로마에 가서 복음을 계속하여 전하게 되는 결정이 이루어지는 장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총독이 바뀌어 다시 고소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고발 앞에 바울은 유대교 율법이나 성전에 대해 잘못한 적이 없고, 로마 황제를 향해서도 불법을 하지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하나 이제 막 유대 총독으로 부임한 베스도가 정치적으로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재판하기를 유도하자, 로마 황제에게 항소하기로 한 것이다.
    
본문에서는 계속해서 유대인들의 계략이 등장하고 바울은 로마의 법체계 아래 비호를 받으며 위기를 모면한다. 로마법으로 바울을 보호하여 목적지 로마까지 인도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를 감지할 수 있다. 이 장면에서 다시 로마 시민권이 바울의 운명을 가르는 매개체로 등장한다. 바울은 자신이 쓸 수 있는 최후의 카드인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항소권을 사용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하위 권력의 심리는 중단이 되고 당사자를 로마로 송치해야 한다.
    
    
    
1. 벨릭스와 바울(24~27절)
벨릭스는 재판 후에 천부장 루시아로부터 추가 증언을 듣겠다는 말을 실행에 옮기는 대신 그의 아내 드루실라와 함께 직접 찾아온다. 이 부부는 바울로부터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에 대해 듣는다. 일부 사본에서는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도에 관해 듣고자 하는 마음이 드루실라에게 있었다고 기록한다. 원문의 맥락과 상당히 일치할 수 있는 부분이다. 총독 벨릭스가 기독교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질만한 이유가 없었음에도, 그는 “이 도”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다는 누가의 증언(22절)이 이를 뒷받침한다.
    
바울은 직접 찾아온 벨릭스와 드루실라에게 반드시 들어야 할 말씀을 전한다. 즉 의와 절제와 장차 올 심판에 대해 가르쳤다. 왜 그랬을까? ‘누가’는 벨릭스가 22절에서 무죄가 확실함에도 판결을 의도적으로 미루며 천부장 루시아에게 떠넘긴 것이 26절에서 설명하는 것과 같이 바울에게서 돈을 뜯어내는 탐욕 때문임을 알아보았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최대한 이익을 챙기려는 속셈을 여지없이 간파한 것이다. 이에 바울은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에 대해 강론했을 가능성이 크다. 바울은 자기의 석방을 좌우하는 최고 권력자 앞에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주의 복음을 전했다. 벨릭스는 바울의 메시지를 듣고 비록 회개까지 이르지 못했지만 두려워한다.
    
하지만 26절에서는 그의 관심은 말씀이 아니라 뇌물에 있음이 곧바로 드러난다. 바울이 자기에게 뇌물을 바치고 석방해달라고 은근히 바랐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총독은 죄수를 무작정 감금해 둘 수도 있었고 사법 절차를 빠르게 진행하여 석방할 권한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뇌물 수수는 당시에도 엄연한 불법이었지만, 그것을 밝혀내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에 매우 흔한 관례처럼 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후임으로 총독 자리에 부임한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벨릭스 재임 시절 유대인들과의 악화된 관계를 수습하는 차원에서 로마는 베스도를 후임으로 보냈다. 적어도 벨릭스보다는 공정한 정치가였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그의 재임 기간은 2년 정도로 그리 길지 못했다. ‘누가’는 27절에서 벨릭스에 의해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여전히 구금 상태에 있음을 밝힌다. 벨릭스는 그의 재임 기간 안에 미결 사건들을 종결시킬 수 있었지만, 정치적으로 유대인들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바울을 석방하지 않은 것이다. ‘누가’는 그 이유를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라고 밝힌다. 헬라어 원문의 좀 더 직접적인 의미는 “유대인들에게 호의를 베풀기 위해”다. 벨릭스는 유대인들과의 관계가 악화하는 것은 자신이 로마로 돌아간 이후 자기에게도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2. 베스도의 부임과 예루살렘 방문(25:1~6절)
베스도는 부임한 지 삼 일 만에 예루살렘을 방문한다. 그는 유대 지방이 문제의 소지가 많다는 것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유대 지도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를 원했다. 그런데 유대 지도자들은 2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에 관한 사건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신임 총독이 부임하자마자 바울의 이야기를 다시 꺼낸다. 하지만 그들의 속셈은 따로 있었다.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한 후 매복해 있다가 길에서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이때 당시의 대제사장은 ‘벤 피아비’였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산헤드린 공회가 내부적으로 권력 다툼이 심했던 시기였다고 증언한다.
    
베스도는 “옳지 아니한 일(아토프_문자적으로는 제자리가 아닌 이라는 의미)”이라는 표현을 통해 공식 재판을 열기 전에는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겠다는 그의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3.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하다(25:6~12절)
베스도가 가이사랴로 돌아온 이튿날 공식 재판이 열린다. 하지만 유대인들인 이번에도 바울에게 씌운 혐의를 증명할 만한 강력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증인이나 목격자를 내세운다는 것이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그들은 바울의 혐의를 입증하지 못한다. 바울은 어수선한 상황이었지만 다시 한번 자신의 무죄에 대하여 변호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유대인들의 율법을 어긴 적도 없고 성전을 더럽힌 적도 없다며 무죄를 호소한다. 그리고 로마법도 어긴 적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베스도 역시 벨릭스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재임 초기에 유대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최종적인 판결을 유예한다. 더 나아가 베스도는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받을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바울은 이를 거절했다. 또 베스도의 제안은 어쩌면 몇몇 산헤드린 공회원을 재판의 자문 위원으로 두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당시 로마 법정에서도 재판장은 판결을 돕기 위한 자문 위원들을 두었었다. 하지만 바울은 그렇게 되면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지기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를 거부한다.
    
그리고 11절에서 자기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힌다. 예루살렘에서 재판받는 것은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것임을 바울이 모를 리 없다. 그는 예루살렘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따라서 자진하여 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베스도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주님의 계획인 곡 로마로 가야만 하는 자신의 사명 때문에라도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갈 수 없었다. 베스도는 바울의 상소를 듣고 배석자들과 상의한 후에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니라”라고 선고하면서 재판은 마무리된다. 이 과정에서 바울은 로마 시민권과 연계된 로마법에 따라 예루살렘의 암살 음모로부터 위기를 모면하고 보호를 받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대인들의 살해 음모가 오히려 바울을 로마로 보내는 동력을 제공한다. 유대인들의 지독한 불순종이 하나님 나라 확장에 동원되고 있다.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하는 것은 공식적으로 로마 시민에게 어떤 판결이 내려지기 전에 황제에게 상소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을 법정 전문용어로 “프로보카티오”라고 부른다. 프로보카티오는 판결이 이미 내려진 후에 항소하는 아펠라티오와는 다른 절차였다.
    
    
    
나는?
-바울은 철저하게 복음에 메여 있었다. 더둘로는 벨릭스의 통치로 태평을 누리고 여러 가지로 개선되었다고 아첨의 말을 했지만, 바울은 탐욕과 불륜과 잔인함으로 널리 알려진 벨릭스에게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전하여 벨릭스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였다. 복음은 예수가 주는 구원만 믿는 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정의롭고 거룩한 사랑의 통치에 복종하는 공의로운 복음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염치와 수치를 모르고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곳으로 변해가는 데는 강단에서 은혜를 남발하고 심판은 감추고 있기 때문은 아니겠나?
    
-관리들의 탐욕과 무책임한 보신주의 행정 때문에 바울은 2년이나 가이사랴에 구금되어 허송세월을 보냈다. 왜 하나님은 바울에게 2년의 세월을 그저 가택연금 상태로만 머물게 하셨을까? 2년의 의미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신뢰하고 인내하며 기다릴 뿐임을 바울의 모습을 통해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바울을 향한 유대인들의 살의는 2년이 지났는데도 가시지 않았다. 베스도가 새로 부임하자 또다시 살해 음모를 꾸몄지만, 베스도의 원칙적인 행정에 좌초된다. 2년의 세월이 흐를 때 하나님뿐 아니라 사탄도 눈을 떼지 않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바울에게 죄가 없는 줄 알면서도 벨릭스처럼 베스도 역시 유대인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재판받기를 제안한다. 하지만 바울은 로마의 가이사에게 상소한다. 구류되어 보낸 2년 동안 그의 마음을 가득 채운 것은 자유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로마에서 전하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더 빨리 석방될 수 있는 길을 거절하고 주저하지 않고 즉시 이런 요구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바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지금 나의 마음에 가득 차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를 돌아보게 된다. 나의 관심을 사로잡는 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인가? 사명에 매인 바울의 모습이 큰 도전이 된다.
    
    
*벨릭스는 아내 드루실라와 함께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도를 들었다. 그러나 바울은 의와 절제와 심판을 강론하였고, 벨릭스는 듣고 두려워서 거리를 둔다. 악인들이 당할 장래의 심판을 들으며 자기들의 삶의 모습이 자유스러울 수 없다는 것을 느낀듯하다. 벨릭스는 불의한 통치를 자행했었고, 남편 있는 여인이었던 드루실라를 빼앗아 아내로 삼은 방종을 일삼았기 때문이었다. 복음의 말씀은 주를 사랑하고 순종하려는 마음에는 위로와 격려를 주지만, 안락과 편리만 추구하려고 할 때는 늘 불편하고 두렵게 할 것이다.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가 어떻게 들려 오는가?
    
*복음과 거리를 둔 벨릭스는 곧장 뇌물을 기대하는 어둠에 빠진다. 신앙에는 어중간한 중간 지대는 없다. 재물과 주님을 함께 섬길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바울의 발을 2년이나 가이사랴 감옥에 묶어두셨다. 바울에게 아무런 죄가 없으며, 그를 로마로 가게 하실 분명한 계획을 갖고 계셨음에도 말이다. 또 유대 지도자들의 심기를 건들지 않게 하려고 책임을 외면한 벨릭스의 간교함에 맥없이 2년 동안이나 당하게 하신 것이다. 더구나 누가를 통해서도 2년간에 대해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으신다. 다만 사도행전의 맨 끝에서 복음의 승리가 언급될 뿐이다.
    
*기다림밖에 할 것이 없을 때, 기다리는 것이 최선의 순종이 되는 시기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2년이 지나도 바울을 향한 적개심은 가라앉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신임 총독 베스도도 유대인에게 환심을 사려고 바울에게 예루살렘에서 심문받도록 종용한다. 석방을 위해서라면 매우 좋은 제안이었지만, 바울은 가이사에게 상소한다. 감옥 안에서 2년 동안 있으면서 이것이 억울한 옥살이나 시간 낭비가 아닌 로마로 자신을 데려가기 위한 하나님의 전략으로 이해한 것이다.
    
*오늘 나의 고달픈 형편이 혹시 주님의 새 일로 부르시는 통로이지 않을까? 그렇기에 현재 나의 처지에서 나는 주께서 뜻하신 바를 묻고 또 듣고 있는가?
    
    
    
*주님, 2년이 어찌 보면 억울하고, 어찌 보면 하나님의 전략으로 볼 수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나도 바울처럼 아무런 뜻도, 길도 보이진 않는 2년의 세월이 다가오면, 결코 경거망동하지 않고 주님께 나의 시선을 고정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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