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욥 23:1-17]

악은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이며 악인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자라는 엘리바스의 말(22장)을 반박한다. 그의 혹독한 정죄와 회개의 권면을 듣고 하나님을 찾아 그 앞에서 재판받고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욥 자신은 간절히 하나님을 대면하여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대답하지 않으시고 정당한 판정을 내리지 않는 현실이 고통스럽다. 또한 욥의 죄를 … Read more

편협한 이해, 잘못된 전제, 잘못된 당부 [욥 22:1-30]

욥과 친구들 사이에 세 번째 논쟁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엘리바스가 포문을 연다. 이 부분이 엘리바스의 마지막 발언이다. 이번 발언의 특징은 규범적 지혜의 일반적인 진술에 머물지 않고 욥의 죄를 구체적으로 열거한다. 당연히 엘리바스가 언급하는 욥의 죄는 직접 목겨한 사실이 아니라 인과응보의 원리로 추론한 것이다. 엘리바스는 다른 두 친구와 마찬가지로 욥이 죄인이며 큰 죄를 지어 재앙을 받았다고 확신하며 결론을 … Read more

하나님의 정의가 사라진 듯한 서러움이 들 때 [욥 21:17-34]

반성적 지혜는 “과연 그러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지혜이다. 뿌린 대로 거두는 원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 원리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거나 그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예외도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럼으로써 하나의 고정된 원리의 틀 안에서만 창조 세계를 바라보려 하지 말고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직시하라고 가르친다. 동시에 하나님을 어느 특정한 원리 안에 가둬둘 수 없다는 고백이다. 아직 하나님의 … Read more

악인의 번영이 잠시라고? 무슨 말이냐? [욥 21:1-16]

본문은 세 친구와 욥 대화(3~31장)의 두 번째 사이클(15~21장) 중에 엘리바스와 욥의 대화(15~17장)와 빌닷과의 대화(18~19장)가 끝나고 소발의 발언(20장)에 대한 욥의 대답이다. 세 친구는 인과응보의 사상을 기초로 발언하고 욥은 그들의 주장과 달리 인과응보가 현실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음을 밝히며 반박해 간다. 악인의 길에 대한 소발의 말에 대해 현실에서 목격되는 악인의 부귀와 영화로운 삶을 예로 들어 소발과 친구들의 인과응보 … Read more

소발의 말_악인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욥 20:1-29]

소발이 욥에게 발언한다. 이 말이 소발의 마지막 발언이다. 4절부터 길게 이어지는 그의 말은 “악인의 행복은 오래 가지 않는다”로 요약될 수 있다. 이는 욥이 처한 상황과 무관하고,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외치는 앞선 욥의 탄식과 전혀 무감각한 반응이다.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욥에게 “자랑도 잠시요 즐거움도 잠시이니라”와 같은 지혜를 언급하는 것이 과연 지혜로운 말일까? 악인의 최후는 어떠할까? … Read more

나의 대속자가 계시니 [욥 19:1-29]

욥은 빌닷을 비롯한 친구들이 죄 없는 자기를 계속 말로 정죄하는 것에 답답해한다. 욥은 친구들에게 계속 자신을 정죄하려면 그렇게 하라고 한다. 그러나 자신이 현재 당한 고난은 하나님이 자기의 상황을 어긋나게 하심으로서 발생한 결과라는 점을 확실히 알라고 요구한다. 욥은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시고 공격함에 당황하며 더 답답하고 억울해한다. 재난당한 후 욥은 그의 형제와 친구 등 자신의 사랑하는 모든 이로부터 … Read more

답정남 빌닷, 무례한 빌닷 [욥 18:1-21]

엘리바스와 욥의 대화(15장~17장)가 끝나고 빌닷과 욥의 대화(18~19장)가 시작된다. 세 친구와의 대화(3~31장) 중에서 두 번째 사이클(15~21장) 중이다. 본문 전체가 빌닷의 말이다. 8장 이후 욥을 향한 두 번째 발언이다. 빌닷은 욥에게 악인들의 최후에 대하여 설명한다. 그들은 한때 형통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패망하고 죽는다. 그들에게 임하는 재앙은 두려움과 질병을 비롯하여 가옥을 뺏기고, 대(代)가 끊기며, 사람들의 구설에 오르내리다 죽는 것이다. … Read more

처절한 비탄의 노래 [욥 16:18-17:16]

욥은 자신의 무죄함에 대하여 땅을 향해 하나님이 자신의 결백함의 증인이라고 말한다(16:18~22). 욥은 엘리바스의 무정하고 정죄하는 말에 상처를 입고 그이 말을 반박하며 하늘에 계신 자기 증인(하나님)이 나타나 주기를 탄원한다. 고대 사회에서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어 욥은 자기 죽음을 예감하여 자신을 위한 애가를 부른다(17:1~16). 욥은 자기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예감하며 하나님께서 응보를 … Read more

그래도 문제의 해결이 하나님께 있다! [욥 16:1-17]

엘리바스는 더욱 원색적으로 욥의 무지와 죄를 비난한다. 욥의 아픔과 고난과는 더욱 멀리 떨어진 원론적인 인과응보론을 설파했다. 결국 고난을 겪는 사람이 그 고난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욥은 친구들의 지혜가 깊은 고난을 겪어 보지 않은 자들이나 할 수 있는 소리라고 비난한다. 그리고 최소한 자신의 고통에 집중하고 공감해 달라고 요청한다. 16~17장은 완전히 무너지고 부서져서 깨어진 욥의 아픔이 … Read more

인과율의 외골수가 친구를 악인으로 바라보게 하다 [욥 15:17-35]

엘리바스는 고난당하는 욥과의 대화를 “누가 더 지혜로운가?”의 대결로 이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1~16절에서 욥의 지혜를 깎아내린 후 본격적으로 자신의 지혜를 뽐낸다. 아마도 그 지혜는 자신이 속한 특별한 그룹에서만 전수된 신비로운 지혜인 듯하다. 지혜자들 안에서만 온전하게 구전됐지만 외부인들에게는 누설된 적이 없는 지혜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그 내용이 그 정도로 특별할까? 또한 1~16절에서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욥을 죄인이라고 …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