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율의 외골수가 친구를 악인으로 바라보게 하다 [욥 15:17-35]

엘리바스는 고난당하는 욥과의 대화를 “누가 더 지혜로운가?”의 대결로 이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1~16절에서 욥의 지혜를 깎아내린 후 본격적으로 자신의 지혜를 뽐낸다. 아마도 그 지혜는 자신이 속한 특별한 그룹에서만 전수된 신비로운 지혜인 듯하다. 지혜자들 안에서만 온전하게 구전됐지만 외부인들에게는 누설된 적이 없는 지혜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그 내용이 그 정도로 특별할까? 또한 1~16절에서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욥을 죄인이라고 … Read more

공감은 온 간데없고 비난에 빠지다 [욥 15:1-16]

세 친구와 두 번째 논쟁이 시작된다. 그런데 새로운 주제는 아니다. 그저 첫 번째 논쟁이 반복될 뿐이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친구들의 말은 짧아지면서 고난과 아픔의 문제에 점점 더 둔감해지고 규범적 지혜의 신학을 더욱 강조한다. 사람은 사라지고 원리와 원칙만 남는 형세다. 격렬한 논쟁으로 치닫는 만큼 주장과 감정이 심화한다.   엘리바스는 욥이 자신들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해서 결백을 주장하자 그런 … Read more

고난 중에서 하나님만 붙잡다! [욥 13:20-14:22]

욥의 깊은 탄식이자 기도문이다. 욥은 친구들의 말을 조목조목 지적한 후에 다시 하나님께로 시선을 향한다.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걸고 변론하기 전에 기도하는 것이다. 무수한 도전적인 질문들에도 불구하고 대답 없는 하나님을 향한 탄식과 원망을 반복한다. 이런 모습이 인간의 연약함의 본질이다. 욥의 갈망은 자신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서라도 자신의 의로움을 입증받고 싶어 한다.    욥의 친구들은 그의 고난 원인을 하나님을 … Read more

친구들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판단을 받겠노라! [욥 13:1-19]

13장은 12장과 연결되며 세 친구 모두를 향하는 욥의 대답이다. 규범적 지혜로 고난 겪는 사람에게 적용하려는 시도가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설명한다. 욥은 친구들에게 거짓된 변론을 그치고 자기 말을 들으라고 촉구한다. 또한 직접적으로 하나님과의 변론을 희망하며 자신의 무죄함을 주장한다. 욥은 친구들의 변론이 무가치하고 거짓되며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지만 불의와 궤휼을 말하는 것이라고 고발한다. 이들의 변론에 하나님의 책망이 있을 … Read more

하나님은 인과율을 창조하셨지만, 이에 얽매이지 않는다! [욥 12:1-25]

12~14장은 욥과 세 친구의 대화 중에서 첫 번째 사이클의 마지막 부분이다. 앞서 욥에게 회개를 촉구한 소발을 향한 대답이다. 욥이 말이 많다고 비판하는 소발에게 저항이라도 하듯 욥은 지금까지보다 더 길게 진술한다. 앞서 친구들과 소발이 인과응보의 논리로 욥을 정죄하며 회개를 촉구한 것과 그들 지식의 한계에 대해 욥은 하나님은 인과율에 제한되는 분이 아니며 인간이 규정한 선악의 기준을 뛰어넘는 … Read more

엘리바스와 빌닷과 다름없는 소발의 충고 [욥 11:1-20]

엘리바스와(4~7장) 빌닷에(8~10장) 이어 두 친구와 함께 밤낮 이레 동안 욥의 곁에서 있었던(2:11~13) 소발이 욥을 향하여 변론한다. 특히 소발은 욥이 악에서 떠나 회개하라(8:5~7)는 인과응보 원리에 문제를 제기하며 하나님을 향해 질문하고 변론하는 것을(9~10장) 함께 듣고 있다가 본 장에서 충고하게 된다. 소발의 발언도 엘리바스나 빌닷과 구조와 형식, 내용에 있어서 유사하다. 특히 8장의 빌닷의 논리와 상당히 닮았다. 세 친구는 각각 … Read more

원망 가득한 토로, 하지만 그조차 하나님 앞에서 쏟아내다! [욥 10:1-22]

9장에 이어서 빌닷의 충고에 대한 욥의 변론이 계속된다. 사실 빌닷을 향한 것이라기보다 부당하게 재앙을 내리시는 하나님을 향한 토로이다. 9장은 세상의 불합리한 일들과 공의가 상실된 것 같은 일들의 모든 책임 하나님께 있다고 부르짖고, 자신에게 까닭 없이 재앙을 주신 하나님께 항변하는 내용이었다. 10장도 지속적인 절망감 속에서 자신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과 심판주 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탄원을 계속한다. 자신을 … Read more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들을 애타게 찾았지만… [욥 9:17-35]

하나님이 행하시는 어떤 법칙이나 원리를 인간이 알 수 없다는 반성적 지혜의 일반론(1-16절)을 자신에게 적용한다. 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고난을 주시는지 욥은 알 수 없다. 하늘에서 벌어진 일을 알지 못하는 욥에게 고난은 그야말로 까닭 없는 것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이 더욱 고통스럽고 두려운 법이다. 욥은 그 두려움을 매우 솔직하게 고백한다.창조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주시는 고난의 이유를 피조물인 … Read more

크신 하나님, 철저히 무능한 인간 [욥 9:1-16]

빌닷은 욥의 고통 토로가 인과율의 원리에 충실하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의 발언은 엘리바스보다 수위가 높았다. 욥 자녀들의 죽음도 그들의 죄 때문이라고 공격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런 주장은 조상들의 지혜라고 말했다. 욥은 이러한 빌닷의 충고에 대해 대답한다. 본문의 그 응답의 전반부이다. 인과응보의 원리로 죽은 자기 자녀들을 저주하고 고난 겪는 자들을 정죄하는 빌닷의 말에 욥은 저항한다. 이 과정에서 … Read more

확신에 찬 신념의 말이 비수가 되어 욥을 헤집는다 [욥 8:1-22]

빌닷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이 부당하다고 원망하는 욥에게 하나님께서는 절대적으로 공의로우시다고 반박한다. 욥의 자녀들이 죄 탓에 죽게 되었는데 이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 결과라고 확언한다. 악인을 심판하시고 의인은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찾고 회개함으로 돌이키라고 권고한다. 빌닷은 욥의 고난을 인과응보의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자녀들의 죽음을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로, 욥의 불행을 하나님을 잊어버린 과오로 판단한다. 그럼에도 아직 욥에게 회복의 가능성이 … Read more