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욥 23:1-17]
 – 2023년 11월 29일
– 2023년 11월 29일 –
악은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이며 악인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자라는 엘리바스의 말(22장)을 반박한다. 그의 혹독한 정죄와 회개의 권면을 듣고 하나님을 찾아 그 앞에서 재판받고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욥 자신은 간절히 하나님을 대면하여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대답하지 않으시고 정당한 판정을 내리지 않는 현실이 고통스럽다. 또한 욥의 죄를 열거한 엘리바스의 말을 반박하면서 자신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적이 없음을 강조한다.
    
욥은 하나님을 발견하여 그가 계신 곳에서 정의로운 심판을 받고 싶어 한다. 따라서 변론할 말을 준비하여 하나님을 찾아 사방을 헤매었지만,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만날 수 없어 탄식한다. 그럼에도 욥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라 살았음을 하나님께서 알고 계신다고 확신한다. 또한 결정하고 일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그를 경외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
    
엘리바스의 말을 들은 욥은 그와 친구들에게 대답하기보다는 마치 독백하듯 23~24장을 채운다.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갈망과 참을 수 없는 하나님(23:2~9), 하나님에 대한 신뢰(23:11~17), 하나님의 때를 알고자 하는 갈망(24:1), 악행자의 심판의 때(24:2~25)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다른 관점으로는 23장이 하나님께서 어디에 계실까? 라는 “장소”에 초점이 있다면, 24장은 하나님은 언제 심판하실까? 라는 “하나님의 때”에 초점이 있다.
    
    
    
1.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만 있다면(2~9절)
욥은 너무도 답답하고 억울하여 하나님을 만나 뵙기를 갈망한다.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재판받기를 원한다. 그의 친구들은 첫 대화부터 선입견과 편향된 논리와 억측으로 자신들의 발언을 이어왔다. 급기야 엘리바스는 욥이 “큰 죄인”이라고 친구들 앞에서 선언했고 욥에게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여 용서받으라고까지 했다(21장). 욥은 그의 말에 깊은 상처를 받는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내린 재앙보다 친구들의 정죄가 더 고통스러울 지경이 되었다. 그러므로 욥은 결단했다. 친구들의 주장과 권고를 완전히 무시한다. 오히려 정직한 자로서 하나님께 나아갈 것이라는 의지를 불태운다(7절).
    
그런데 이런 억울함을 하나님 앞에서 재판받아 풀고자 했지만, 정작 문제는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데 있었다(8~9절). 욥이 전후좌우 동서남북 어디를 살펴보아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아 만날 수가 없다며 그의 탄식이 깊어져 간다. 무소 부재하신 하나님의 흔적은 분명하나 정작 욥에게는 나타나시지 않는다.
    
    
    
2. 하나님의 길로 행한 욥(10~12절)
하나님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욥은 “그가 나의 가는 길을 아신다”라고 고백한다(10절). 하나님을 대면할 수 없는 자신의 나약함과 무능함에 좌절을 느끼지만,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삶을 다 알고 계심을 확신하며 선포한다.
    
10절은 욥기에서 가장 많은 사랑 받는 구절인데, 대개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교훈은 고난을 통한 훈련과 성장, 깨달음 혹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인간으로 만들어지는 과정과 같은 의미로 적용된다. 그러나 이 구절은 욥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구절이다. 엘리바스의 회개 요청을 받고 자신의 무죄함을 변론하는 과정에서 욥 자신의 무죄함을 증명하기 위해 하나님을 찾았으나 어디 계시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은 욥의 살아온 모든 과정을 다 아시는 분이시기에, 자신을 시험해 보시면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정결한 자라는 사실이 입증될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마치 어렵게 얻은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시험을 통해 아브라함이 정결하게 변했거나, 어떤 성장과 깨달음이었었다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왔지만, 그 시험을 통해 “입증”이 된 것이다. 이처럼 욥도 자신의 고통과 고난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임이 입증될 것이라는 고백이다.
    
이와 같은 해석을 뒷받침하는 구절이 11~12절이다. 욥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에서 벗어난 적이 없으며, 그분의 명령을 거부한 적이 없었다. 이 사실을 친구들은 몰라도 하나님만큼은 아실 것이라는 믿음이다. 욥은 “나는 그분의 입에서 나온 말을 내 가슴에 잘 간직하였다”(새번역_12절 하)라고 거듭 고백했다.
    
욥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왔기에 현재의 고난을 하나님으로부터의 형벌로 여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용광로에서 불순물을 다 녹이는 연단을 받고 정금이 되어 나오는 과정이라고 여긴 것이다. 욥은 이 시련 통해 자신의 믿음이 더 굳건해질 것임을 확신한다.
    
    
    
3. 하나님의 절대주권_작정하시고 행하시는 하나님(13~17절)
욥은 엘리바스의 발언(22:6~11)을 “반항”한다. 부자면서 힘 있을 때 가난한 형제를 갈취하고 과부와 고아들을 억압했기 때문에 욥이 함정에 빠진 것이고 두려움이 엄습한 것이 전혀 아니라고, 죄 때문에 어둠 속에 있는 것이 전혀 아니라고 반박한다. 자신을 두렵게 하고 마음을 약하게 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16절). 결코 어둠이 내 얼굴을 가렸기 때문이 아니다(17절).
    
욥은 하나님이 유일한 절대 주권자이시므로 본인이 원하시는 것을 행하신다고 선포한다. 하나님은 이처럼 결정하는 일에 자유로우시며 성취하시는 일이 많다. 욥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에 자신에 대해 작정하신 일이 있다고 믿는다. 자신에게 주신 재앙도 하나님의 계획 일부이며 앞으로의 계획도 있음을 믿는다. 그렇기에 현재 욥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고 하나님께서 욥의 미래에 어떤 것을 작정하셨는지도 모르지만, 계획하신 것을 분명히 이루실 것을 믿는다. 이 믿음은 욥이 하나님의 모든 계획과 생각을 신뢰하며 의지하는 데서 나온다.
    
욥이 떳떳하고 담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경외함)에서 비롯된다. 욥은 하나님이 무엇이든 원하시는 대로 성취하시는 분이심을 안다. 반면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힘도 지혜도 없으므로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두려워 떤다. 엘리바스는 재앙과 고난으로 인해 두려움이 욥에게 임했다(22:10~11)고 주장했지만, 욥이 두려워한 것은 자기에게 닥친 흑암과 같은 재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로 인해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힌다(16~17절).
    
    
    
나는?
-욥은 견디기 힘든 현실로 인해 앓고 있다. 주님의 섭리를 인정한다고 해도 고난은 힘들다. 욥은 자신이 죽음보다 견디기 힘든 고통을 맛보고 있다고 말한다. 주님께서도 육신으로 계실 때 이런 경험을 하셨다(히 5:6,8).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감당할 수 없는 고난으로 인해 통곡하셨다. 하지만 아버지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자신의 결정권을 아버지께 넘기셨다.
    
-순종이 뭘까? 순종이란 자신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 문제의 결정권을 하나님께 넘기는 것이다.
    
-욥과 같이 하나님을 볼 수 없는, 혹은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 같은 영혼의 어두운 밤을 성경과 교회의 역사에서 경건한 신앙을 가진 이들은 모두 거쳤다. 하지만 그 어두운 흑암 속의 외침을 하나님께서는 듣고 계시며, 끝내 그 모든 간구가 응답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흑암 속을 지나고 있다고 느낄 때 더욱 붙잡아야 할 것을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뜻을 변함없이 이루신다. 이 땅에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변하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결과를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고난 당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락하셨다면, 그것은 나에게 필요한 고난이며, 주님의 나라에 꼭 필요한 고난일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견디기 힘들어도 하나님의 주권과 선하신 뜻을 붙들고 인내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성숙시키기 위한 과정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욥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말씀을 다 순종했다. 하지만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감추고 계시기에 알지 못하고 따를 방법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고통 중에 있는 길을 알고 계시며 모든 시련이 끝나면 자신을 향한 주님의 뜻이 모두 이루어질 것을 확신한다. 나에게도 이런 확신이 견고히 서 있는가?
    
    
*누구든 난데없는 환난을 겪으면 그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자신뿐 아니라 아무도 그 의미를 확증할 길은 없다. 하나님은 부재하시듯 침묵하시고 상황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럴 때 우리를 붙잡아 주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왔던 기억”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계시는 하나님에 대해 경외함”이다. 그 하나님께서 나의 전후좌우를 알고 계시고, 내가 겪는 상황도 보고 계시며, 나의 장래도 그분의 손에 달려 있다는 믿음이 오늘의 고난을 견디게 한다.
    
*욥이 자신을 향하여 대놓고 죄인이요 악인이라고 비난하는 이들 앞에서 요동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 대문이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하나님께서 나의 삶과 나의 길을 알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재앙 속에서도, 친구들의 악평 가운데서도 꿋꿋하게 견디게 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알고 계실 것이라는 믿음, 분명 뜻이 있어 허락한 고난일 터이니 반드시 그 목적을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 한결같이 경외하는 믿음…. 결국 “믿음”이 고난 중에서도 인내하며 신실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이었다.
    
    
    
*주님, 나의 가는 길을 주님이 아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혹 흑암을 지날 때 견디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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